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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윤이 Mar 26. 2022

INFJ 엄마로 산다는 것

아이유 / 삐삐



작년부터 크게 유행해 여전히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MBTI 검사를 14년 전 처음 접했었다. 대학 신입생 대상 프로그램의 일환이었는데 그 검사를 통해 알게 된 나의 성격유형은 INFJ였다. 선의의 옹호자, 예언자형. 옹호자는 뭐고 예언자는 또 뭐람. 아무것도 몰랐지만 100명이 넘는 학부 동기들 가운데 유일하게 나 혼자 INFJ 유형이었던 것만은 정확히 기억이 난다. 같은 성격유형이 나온 사람끼리 모여 팀플레이를 하는 식의 수업이었는데 INFJ를 호명했을 때 불쑥 솟은 손이 나 하나밖에 없어 매우 황당하고 어쩐지 수치스럽기까지 하던 그때 그 공기가 여전히 잊히지 않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 시간이 흘러 신입사원 시절에 했던 MBTI 검사에서도 역시 INFJ 유형이 나왔고, 결혼하고 출산을 해서 엄마가 된 이후에 받은 MBTI 검사에서도 나는 INFJ 유형이었다. 이쯤 되니 궁금했다. 도대체 INFJ가 뭔데?

‘INFJ는 16개의 유형 중 가장 소수의 유형으로 전 세계 인구의 1.5%를 차지한다고 한다. 인내심이 크고 통찰력과 직관력이 뛰어나며…’ 어쩌고 저쩌고 하는 설명은 너무 고루했고 더욱 현장감 있고 생생한 정보가 궁금했다. 결국 MBTI 카페에 가입해서 INFJ 유형의 사람들이 쓴 글들을 읽기 시작했고, 오십억 지구인을 16개의 유형으로 나누는 게 가당키냐 하냐며 MBTI를 은근히 무시했던 나는 엄청난 충격을 받게 된다. 왜냐면 평생의 고민이자 의문이었던 나의 복잡하고 아리송한 성격의 실체를 그곳에서 만나게 된 것이다. 발가벗은 느낌과 동시에 뭔가 감정이 뻥 뚫리는 것을 경험했다. 세상에 나 같은 사람은 나밖에 없다고 생각했는데 나 같은 사람이 이렇게나 많았다니! 혼자라는 생각에 수치심을 느끼던 스무 살의 내가 위로받는 기분이었다. INFJ의 성격을 정의한 레전드 댓글 모음들을 보면,  

‘히틀러와 예수의 교집합’, ‘게으른 완벽주의자’, ‘생각을 멈출 수 없는 존재’ ‘페르소나를 이용하는 메타몽’ 등 여러 특성이 있었지만 가장 내 마음에 날아와 박힌 키워드는 바로, ‘도어 슬램(Slam the Door)’이었다.    

도어 슬램은 문을 쾅 닫고 나가듯이 관계를 단절해 버리는 것을 말한다. 절교나 손절과도 비슷하지만 조금은 다르다. 절교나 손절은 상대방과의 갈등으로 아예 인연을 끊고 차단해버리는 것을 말한다면 도어 슬램은 혼자 마음의 문을 닫는 걸 말한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에게 하는 도어 슬램은 상대방을 싫어하거나 감정적으로 단절하진 않는다. 하하호호 농담도 잘 주고받지만 그저 마음의 문을 열어주지 않을 뿐이다. 하지만 오래된 대상에게 하는 도어 슬램은 좀 공포스럽다. 이 경우는 상대방을 아예 인생에서 배제해버린다. 함께 나눈 대화, 오랜 추억, 좋았던 시간들 모두 아무 소용없다. 세상에서 가장 가깝던 사람을 갑자기 세상에 없는 사람인 셈 치고 살아가는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고 도어 슬램을 당한 상대방은 ‘갑자기 왜?’라며 급변한 태도에 황당해하겠지만 INFJ의 입장에서는 갑자기 확 닫아버린 게 아니라 충분한 관찰과 유예 기간을 거쳐 도어 슬램의 단계까지 다다른 것이기 때문에 도어 슬램을 되돌리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나는 엄마가 되면서 도어 슬램을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전에도 도어 슬램을 안 해 본 건 아니었지만 대체로 처음부터 나와 잘 맞을 것 같은 소수의 사람 하고만 마음을 나누는 편이었기 때문에 그다지 경험이 많지 않았다. 사회생활을 할 때도 공과 사의 구별이라는 게 서로에게 암묵적인 조건으로 깔려있어 그저 근무시간에만 충실하면 되었고 그 이후에는 내 인생에 개입되는 인간관계가 아니라 별로 힘들지 않았다. 하지만 엄마가 되고나서부터는 달랐다. 특히 내가 (글쓰기라는 저소득 파트타임 일을 하지만 여하튼) 전업주부가 되고 나서부터는 내 친구이자 동료는 아이 친구의 엄마들이 되었고, 이미 이전과는 다른 양상의 인간관계가 시작되고 있었다. 아이를 통해서 만나게 된 나의 동료들은 이전에 만난 어떤 사람들보다 다양한 개성을 뽐냈다. 외모는 물론이고, 나이도 천차만별, 살아온 환경이나 말투, 성격 모든 것이 다른 사람들이었다. 물론 당연히 사람들은 다 다르지만, 만약 아이가 아니었다면 어디 가서 쉽게 만나기도 친해지기도 힘든 다양한 사람들이 ‘아이’라는 공통분모를 통해 만난 격이라, 늘 비슷비슷 고만고만한 사람들만 만나던 나에게는 아무래도 특별한 경험이었다.  

