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윤이 Mar 26. 2022

이름과 이름 사이

<Fly away>+<영원함을 꿈꾼다> / 장윤주



어떤 이름을 들었을 때 그 이름을 가장 많이 듣고 부르던 시절로 돌아가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가령, 우연히 라디오에서 중학교 때 열렬히 흠모하던 아이돌 그룹의 이름을 들었을 때 괜히 마음이 달뜨는 것이나, 사람이 많은 어디선가 스무 살 때 만났던 첫사랑의 이름이 크게 들렸을 때 나도 모르게 귓불이 간지러워 오는 것처럼 말이다.

사실 육아와 집안일, 일과 공부, 속수무책으로 벌여놓은 일들을 수습하느라 바삐 지낸 지난 몇 년 동안은 누군가의 이름만으로 추억여행을 떠나기엔 시간도 마음도 틈이 없었다. 아니, 없다고 생각했다. 몇 해 전, 좋아하는 식당에서 밥을 먹다 라디오에서 장윤주의 새 앨범이 나왔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장윤주!’

 

모델이자 방송인이자 요즘에는 연기자로도 활동하고 있는 장윤주를 처음 알게 된 건 패션 잡지나 TV 프로그램을 통해서는 아니었다. 나는 그녀를 뮤지션으로 처음 접했고, 그녀의 음악을 좋아했다. 담담하고도 깨끗한 목소리가 듣기 좋았고, 간결하고 산뜻한 멜로디와 따뜻하고 솔직한 가사가 마음에 들어왔다.   

그중에서도 2008년 발매된 장윤주의 앨범 <Dream>에 수록된 ‘Fly away’는 오랜 시간 동안 내 미니홈피 배경음악이기도 했고, 나지막한 기타 소리로 시작하는 그 노래를 들으면 발걸음이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어 사뿐사뿐 걸으며 참 열심히 들었었다.

그렇게 장윤주가 작업한 음악들을 항상 챙겨 들었지만,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는 동안 그녀의 음악을 까맣게 잊고 살았다. 그녀도 나와 비슷한 시기에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고 있었으니 새 앨범이 나올 거라는 기대도 못 했던 것 같다. 그렇게 나태한 나의 예상을 깨고 2017년, 바지런히 새로 발매된 앨범의 이름은 <LISA>. 장윤주의 딸아이 이름이었다.

순간, 그녀의 첫 번째 앨범의 이름이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왜였을까. <Dream>.  

Dream과 LISA. LISA와 Dream.  

나의 꿈과 딸아이. 딸아이와 나의 꿈.

이름과 이름 사이,    

그 틈 속에 흘러버린 긴 시간과 아득한 변화들이 느껴졌다.  

 

 

-

향기로운 와인과 달콤한 케이크 한 조각

지친 하루 외로운 내 맘을 위로하네

바람을 따라 내 맘도 따라

소나기가 내리네 나의 오후

누구도 내게 상관 안 하고

내가 누굴 기다리지도 않고

가끔은 외로운 이 순간 난 지금 즐기고 있어

뭐든지 내가 하면 되고

어디든 갈 수 있잖아

Fly away 中

 

내 일에 상관하는 사람도 내가 상관해야 하는 사람도 없고, 뭐든지 할 수 있고 어디든 갈 수 있었던, 가끔 외로운 감정 같은 건 충분히 즐길 수 있었던 스물아홉의 뮤지션 장윤주.

그 당시 스물한 살이었던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향기로운 와인과 달콤한 케이크 한 조각 대신 치킨과 맥주를 즐기는 것만 다르고 나머지는 다 같았다. 누구도 내게 상관 안 하고 내가 누굴 기다리지도 않았다. 뭘 하든, 어딜 가든 내 마음대로 내 바람대로 결정했다.

