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직장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쓰다 보니 옛 생각에 길어진 이야기
잘 다니던 병원을 그만두게 된 계기는 지금에서야 확실히 말할 수 있다. 당시에는 내가 몰랐었다. 우울증이라는 사실을.. 실제로 진단을 받지 않아 정확한 병명이 "우울증"인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그랬다. 당시 조금 힘든 일이 있어 우울하다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나는 원래 우울감이 있는 사람이라 그러려니 했었다. 정도가 점점 심해지고 있음에도 인지하지 못했고, 그래서 병원을 가지 않았다.
그래도 직장 생활에는 지장을 주지 않으니까 우울증까진 아닐 거야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나는 책임감이 굉장히 강하고 남에게 피해 주는 것을 싫어해서 겉보기 직장 생활에는 영향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나는 매일 울었다. 주사약 검수를 하다가도 울었고, 약품 식별을 하려고 모니터를 보면서도 숨죽여 울었다. 출퇴근 버스에서는 당연히 울었고, 버스에서 뛰어내리고 싶다는 충동이 들기도 했으며, 퇴근하면 식사도 하지 않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다가 잠들거나 혼자 술을 마셨다.
내가 4년 차가 되자 병원에서는 나에게 기본 업무 외에 논문 작성을 시키고 싶어 했다. 작성한 논문을 시험 삼아 작은 대회에 투고했는데 수상을 하자 팀장님은 그 논문을 좀 더 다듬어서 더 큰 곳에 투고하시고 싶어 했다. 그런데 내가 추가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내가 논문에 문외한이니 나를 위해 외부 전문가 분을 소개해 주셨는데, 그분이 주말에 내게 연락 오는 것조차 너무 큰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출퇴근도 간신히 하고 있었는데 거기에 해보지 않은 새로운 업무를 맡으니 점점 나 자신이 무너져 갔다. 출근하며 병동 약국 안내 표지판만 보아도 심장이 미친 듯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숨이 막혀왔다. 어느 날 향정을 카운트하다가 또 이유 없이 눈물이 났고, 그대로 팀장님 방으로 들어갔다.
"저 퇴사하겠습니다. 저 이러다가 진짜 죽을지도 몰라요."
나름대로 병원에서 일을 잘하는 사람이었고(개인적 의견이 다분히 반영되었을 수 있음.), 그래서 논문까지 믿고 맡겨보려던 찰나 그만두겠다고 하니 팀장님은 당연히 나를 많이 잡으셨다. 뭐가 힘든지 내가 대충 들어서 아는데 조금만 버텨보자고 하셨다. 힘들면 있는 휴가 모두 끌어다 쉴 수 있게 해 주겠다고도 하셨다. 병원은, 특히 약국은 시간 내에 일을 빠르게 처리해야 하는 부서라 누군가 한 명이 빠지면 다른 사람들이 더 많이 일해야 하는 구조이다. 그래서 동시에 여러 명이 휴가를 쓰지 못하고 하루에 휴가를 쓸 수 있는 인원도 제한적이다. (휴가를 다 가버리면 조제는 누가 하나요..) 따라서 휴가를 보내주겠다는 것은 엄청난 특권이다. 하지만 나는 이미 뭔가 지속할 한 톨의 에너지도 남아있지 않아 한 달 후에 퇴사하겠다고 말씀드렸다. 더 일찍 퇴사하고 싶었지만 한동안 구인이 되지 않아 인력이 한참 모자랐고 그래서 주말/공휴일 당직도 남아있는 사람들이 모두 소화해내고 있는 상황이어서 말씀드리지 못했다고. 이미 몇 달을 버텼고, 이제 인력 충원이 되고 약국 상황이 안정적이니 가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1주일간 생각할 시간을 더 가져보라고도 하셨지만 결국 나는 퇴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