사실 그래서 더 가까워진 인연도 있다. 내가 모르던 세계에서 다르게 살아온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설레는 일이기도 했고, 같은 엄마로서 눈치 보지 않고 아이들에 대해 수다를 떨 수 있는 것도 편하고 즐거웠다. 하지만 모두 내 맘 같지는 않은 법.  

내 상식선으로는 절대 허용할 수 없는 일을 당연하다는 듯이 하고 더 나아가 함께 하길 바라거나, 말하고 싶지 않은 사생활을 캐묻고 굳이 원치 않는 조언이나 충고를 해주거나, 단지 기분 나쁘다는 이유로 은밀하고 철저하게 누군가를 열외 시키는 사람들을 겪을 때면 당혹감과 불쾌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물론 학교 다닐 때도 이런 친구들이 있었지만 그때는 그냥 모른척하면 그만이었지만 엄마들의 세계란 함부로 모른척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었다.  

 

사실 나는 엄마들의 네트워킹을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참 철이 없었지만, 아이들끼리 친구인데 엄마들이 왜 나서서 친분을 쌓느니 마느니 하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이는 핑계일 뿐 자기들이 심심해서 만나는 거라고도 비약해서 생각하기도 했다. 내가 땀을 뻘뻘 흘리며 엄마들 모임에 앉아있을 줄은 상상조차 못 하고. 아이가 4살까지는 아랫집에 사는 아이 어린이집 같은 반 친구의 엄마 한 명과 가끔 만나는 정도였다. 하지만 아이가 5살이 되고 이사를 오며 새 유치원에 입학하면서 상황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새 유치원은 꽤 규모가 큰 곳이라 한 학년에 아이들이 70명 정도 되는 곳이었고, 아이는 많은 아이들 사이에서도 눈에 띄게 작았다. 입학한 지 한 달 정도 되었을 때 담임선생님과의 상담에서 ‘아이는 친구들에게 잘 다가가는데 표현이 너무 적극적이라서 그런지 친구들이 좀 부담스러워하는 경우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이도 친구들도 잘못한 건 없는데 서로가 좀 불편한 상황이라 선생님이 중간에서 이런저런 노력을 하는 모양이었다. 상담을 끝내고 돌아오며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아니나 다를까 그 책임의 화살을 모두 나에게 돌렸고, 내가 기관 밖에서 친구들과 어울릴 기회를 주지 않아서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죄책감이 발동했다. 알량한 자존심을 지키자고 혼자 고고한 척하다가 이렇게 뒤통수를 맞는구나. 그때는 정말 그런 생각이 들었다. 바로 맘 카페를 가입해 아이 유치원을 검색했다. 여러 글 중에 ‘00 유치원 다니는 5세 친구들 있나요?’하는 글을 발견했다. 그 글에는 아이가 이번에 00 유치원에 입학했는데 카페에 같은 유치원 친구들을 있으면 채팅방을 만들어서 정보를 나누자는 취지의 글이었고, 이미 댓글이 주르륵 달려있었다. 아마 새 학기 초에 작성된 글이라 한 달 정도 지난 시점에서 댓글을 달아봤자 소용없을 것 같았다. 바로 그 글을 쓴 작성자에게 쪽지를 보냈다. ‘00 유치원 00반 우주엄마인데요. 혹시 그 채팅방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내 인생에서 가장 적극적이고도 나답지 않은 대시였다. 하지만 지금 나다운 게 무슨 상관인가. 나는 아이가 더 이상 상처받길 원하지 않았고 그 해결방안이 모임에 가입하는 것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있어서 그 어떤 것도 두렵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답장이 왔다. ‘이미 단톡방에 사람이 많아서 안 되겠네요. 다들 더 이상 받지 말자고 이야기한 상태라서요.’

