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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쥬 Aug 27. 2024

약사가 하는 일(1)

약사의 자질은 무엇인가.

나는 근무 경력 10년이 넘은 약사이다.

약사로서 근무할 수 있는 곳은 크게 병원, 회사, 약국이다.

나는 저 세 군데를 모두 경험해 보았고, 잠깐 알바했던 약국까지 포함하면 7군데의 직장을 다녀보았다.

여러 군데의 직장을 다녀보면서 느낀 약사가 하는 일,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자질이 무엇인지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내 첫 근무지는 대학병원 약국이었다.

흔히 약국이라고 하면 동네에서 볼 수 있는 약국을 생각하시는 경우가 많다. 일반의약품을 구매할 수 있고, 처방전으로 약을 살 수 있는 곳. 대학병원의 약국은 그보다 훨씬 다양한 업무를 수행한다. 보통 다음과 같이 구성되며, 명칭과 세부조직이 조금씩 다를 뿐, 아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병동약국, 외래약국(원내약국), 항암조제실, 약품정보실


일반적으로 환자분들이 진료를 보고 약을 가져가는 곳이 원내약국이다.

동네 약국과 비슷하다고 보시면 되는데, 다른 점은 일반의약품을 판매하지 않으며 아무나 원내약국에서 약을 받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2000년 의약분업 이후 의약분업 예외사유에 해당하는 환자만 원내에서 약을 수령할 수 있다.

병동약국은 말 그대로 입원한 환자들을 위해 약을 조제하는 곳이다. 입원 환자들이 있기 때문에 주사약과 먹는 약이 다양하게 있으며, 밤이라고 해서 환자들이 퇴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24시간 2~3교대(병원마다 다름)로 약사가 상주한다.

항암조제실은 항암을 하시는 분들의 주사제를 조제하는 곳이다. 먹는 항암제의 경우 외래약국에서 취급을 하는데 주사제의 경우 특수한 설비가 갖추어진 곳에서만 조제가 가능하여 일반적으로 별도의 부서를 두고 관리한다.

약품정보실은 약품에 대한 정보를 관리하는 곳으로 원내 사용 가능한 약품의 리스트를 관리하고, 그 외 신약심의, 의약품 식별, 원내 문의 등 관련 업무를 담당한다.


그렇다면 이런 업무를 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자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나의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확성이라고 생각한다.

새내기 약사이던 시절에는 스피드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정확도 95%+빠른 조제 속도 VS 정확도 99.9%+보통 조제 속도 중 뭘 택할래?

하면 정확도는 다소 떨어지더라도(그렇다고 마구잡이로 아무렇게나 조제하면 절!대! 안됩니다.) 빠른 조제 속도는 약사가 반.드.시 갖추어야 하는 덕목(?)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대학병원은 정말로 숨 쉴 틈 없이 처방이 쏟아진다. 내가 있던 병동약국의 경우는 불출약의 종류가 정규, 수시, 응급으로 크게 나뉘었다. 정규는 말 그대로 그날 점심부터 다음 날 아침까지 환자가 루틴하게 먹는 약이다. 정해진 인원이 출근하자마자 이 정규부터 조제/검수를 시작한다. 왜냐? 답은 뻔하다. 늦어도 11시 전까지 올리지 않으면 환자는 점심약을 투여받을 수 없다. 정규 조제/검수 외의 인원은 수시, 응급을 커버한다. 수시는 정규 이외에 추가로 환자가 사용할 약이다. 예를 들어, 오늘 환자에게 정해진 정규약은 당뇨약과 혈압약뿐이었다. 그런데 '선생님! 저 소화가 잘 안 돼요..'하고 예상외로 복용하게 되는 약이 있을 것이다. 그러면 담당의가 추가로 소화제를 처방하게 되는데, 이런 식으로 추가되는 처방이 각 병동에서 모이면 약국에선 한 두건이 아니게 된다. 이걸 수시로 약국에서 줄 수 없기 때문에 병동과 약국 간 약속된 시간에 한 번에 출력하여 올려주어야 한다. 이 또한 약속된 시간이 있어서 늦어지면 간호사 선생님의 타임 스케줄이 어긋날 수 있어 최대한 빨리 올려주어야 한다. 그렇다면 응급약은? 추가로 처방한 약인데 수시 시간까지 기다릴 수 없을 정도로 급한 약도 있을 수 있지 않은가? 응급으로 달라고 한 약은 응급으로 주어야 한다. 그 외 응급실을 방문한 환자, 퇴원하는 환자의 약 또한 빨리 올려주어야 한다. 응급실 환자의 경우 약만 받으면 집에 가는데 약이 안 오면 컴플레인이 들어온다. 퇴원약 또한 안 주면 퇴원을 못한다. 더불어 마약은 별도로 관리되기 때문에 마약을 타러 오면 마약도 주고 재고 관리도 정해진 시간에 해야 한다.

외래약국은 말할 것도 없다. 동네 약국을 생각해 보시라.. 환자가 밖에서 기다린다. 그런데 원내약국은 한가하지 않다. 처방전이 미친 듯이 쏟아진다. 쉴 틈 없이 조제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래서 아기 약사 시절에는 스피드를 추구했었다. 알약 개수 빨리 세기, 검수 빨리하기, ATC 약 빨리 깔기, 틈나면 잘 나가는 0.5T 약 잘라놓기 등등.. 일이 손에 익고 '얘 일 빨리 잘한다' 소리 들으면 뿌듯하기도 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난 언제부터 스피드보다 정확도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을까?

그것은 대학병원에서 잘 적응하고 5년 가까이 일했던 내가 퇴사하게 된 이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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