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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윤이 Mar 26. 2022

놀이터의 역사

아틀란티스 소녀 / BOA



오후 세 시, 유치원에서 나온 아이는 ‘나 오늘 친구랑 놀이터에서 놀기로 약속했어.’ 하면서 유치원 건물 뒤편에 있는 놀이터로 전력 질주를 한다. 말릴 새도 없을뿐더러 뭐라고 말려봤자 아무 소용없는 속수무책의 상황이다. 그럼 나는 그냥 그대로 끌려가 몇 시간이고 아이가 노는 모습을 바라보고 서 있어야 한다. 물론 공원 곳곳 벤치가 있긴 하지만 미끄럼틀, 그네, 정글짐이 한데 모여 있는 메인 놀이 공간 근처에는 하필 벤치가 없다. 그러니까 아이의 움직임을 잘 관찰하기 위해서는 서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더구나 애들은 잘 놀다가도 갑자기 냅따 뛰어 시야에서 사라지거나, 길고양이를 따라다니며 길을 잃기도 하니, 우아하게 앉아서 내 볼일을 한다는 건 사치에 가까운 일. 가끔 함께 수다를 떨 수 있는 동료(아이 친구의 엄마)가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긴 하지만, 그마저도 어색한 사이라면 그건 더욱더 곤혹스러운 일.

그렇게 삼십 대의 엄마로 살아가는 나에게 놀이터는 그저 지루하고 가끔은 무섭기까지 한 존재인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걸까? 나도 딸아이처럼 세상에서 놀이터를 가장 좋아하던 시절이 있었을 텐데! 나의 놀이터는 어디였지? 갑자기 놀이터를 누비며 뛰노는 딸아이의 찰랑대는 머리카락을 바라보다 나는 나의 놀이터의 역사를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어릴 때 우리가 보편적으로 정의하는 ‘놀이터’라는 곳에서 놀아본 기억이 없다. 강원도의 시골마을에서 자랐기 때문에 놀이터라는 존재 자체를 모르고 자랐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온 동네가 놀이터이기도 했었다. 사방이 꽃과 나무, 벌레와 풀, 흙과 모래, 냇가와 돌, 그로부터 파생되는 많은 것들 그러니까 자연 그 자체로 둘러싸여 있었기 때문에 심심할 틈이 없었다. 사계절이 변화하는 것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자랐다. 놀이터는 없었지만 마음껏 놀기에 안성맞춤인 환경이었다.    

내가 처음 만난 도시의 놀이터는 잠실의 장미아파트에서였다. 서너 살쯤 되어 보이는 내가 빨간색 철제 미끄럼틀에 앉아 세상에서 가장 신나는 표정으로 웃고 있는 사진을 보고 알게 된 사실이었다. 서울에 사는 큰아빠네 집에 갈 때마다 그 놀이터에서 자주 놀았다는데 기억은 전혀 안 난다. 그 후로 초등학교에 입학해서는 학교 운동장 한편에 있던 놀이터에서 흙 놀이, 고무줄, 술래잡기 같은 걸 하며 놀았던 것 같다. 뭐 여하튼 첫 놀이터가 어디였느냐 왈가왈부할 필요도 없이, 초등학생 때 이후로는 내 인생에서 놀이터란 걸어가는 길목에 있는 공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존재가 되었다. 뭐 가끔은 썸 타는 남자애가 우리 집 앞에 왔을 때 은밀하게 접선하는 장소가 되기도 했었지만. 그렇게 나의 놀이터의 역사 1막이 끝나고, 엄마가 되면서 놀이터의 역사 2막이 열린 것이었다.

 

하지만 잊고 있었다. 비루해 보이기만 하는 나의 놀이터 역사 1막에도 호시절은 있었다는 것을. 단지, 우리가 말하는 ‘놀이터’가 아니었을 뿐 나에게도 놀이터 그 자체였던 공간이 있었던 것이다. 그 놀이터에는 옛날 옛적부터 전해 내려오던 이름도 있었다. ‘방동산’  

그 이름을 누가 지었는지, 무슨 뜻인지도 몰랐고, 그저 하늘이 하늘이고 땅이 땅인 것처럼 방동산은 방동산이었다. 우리 집 대문에서 나와 오른쪽으로 난 좁은 흙길을 오십 미터쯤 걸어 나가면 방동산으로 올라가는 길목이 나온다. 꼬불꼬불 맥락 없어 보이지만 나름대로 탄탄하고 꼼꼼하게 난 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얕은 언덕, 방동산이 나온다.

