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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윤이 Mar 26. 2022

그냥 주부세요?

제 이름은요  / 한예리



날씨가 좋던 어느 날, 늦잠 잔 아이를 느지막이 등원시키고 집으로 어슬렁어슬렁 가고 있는데, 학습지 판촉물을 든 중년의 여성이 다가와 말을 건넸다. 유독 나이 든 여성의 부탁(?)을 거절하기 힘들어하는 특성의 소유자인 나는 시킬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는 학습지 판촉물을 받아 들고 아이 교육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점차 대화의 소재가 고갈되며 내가 자리를 뜰 요량으로 눈치를 살피고 있을 무렵 그녀가 대뜸 말했다.  

‘그냥 주부세요?’  

아무런 준비태세를 갖추지 못한 채 미사일 폭격을 받는다는 게 이런 기분일까. 지금도 그때 느꼈던 그 감정을 한마디로 표현하기가 무척이나 어렵다. 우선, 온몸의 근육 모두가 버퍼링에 걸려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왜냐면 ‘그냥 주부’가 대체 무엇을 뜻하는지 사전적 정의를 모르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냥 주부는 어떤 주부이지? 주부에게도 프로와 아마추어가 존재하는 걸까. 아니면 그 어떤 임금노동에도 참여하지 않는 주부를 일컫는 신조어인 걸까.

나의 철저한 당혹감이 상대방에게도 느껴졌던지 그분은 친절하게도 금방 질문의 모양을 바꾸어 다시 내 귀로 내리꽂았다.  

‘그냥 집에 계신 거죠?’

네? 이전의 질문보다 더한 타격감과 함께 영문을 알 수 없는 수치심이 몰려들었다. 대충 ‘아, 네네.’하고 얼버무리고 돌아서서 멍한 얼굴로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나는 갑자기 뭔가에 홀린 사람처럼 침실의 침대보와 베갯잇을 다 벗겨서 세탁기에 욱여넣고, 내내 모른 척해온 화장실 구석의 물때를 박박 밀고, 시장에서 한 망에 2,000원에 사 온 양파를 산산조각 내어 장아찌를 담갔다. 무의식적으로 나는 그냥 가만히 집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나는 그냥 주부가 아니라 이렇게 효율적으로 움직일 줄 아는 프로 주부라는 걸, 이 세상에 그냥은 없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던 걸까. 하지만 폭풍 같은 집안일을 말끔히 끝내고 나서도 내 마음엔 내내 ‘그냥 주부세요? 그냥 집에 계신 거죠?’라는 말이 강강술래를 하듯 빙글빙글 계속해서 맴돌았다. 그 질문에 분명 묘한 불쾌감과 수치심을 느끼면서도 왜 느끼는지 잘 몰라서 짜증이 났다. 아니, 사실 내 마음의 문제라는 걸 명백하게 알면서도 자꾸 이름 모를 엄마뻘의 여성에게 화풀이하듯 원망을 쏟아내는 나에게 더 짜증이 났는지도 모른다.  

그 당시 나는 아이가 세 살이 되던 해에 이런저런 이유로 워킹맘 생활을 청산한 후, 스스로 한심할 정도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상태였다. 물론 육아와 살림에 필요한 기본적인 것들은 과제처럼 혹은 업무처럼 열심히 수행해냈지만, 오로지 나를 위한 작업은 그 어떤 것도 하지 않았다. 책을 빌려보거나 영화를 보는 것도, 새 옷을 사거나 맛있는 것을 사 먹는 것도, 친구를 만나거나 여행을 가는 것도 하지 않았다. 마치 내가 어디까지 언제까지 아무것도 안 하고 살 수 있을까 시험해보기로 작정한 듯이 말이다. 이렇게 어떠한 목적도 없이, 땅 위에서 한 뼘쯤 발을 떼고 둥둥 떠다니며 지낸 적은 정말이지 처음이었다. 어느 날에는 이런 생활이 매우 자유롭고 편안해서 천국 같았고, 또 다른 어느 날에는 내 이름 석 자로 된 인생은 이제 다 끝나버렸고 고로 난 망했다는 생각에 괴로웠다.  