 

 

-

기다림을 지나서 널 처음 만난 그날에

아름다운 너를 품에 안고 기쁜 눈물 흘렸네

하지만 난 꿈이 많은 여자인데 아직도 난 나를 찾아서 저 멀리 자유롭게 가고픈데

너의 맑은 눈에 비치는 나의 모습 부족하고 미안해

그런 날 보며 웃어주는 너의 미소 사랑을 알게 되네

너의 맑은 눈에 비치는 나의 모습 많은 것이 변했어

그런 날 보며 웃어주는 너의 미소 깊은 위로를 주네

언젠가 이 모든 순간이 그리워질 그런 날이 올 거야

영원함을 꿈꾼다 中

 

 

하지만 이제는 그녀도 나도 달라져 있었다.  

기분 좋은 설렘 대신 기쁨의 눈물을 흘렸고, 뭐든지 하고 어디든 갈 수 있던 이십 대의 청춘처럼 살 수는 없어졌다. 하지만 여전히 나를 찾아서 자유롭게 날고 싶은 마음을 아이의 눈을 보며 아이의 미소를 보며 잠재우고 노래하고 있었다.  

한때 뮤즈였고 닮고 싶었던 사람. 자유롭게 꿈을 꾸며 세상을 누비던 한 여자가 엄마가 되어, 오로지 딸을 위한 노래를 지어 부르는 모습. 나는 처음으로 팬이 아닌 함께 성장해 온 여자, 그리고 함께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엄마의 마음으로 그녀를 바라보게 되었다.  

그리고는 알았다. 그녀가 화려하게 빛나던 젊은 날엔 절대 느낄 수 없던 깊은 사랑과 위로를 경험했을 거라는 걸. 그리고 그 시간이 다른 사람에게 깊은 사랑과 위로를 나누어줄 힘을 만들어 주었을 거라는 걸.

장윤주의 새 노래를 들으며 깊은 사랑을 느끼고 깊은 위로를 받은 내가 증명하고 있었다.

 

‘영원함을 꿈꾼다’를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서울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인 원주로 도망가 있을 때였다. 아이가 생기며 변해버린 세상에 여전히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하며 헤맸고, 내 이름이 사라지고 있다는 두려움에 벌벌 떨었고, 나 자신이 옅어져 간다는 우울함에 잠겨 있었다.

그랬던 내게 뮤지션 장윤주, 아니 함께 아이를 키우고 있는 윤주 언니가 말했다.

한결 단단해진 목소리로, 그러나 여전히 따뜻하고 맑은 목소리로.

언젠가 이 모든 순간이 그리워질 그런 날이 올 거라고.

네 옆에서 잠들어 있는 아이를 안고 영원함을 꿈꾸라고.

그건 너를 잃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네가 되는 것이라고.

 

장윤주의 ‘Fly away’를 들으며 운동화 끈을 고쳐 매고 여행을 떠나던 스물두 살의 나는, 장윤주의 ‘영원함을 꿈꾼다’를 들으며 운동화 끈을 고쳐 매고 아이와 함께 놀이터에서 뛰노는 서른두 살의 내가 되어있었다. 그러고 보면 나는 사라지지도 옅어지지도 않았다. 여전히 운동화를 즐겨 신고, 장윤주의 음악을 좋아하는, 그러나 나보다 더 사랑하는 세계를 갖게 된,  

시간이 지나 새롭게 만나게 된 권나윤일뿐.  

 

시간만큼 정직한 게 있을까.

성장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일만큼 즐거운 게 있을까.

나는 정직하게 성장하고 있는 걸까.  

과연 나는 지난날보다 더 깊은 사랑을 더 깊은 위로를 누군가에게 전할 수 있을까.

이러한 생각의 끝에서 나는 서둘러 청소를 끝내고 부엌의 식탁에 앉아,  

그저 이 글을 쓴다.

 

앞으로도 이름과 이름 사이에서  

영원함을 꿈꾸며, 자유롭게 날아가듯 살고 싶다.

이전 08화 그냥 주부세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