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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Mar 21. 2017

세상에서 제일 큰 새집: 타프롬 사원

캄보디아 사원 둘러보기. 여덟번째




옛날 옛적깊은 숲속에 오래된 사원이 있었다.





비가 오고바람이 몰아쳐도 사원은 언제나 그곳에 있었다.





사원은 종종 떠올렸다자신의 안에서 기도하던 사람들을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떠나고 사원은 텅 비었다
기도 소리가 울리던 사원 안에는 적막만이 흘렀습니다담이 깨지고기둥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사원은 생각했다.
내가 계속이곳에 있어야 하는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이대로 텅 빈 채로 무너져 내리게 되는 것일까.
애당초 목적을 잃어버린 건물이 서 있는 것에어떠한 의미가 있는 것일까.





불쑥불쑥 사원은 견딜 수 없이 슬퍼졌다.
슬펐기에 알지 못했다.
담벼락에 피어 올라오기 시작한 초록 싹들을.





싹들은 무서운 속도로 자랐다
작고 여린 싹이었던 것들 중 어떤 것들은 덩굴이 되었다무너져 내리던 담벼락을 덮고바닥까지 뒤덮어 초록과 갈색의 옷을 만들어냈다어떤 것들은 커다란 나무가 되었다나무들은 사원의 기둥과 담벼락의 틈 사이로 뿌리를 내리고 커 나갔다.





나무들은 때때로 사원을 덮어주는 우산이 되어주었다때로는 뜨거운 태양을 막아주는 천막이 되어주기도 했다
나무의 뿌리가 굵어질수록 사원의 틈은 벌어져갔다가끔씩은 사원이 견디기 힘들 정도의 틈이 생겨나기도 했다.





그래도 사원은 괜찮았다그정도 아픔은혼자인 것보다는 견디기 쉬운 것이었다
게다가 사원은 알고 있었다벌어진 틈은 곧 메워진다는 것을
나무뿌리는 틈과 틈 사이로 엃혀 사원의 일부가 되어갔다.





무성하게 자란 나무들은 곧 동물들의 집도 되었다곤충들과 들짐승들날짐승들까지 나무의 신세를 졌다
그들은 사원의 기둥에 기대어 잠을 자고돌무더기 사이에서 밥을 먹었다.





어느날 새벽사원은 들었다
그건 아주 작은 소리였다
들짐승과 날짐승들 대부분이 잠들어 있는 새벽이 아니었다면 사원도 듣지 못했을 정도로작았다.





처음에는 작은 낙엽이 바스라지는 듯한 소리였다하지만 그 소리는 무척 힘겨운 싸움을 하는 듯필사적이기도 했다너무나 필사적이라서 사원은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다.
힘내
누구인지도어떤 소리인지도 알 수 없었지만 사원은 어느새 그 소리를 응원하고 있었다.





작은 울음소리와 퍼덕임.
사원은 알았다. 그 필사적인 소리가 무엇이었는지를.
나무에 둥지를 튼 새집 어딘가에서 알이 깨어난 것이다. 
사원은 바들바들 떨리는 작은 울음소리가 또 한번, 들리기를 바랐다.






생명에 젖어 파들파들 떠는연약하고도 강한 울음소리.
그 소리는 나뭇잎을 흔들고 나뭇가지에 스며들었다나뭇가지에 스며든 소리는 줄기를 타고나무의 몸통으로 흘러 들어갔다몸통의 소리는 뿌리로뿌리에서 사원의 틈새로 스며 들어갔다
사원의 돌기둥 하나가 풀썩무너져 내렸다.





이대로 계속 무너져 내리기만 한데도 있어야 하는 이유.
사원은 더 이상슬프지 않았다.





타프롬 사원은 자야바르만 7세가 앙코르톰을 만들기 전모친을 위해 세운 사원으로 알려져 있다
이 사원이 유명해진 것은 나무 때문이다거대한 나무가 사원을 뿌리로 뒤덮으며 자라나 있기 때문이다나무의 뿌리들은 사원의 돌들을 무너져 내리게 하는 동시에사원이 완전히 무너지는 것을 막아내는 역할도 하고 있다
그 아이러니한 풍경그것에서 볼 수 있는 건 단 하나.





그것이 그곳에 있어야 하는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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