방동산에는 엄청나게 큰 아름드리나무가 있었고 가장 굵게 뻗은 가지에는 아빠가 두 딸을 위해 만들어준 그네가 달려있었다. 곳곳에 의자처럼 평평하게 앉기 좋은 바위들이 있고, 뒤편에는 오두막처럼 작은 집이 있었는데, 마치 어린아이가 그린 그림 속의 집처럼 정사각형에 세모난 지붕, 창문이 두 개, 앙증맞은 굴뚝이 하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15평쯤 되는 작은 땅이었지만 나에게는 그 어떤 세계보다 넓고 가득 차있는 공간이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다락방처럼 아늑하고 비밀스러운 공간이기도 했다.  

방동산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낮은 담장 너머로 우리 집 마당이 보였다. 혼자 올라서서 마당에 있는 가족들을 향해 ‘엄마!!! 아빠!!! 순돌아!!!’ 하고 불렀던 기억이 난다. 아마 한 발 떨어져서 나의 집과 가족을 바라보는 일을 처음 경험한 순간일 것이다. 어딘가 낯설고 두렵지만 동시에 묘한 성취감과 자유로움을 느꼈다. 그렇게 방동산은 나에게 처음으로 ‘나만의 공간’이 되어준 셈이다. 그렇게 나는 나만의 공간에서 나만의 놀이를 했다. 땅에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나뭇가지로 집을 짓기도 하고, 노래를 부르고 재밌는 이야기를 짓기도 했다. 그리고 많은 생각을 했다. 나는 누굴까. 나는 어디서 왔을까. 여기는 어딜까. 내가 모르는 세상은 얼마나 넓을까. 나는 앞으로 어디로 가게 될까. 가면 좋을까 슬플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을 하다 보면 시간이 흐르는지도 몰랐다. 동생에게 말하면 ‘언니가? 그네를 부순 게 아니고?’하면서 믿지 않지만, 정말로 열 살 남짓의 나는 나만의 놀이터에서 나만의 놀이를 하는 아이였다. 그래서일까. 방동산을 떠올리면 언제나 보아의 ‘아틀란티스 소녀’가 자동으로 재생이 된다.  

 

 

 

저 먼 바다 끝엔 뭐가 있을까

다른 무언가 세상과는 먼 얘기

구름 위로 올라가면 보일까

천사와 나팔 부는 아이들

숲 속 어디엔가 귀를 대보면

오직 내게만 작게 들려오는 목소리

꿈을 꾸는 듯이 날아가 볼까

저기 높은 곳 아무도 없는 세계

까만 밤하늘에 밝게 빛나던

별들 가운데 나 태어난 곳 있을까

나는 지구인과 다른 곳에서

내려온 거라 믿고 싶기도 했어

 

 

밤하늘을 바라보며 별 별 생각을 하던 그때의 나를 만나면 무슨 말을 해줄까. 쓸데없는 인터넷 소설 읽지 말고 영어 수학만 열심히 하라고? 아니면 쓸데없는 옷 사지 말고 용돈 잘 모았다가 스무 살 되면 유학길에 오르라고? 그것도 아니면 그 모든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몇 월 몇 주차 로또 번호를..  

그때의 나를 만나면 이렇게 네가 얼마나 시시한 어른이 됐는지 구구절절 설명해주기보단 그냥 그 아이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무엇이 궁금한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이 너를 위로하는지. 그렇게 그 아이를 다시 만나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이십 대 중반쯤 방동산을 찾아가 본 적이 있다. 부모님은 우리가 살던 시골 마을 근처에 아파트 단지에 살고 계시기 때문에 언제든 가보는 건 전혀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어쩐지 선뜻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미루던 일이기도 했다. 더구나 마을을 싹 밀고 진행하던 개발 사업 업체가 부도가 나는 바람에 땅은 보기 흉하게 파여 있었고, 주변 가장자리에 있던 집들도 다 사라지고 몇몇 어르신들만 동네를 지키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더더욱 가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그저 지난날의 추억 속 좋은 풍경으로만 담아두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결혼을 앞두고 인생의 제2막을 앞두고 있던 어느 날, 내 놀이터 역사의 1막을 책임져준, 처음으로 나만의 놀이터가 되어준 방동산에게 인사를 하고 싶었다.  

