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사원 둘러보기. 여섯번째
흙의 냄새가 났다.
툭툭을 타고 바이욘 사원에서 코끼리 테라스로 향하던 길이었다.
길은 울투불퉁했다. 툭툭은 빠르게 달렸다. 툭툭의 배기관에서 뿜어져 나온 배기가스는 자리에까지 날아왔다.
멀미가 날 것 같아 눈을 감았다. 바람 소리가 귓가를 빠르게 스쳐갔다.
그렇게 눈을 감고 얼마간 갔을까.
물에 가라앉은 듯한 흙 냄새가, 가스 냄새 속에서 불쑥 튀어나왔다.
눈을 떴다. 툭툭은 여전히 도로 위를 달리고 있었다.
흙 냄새는 도로 옆, 풀숲에서 올라온 것인 듯 했다. 초록 이끼 낀 나무들이 줄지어 선 풀숲의 색은 선명했다.
이 매연 냄새 속에서도 자신을 드러내다니. 대단하네.
바람에 눈이 시렸다. 그래도 다시 눈을 감지는 않았다.
휘발유 냄새 속에서 간간히 느껴지던 흙 냄새는 눈시린 푸른색과 함께 점점 강해져갔다.
캄보디아는 사람이 살기에 썩 좋은 땅은 아니었다.
나라의 70%가 넘는 면적이 산림인데다, 건기와 우기가 너무 확실하게 나뉘어진 탓에, 사람들은 늘 물부족에 시달려야 했다.
그뿐인가. 다른 나라의 백성들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캄보디아에서도 일어났다. 사람들은 전쟁에 동원되고, 때로는 사원을 건립하는데 나와 흙을 지고 날라야 했다. 때로는 왕의 폭정 아래 영문 모를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렇지만 이 땅은 지금도 이곳에 있지. 역시, 대단하네.
옆으로 사원 하나가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사원을 구경하는 사람들은 그런 설명을 듣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 사원을 만든 사람은 자야바르만 7세랍니다. 나 역시 다른 사람에게 그렇게 설명했을 테니깐.
그것은 틀린 말이 아니다. 하지만 절대적으로 옳은 설명도 아니었다.
사원을 만든 건 한 사람이 아닌, ‘사람들’ 일 테니깐.
사원을 만들으라 지시한 것은 왕일 테지만, 실제로 흙을 주무르고 벽돌을 만들어내고, 정교하게 쌓아 올린 사람들은 따로 있는 것이다. 이름도 남겨지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 그들의 삶이 어땠을지는 지금에 와서야 아무도 알 수 없다. 누가 봐도 참 멋있네, 싶은 조각을 새긴 사람은 어쩌면 그 해 전쟁에서 목숨을 잃었을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허망할지도.
툭툭 바퀴에 튀어오른 흙알갱이가 눈에 들어간 듯 했다. 이마가 찌푸려졌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사원의 긴 담벼락의 끝이 어른어른, 물기에 젖어 멀어졌다.
쌩뚱맞게도 예전에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아이를 먼저 보낸 아버지가 장례식 내내 눈물을 보이지 않고 있다가, 눈에 들어간 먼지 때문에 결국 울고 말았다는 이야기. 슬픔을 안으로 삭이기 위해 필사적이던 부모를 솔직하게 만든 것은 사람들의 위로나 다른 무엇이 아니었다. 고작 먼지 한 톨이었다.
때로는 작은 것이 힘이 세구나. 그렇게 생각했었더란다.
눈을 질끈 감았다가 도로 떴다. 먼지가 제대로 떨어져 나갔나, 몇 번이고 눈을 깜빡였다.
일렁이던 풍경은 제자리를 찾았다.
사람들의 이야기는 남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들이 만든 사원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 사원 근처에서 사람들은 몸을 기대 쉬기도 하고, 갖가지 물건들을 팔기도 하며 생활을 해 나간다. 사원을 만들라고 지시했던 왕의 이름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지 않더라도, 옆을 스쳐 지나간 바나나를 든 아이의 작은 손은 기억날 터였다.
허망하지 않구나.
매캐한 매연 속에서도 선명하던 흙 냄새.
흙은, 이 땅은 힘이 셌다.
그 땅에서 버티며 살아온 사람들은 그보다 더 힘이 셌다.
길게 이어진 사원의 담벼락처럼 이어진 평범한 사람들의 힘이, 그곳에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