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퇴근을 하고 집에 돌아오니 아이 표정이 시무룩하다. 졸린가 싶어 물어보니 대꾸가 없다. 알고 보니 내가 오기 전 이미 아빠와 시댁 어른에게 크게 혼난 모양이다. 놀이터 안에서 놀기로 약속해 놓고 할아버지가 안보는 사이 몰래 놀이터를 벗어나 유치원까지 친구랑 간 모양이었다.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기에 어른들이 단단히 혼을 낸 것이다. 나도 다시 한번 가슴이 덜컹했다. 놀이터와 유치원 모두 아파트 단지 내이긴 하지만 차들이 오고 가기도 하고, 지난번에는 할아버지 몰래 친구와 둘이 상가에 가버려 아이를 찾느라 진땀을 빼기도 했다. 두 번째라는 괘씸죄까지 적용되어 크게 혼이 났다고 한다. 이미 집안 두 어른이 아이를 혼낼 만큼 혼냈고, 아이가 너무 시무룩해 있길래 내가 다가갔다.
"ㅇㅇ아. 네가 잘못한 건 알지? 지난번에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렇고 어른들 모르게 다른 데로 사라지면 안 돼. 차가 다녀서 위험하기도 하고 그러다가 엄마, 아빠를 잃어버릴 수도 있어"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엄마 나 좀 안아줘." 한다. 한참을 내 품에 안겨있다가 배고프니 저녁을 먹겠다고 한다. 먹기 전에 손을 씻고 오라고 하니 안아서 화장실에 데려다 달라고 한다. 한참 혼났으니 정이 고픈가 싶어 데려다주었다.
이렇게 하루가 마무리되었으면 좋았을 것을.
시댁에서 집으로 돌아와 아이 가방 정리를 하는데 아이가 주사기를 찾는다.
"주사기? 가방 속에 없었는데." 하자 자기가 찾아보겠다며 가방을 가지고 간다. 1센티정도 되는 레고 주사기가 가방에 두 개 들어있다.
"이거 어디서 났어?" 하자 "형아네 집에서 훔쳤어!" 해맑게 이야기한다.
순간 내 표정이 굳어버렸나 보다. 눈치를 보던 아이가 "아니, 그게 아니고 선생님이 나 생활 잘한다고 선물로 주신 거야.." 한다.
하지만 난 이미 알고 있다. 아이가 시댁에서 사촌 형 것을 허락도 없이 그냥 가방에 슥 넣어 가지고 왔다는 사실을. 아마도 아무 생각 없이 가방에 넣었을 것이다(그렇게 믿고 싶다..). 옆에서 듣고 있던 남편도 다가왔다. "솔직히 말해줬으면 좋겠어. 선생님이 너 주신 거야, 아니면 형아네서 허락 없이 가지고 왔어?" 아이가 당황해서 횡설수설한다. 선생님이 주신 거라고 했다가, 형아가 가지고 가라고 한 거라고 했다가 말이 자꾸 바뀐다. 아이한테 일러줬다.
"ㅇㅇ가 지금 잘못한 게 두 가지가 있어. 우선, 남의 물건을 허락도 없이 가져오는 건 안되는 거야. 그리고 두 번째. 거짓말을 자꾸 하고 있어." 아이가 고개를 푹 숙인다.
"자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모르겠다고 고개를 젓는다.
"지금 형아네 가서 이거 돌려주고 허락 없이 가져와서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거야. 옷 입어"
주섬주섬 바지와 바람막이를 챙겨 입더니 모기만 한 목소리로 "나 못하겠어.." 한다.
"아니. 그래도 해야 돼. 얼른 아빠랑 다녀와."
아이가 돌아오길 기다리며, 빨래를 개고 영어문장 외우기를 하고 있었다. 20분 정도밖에 안 되는 시간인데 시간이 무겁게 느껴졌다. 열 시가 다된 늦은 밤에 아이를 보낸 건 아이가 뭔가 깨닫기를 바라서였는데. 그러기를 바라면서 20분을 기다렸다.
아이가 돌아와 손을 잡고 물었다. 잘 얘기하고 왔어? 대답을 하지 않는다. 옆에서 남편이 대신 거들어준다. "사과하고 잘 돌려주고 왔어."
하루가 참 길다. 오늘의 일이 아이에게 가르침이 잘 되었기를 바란다. 만약 다음번에 같은 일이 일어나면 어떻게 해야 하지 고민스럽다. 왜냐하면 오늘의 가르침이 통하지 않았다는 의미이기에. 더 강하게 혼을 냈어야 할까, 부드럽게 넘어가서 아이가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건 아닐까. 어제의 내가 잘한 것일까. 어제의 일이 마음에 계속 무겁게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