딩- 예상치 못한 거절이었다. 단톡방에 인원이 그렇게 중요한 요소인 걸까? 아, 미리 좀 찾아볼걸. 아니 무슨 대단한 정보를 나눈다고 너무 치사한 거 아니야? 난 태생부터 엄마들 모임을 할 수 없는 사람인 걸까?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 이후 놀이터에서 아이 친구 또래 엄마들이 모여 있는 걸 보면 이상하게 가슴이 메여왔다. 루저가 된 기분마저 들었다. 그로부터 한 일주일 정도 지났을까. 그 작성자에게 다시 쪽지가 왔다. 내 사정이 딱해서(?) 단톡방 사람들에게 물어봤는데 다들 한 명 정도 더 받는 건 괜찮을 것 같다며 초대에 찬성했다는 것이다. 생각이 있음 단톡방으로 들어오라고 번호를 알려줬다. 사실 속으로는 ‘웃기지도 않아, 이랬다 저랬다 야?’하며 빈정거렸지만 한편으로는 ‘이제 됐다!’하는 심정으로 그 채팅방엘 입성했다. 들어서면서도 직감적으로 힘들어질 것이라는 걸 알았지만 힘들어지더라도 아이를 위해 기회를 열어두고 싶었다. 아이가 무슨 반인지, 어디 사는지, 아이는 어디 어린이집을 나왔는지에 대해서 간단하게 브리핑을 했다. 그리고 대망의 나이를 밝히는 시간. 제발 내 또래의 사람들이 많기를 바라며 몇 번을 썼다 지웠다 하다 말했다. ‘저는 88년생이에요.’  

‘88년생이라고? 나랑 거의 열 살 차이네!’ 채팅창의 짧은 행간에서도 충분히 놀라움이 전해졌다. 그렇게 나는 그 채팅방의 막내가 되었다.  

 

그 이후 채팅방의 언니들과 거의 매일 이야기를 나누고 열 명 남짓 되는 인원이 키즈카페를 대관해 만나기도 하고 시간이 맞는 사람들끼리 소모임으로 놀기도 했다. 그렇게 많은 인원이 우르르 몰려다니는 건 대학생 이후 오랜만이라 재미있기도 했지만 대체로는 힘들었다. INFJ인 나는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많은 걸 힘들어하고 1:1 대화나 관계를 선호하는 편이라서 대개는 영혼 없는 리액션을 반복하며 그 자리에 앉아있었다. 유일한 위로는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아이를 지켜보는 일이었다. 점차 원 생활에도 적응을 잘 해내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걸로 족했다. 좀 피곤하긴 해도 채팅방에 들길 잘했다고, 고맙다고 생각하는 날도 많았다. 하지만 점점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지쳐갔다. 그 채팅방의 사람들이 얼마나 좋은 사람들인지와는 관계없이 오로지 ‘나’로서 존재할 수 없는 공간이 숨이 막히고 답답했던 것이다. 더구나 짓궂은 농담이나, 함부로 판단하거나 조언하는 것, 목소리가 큰 사람을 무조건 따라야 하는 것, 그로서 소외되는 약자가 생기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INFJ인 내가,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자주 그 대상이 될 때면 스트레스가 말도 못 했다. 본캐의 나였다면 당연히 불쾌감을 표현했겠지만 이건 내가 아니라 ‘우주엄마‘로의 인간관계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미칠 노릇이었다. 그렇게 마음속에서 경고음이 삐삐 하고 울릴 때마다 나는 아이유의 삐삐를 들었다.

 

 

I don't care

당신의 비밀이 뭔지

저마다의 사정 역시

정중히 사양할게요

not my business

이대로 좋아요

talk talkless

-

Yellow C A R D

이 선 넘으면 침범이야 beep

매너는 여기까지


 

 

그렇게 조용히 몇몇 사람들에게 도어 슬램을 가하고 꾸준히 선을 긋고 지나치게 예의를 차리며 사는 나날이었다. 아니 누가 나한테 악플을 다는 것도, 모여서 내 험담을 하는 것도, 나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저 INFJ 유형의 인간으로 학부모 채팅방 모임의 막내로 생활한다는 것은 정말이지 쉽지 않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거의 매일매일 아이유의 삐삐를 들으면서 마음의 스트레스를 소화시켰다.  

‘그 선 넘으면 정색이야 beep! Stop it! 거리 유지해’하고 노래 부르고 있음 마치 그 순간만큼은 우주 엄마가 아니라 나로서 존재하는 느낌에 사이다를 마신 것처럼 코가 뻥- 뚫려 시원해졌다. 그렇게 아이유의 삐삐로 정신수양을 한 지가 2년이 흘렀고, 그 덕분일까.  

이제는 아예 다른 동네로 이사를 왔고 아이도 다른 기관에 다니고 있지만, 나는 여전히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그 채팅방에 소속되어 있다. 이제는 아무도 내가 그은 선을 넘지 않기도 하고, 설사 그 선을 넘는다고 해도 나에게는 언제나 든든한 아이유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채팅방에는 도어 슬램을 한 사람들도 있지만, 앞으로의 인생을 함께할 좋은 친구들도 있으니까.  

 

분명 앞으로도 아이를 통해 만나는 관계들이 또 생길 것이다. 친해지기도 할 테고, 갈등이나 불만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MBTI에 대해 생각하려고 한다. 우리가 서로를 조금도 이해할 수 없다는 점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MBTI가 이룬 가장 큰 업적일 테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기는 불상사들에 대해서는 괜히 도어 슬램으로 감정 소모하는 대신, 쿨 하게 아이유의 삐삐를 들을 참이다.   

INFJ 엄마로 산다는 것은 참으로 피곤하지만 동시에 다채롭게 배우고 성장하는 일임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든다.  

 

추신. 그나저나, INFJ와 단짝이라는 ENFP 어머니 혹시 어디 안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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