‘안녕, 나야. 내가 벌써 어른이 됐어.’하고.  

 

십여 년 만에 찾은 동네는 형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달라져 있었다. 그래도 우리 집이 자리하던 터가 직감적으로 눈에 들어왔고, 그 옆으로 돌린 시선 끝에는 방동산이 여전히 불쑥 솟아있었다. 어른이 되어 바라보는 초등학교 운동장이 한없이 작아 보이는 것처럼 나의 드넓은 놀이터였던 방동산은 그저 하나의 작은 오름 같은 모습이었다. 그 가운데 우뚝 서 있는 아름드리나무만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그대로였다. 폐허처럼 무너지고 초라해진 공간 속에서도 꿋꿋하게 변함없이 제 자리를 지켜온 존재. 눈시울이 뜨거워져 나도 모르게 나무를 껴안았다. 어릴 적 이 아름드리나무를 두 손을 힘껏 뻗어 껴안으면서, 어른이 되면 품속에 꼭 안을 수 있을까 궁금했는데. 지금도 여전히 내 품은 하염없이 작았다. 아름드리나무는 그런 존재였다. 언제나 나를 아이로 만들어주는, 내가 안아주지만 사실은 나를 안아주는, 언제나 그 자리에서 기다려주는 나의 놀이터 친구. 믿음직스러운 친구의 옆에 서서 어릴 적처럼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이었지만 내 눈에는 가지런히 줄 서 있는 까만 기와, 옹기종기 모여 있는 장독대, 할머니가 쓰던 사랑채와 아궁이, 뜰에 핀 은방울꽃, 순돌이까지, 그림처럼 펼쳐졌다. 그리고 나의 딸아이를 꼭 닮은 어린 날의 내가 있었다.  

 

 

그렇게도 많은 질문과

풀리지 못한 나의 수많은 얘기가

돌아보고 서면 언제부턴가

나도 몰래 잊고 있던 나만의 비밀

(이제 정말) 왜 이래 나 이제 커버린 걸까

(이제 정말) 뭔가 잃어버린 기억

(지금 내 맘) 이젠 나의 그 작은 소망과

꿈을 잃지 않기를 저 하늘 속에 속삭일래

 

 

 

‘왜 이래, 나 이제 커버린 걸까’하고 노래하기에도 나는 이미 너무 많이 커버렸다. 하지만 여전히 마음속엔 작은 소망과 꿈이 있는 걸 보면 어린 날의 내가 어디선가 숨 쉬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래서일까. 이 나이에도 바다 끝을 바라보면, 상쾌한 바람이 스치면, 숲 속 어딘가에 귀를 대보면 마음이 설렌다. 놀이터의 역사를 더듬거리며 떠올리다 그렇게 난 내가 어른이 된 아틀란티스 소녀라는 걸 깨달았다. 그게 나도 몰래 잊고 있던 나만의 비밀이라는 것도 함께.  

 

딸아이는 어떤 놀이터를 기억하게 될까.  

서울 논현동의 학동 어린이공원과 논현 소나무공원,

강원도 원주의 북원 어린이공원,  

서울 상계동의 느티울 근린공원,  

경기도 고양시의 호수공원,  

앞으로 아이가 추억을 쌓은 집 앞의 놀이터들을 기록해볼까 한다.

일명 김우주의 놀이터 실록.

 

그 기록들이 아이가 어른이 되었을 때 궁금한 것들에 대해 답을 줄 수도 있을지도,

아이의 작은 소망과 꿈을 잊지 않게 해 줄 수도, 잊고 있는 자신만의 비밀을 찾아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나의 놀이터 역사 제2막도 더 이상 지루하고 두렵기만 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놀이터에서 놀기 딱 좋은 계절인 유월. 시원한 물과 아이가 좋아하는 간식거리 한 봉지면 해가 저물 때까지 끄떡없이 놀 수 있을 것이다.  

  

땀을 뻘뻘 흘리며 미끄럼틀을 내려오는 아이의 찰랑이는 머리카락이 윤슬처럼 반짝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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