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사원 둘러보기. 일곱번째
우주는 무슨.
앙코르왓에 가기 전에, 이런 생각을 했었다.
멋진 건축물을 보는 것은 늘 즐겁다. 하지만 거기에 과장된 수식어가 붙으면 글쎄, 하는 부정어가 튀어나갔다.
안좋은 버릇이다.
그럼에도 쉽게 고쳐지지 않는 건, 그 과장됨을 납득할만한 경험을 해 보지 못해서였을 터였다.
앙코르왓에 도착해서도 그랬다.
확실히 앞에 보이는 풍경은 멋있었다. 그래서인지, 카메라를 든 사람들의 손도 어느곳에서보다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곧게 뻗은 다리 너머 층층이 쌓아올려진 탑이 보였다. 발코니를 연상시키는 이 탑은 세계의 중심이자 신들의 자리인 수미산을 표현한 것이라고 했다.
캄보디아 시엠립에서 가장 유명한 유적이라고 하면, 누구든 앙코르 왓을 말할 것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 지정 유적군, 미국 대통령 오바마를 사로잡은 일출과 일몰, 숨겨졌던 제국의 유물 등등 붙어있는 수식어도 화려하다. 연꽃잎이 떠 있는 해자에 비치는 다리의 멋들어진 반영을 보면, 평소 사진에 관심이 없던 사람이라도 핸드폰이라도 꺼내들게 될 터이다.
이러한 유명세에 비해, 앙코르왓에 대해 알려진 것은 생각보다 적은 편이다. 앙코르왓이 프랑스의 박물학자에 의해 발견된 것이 1860년, 제대로 된 연구가 시작된 것은 1930년대에 접어들어서였다.
앙코르왓에 세워져 있는 비문을 해석하는데 그만큼의 시간이 걸린 것이었다. 캄보디아의 수많은 전란으로 크메르 제국의 문화가 끊어져 있던 것이 이유였다. 캄보디아에서 크메르 제국의 문자를 기억하는 사람은 극히 적었다.
하지만 앙코르왓의 진정한 비극은 그때부터였다.
1970년대, 베트남전의 비극은 캄보디아를 비켜가지 않았다. 미국은 당시 중립국이었던 캄보디아와 라오스까지 폭격을 감행했다. 두 나라를 통해 남베트남의 게릴라들의 무기가 공급된다는 것이 이유였다.
특히나 캄보디아에의 폭탄 투하는 상상을 초월했다. 1973년 파리 협정으로 베트남전에는 쉼표를 찍었지만, 그것이 캄보디아에는 해당되지 않았던 것이다. 오히려 베트남전의 사실상 패배를 보복이라도 하듯, 미국은 캄보디아의 공산 저항군과의 전쟁을 계속해 나갔다.
여기에 1979년, 베트남군과 크메르 루즈의 전쟁 동안 앙코르 와트는 군사 주둔지로 쓰이며 훼손된다. 이 동안 앙코르와트는 전체의 70%가 복원 불능 상태로 파괴되었다.
앙코르와트의 수난은 캄보디아의 뼈아픈 역사와 함께 진행되었던 것이다.
그 사실을 떠올리자 셔터를 누르던 손이 주춤, 멈췄다. 앙코르 왓으로 들어가는 다리를 건너면서는 슬쩍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했다.
하지만 앙코르왓 안에 들어서는 순간, 복잡한 생각들은 사라졌다.
앙코르 왓은 거대한 평화였다.
먼저 보이는 것은 초록이었다.
앙코르 왓의 건축물들이 세워진 땅에는 초록의 식물이 가득했다. 우산처럼 펼쳐진 나무 아래에서는 사람들과 말 한 마리가 함께 쉬고 있었다. 카메라를 든 채로, 건물 계단에 앉아 멍하니 하늘만을 보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바쁘게 걸어가는 사람들 틈 사이로, 앙코르왓의 시간은 느릿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앙코르왓은 우주라고 했다.
산을 표현한 탑은 동시에 연꽃의 꽃봉우리이기도 하다. 바깥쪽을 둘러싼 긴 담은 대지와 산맥, 그리고 넓은 해자는 바다를 나타낸다. 그 모든 것이 어울러져 우주를 이룬다고 했다.
우주는 무슨.
입가에 걸렸던 삐딱한 웃음은 어느새 사라진 채였다.
우주일수도 있었다.
누군가 그 곳에서 평소와는 조금 다른 시간을 느낀다면, 그 자체로 그곳은 우주일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 작은 사실을, 마음에서부터 인정한 것은 처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