전업주부는 아무리 열심히 해도 피드백해 주는 사람 하나 없고 조금만 게으름을 피우면 스스로 한심해지기 쉬운 자리였다. 워킹맘 시절 그렇게도 간절히 부러워했고 염원했던 자리였는데 이렇게 감춰진(?) 서러움이 있었다니. 아니, 사실 몰랐던 것도 아닌데 직접 겪으니 마치 사춘기를 다시 겪는 듯 자아정체성의 혼란이 나를 괴롭게 했다. 집안을 돌보고 아이를 전적으로 양육하는 주부의 역할을 성실히 해내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피곤한 몸은 여지없이 깨닫고 있는데, 불안한 마음만은 그걸 인정해주지 않고 스스로 하는 일을 깎아내리고 있었다. 게다가 겉으로는 잘난 척하며 별것 아니라면서 속으로는 그 주부의 역할마저도 미숙하기 그지없는 내 모습을 인정하기가 어려웠다. ‘전업주부’의 영역에 속하는 사람이었지만 마음은 직장인도 전업주부도 아닌 그사이 어디 즈음에서 부유하는 사이의 인간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 일 년 간 나는 그 어느 것도 할 수 없는 붕 뜬 상태로 지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봄날의 살얼음처럼 아슬아슬한 마음이었으니 ‘그냥 주부세요?’ 그 한 마디가 나에게는 와장창! 하고 마음을 깨트리는 소리처럼 강력했던 것이다.  

그냥 주부 말고 work가 있는 주부, 그냥 집에 있는 사람 말고 돈을 벌면서 집에 있는 사람이 하고 싶다는, 아니 그래야만 한다는 누구도 강요한 적 없지만 어쩌면 모두가 부여하고 있는 책임감이 들었다. 아르바이트로 원고 청탁을 받아 글을 쓰는 일을 종종 했지만 늘 일거리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고민 끝에 집 근처에 있는 사립대학 교직원 공채 시험에 응시했고 나름 복잡하고 치열한 과정을 거쳐 합격했다. 가장 하고 싶은 일은 아니었지만 가장 오랜 기간 해 온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었고 무엇보다 학교 급식이 그리웠다. 새로운 직장에 대한 흥미, 또래 동기들과의 활기찬 채팅방, 여전히 귀찮은 부서 회식, 매일 화장을 하고 정장을 입는 일에 대한 수고로움. 새로운 일을 시작하며 느껴진 감정들이 모두 내 이름으로 산다는 즐거움으로 수렴되었다. 하지만 아이의 하원부터 내 퇴근까지 아이를 맡아주기로 한 엄마가 무척이나 피곤해 보였고 출퇴근 시간에 초조해하는 내 모습을 멀리서 바라볼 수밖에 없는 걸 남편이 꽤 힘들어했다. 아이는 아침 시간에 힘들어하고 저녁 시간에는 아쉬워했지만 그래도 의외로 잘 적응해주어 버텨볼까 했지만 가족들은 그냥 도전했고 경험했다는 것에 의의를 두 길 바랐다. 나도 동의했고 그렇게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전업주부로의 귀환. 남편은 이 일을 계기로 이제 해 보고 싶었던 것 다 했고 좀 쉬었으면 이제 둥둥 떠다니는 생활은 접어두고 다시 두 발로 딛고 서길 바랐다. 이제 다시 서울로 돌아오라고. 그래서 나는 다시 서울로 올라오기로 스스로와 협상을 했다.  

 

서울로 돌아와서도 여전히 나의 정체성은 주부였다. 나는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나는 왜 회사를 그리워할까? 내가 주부라는 게 싫은가?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런 심오한 질문이 머리를 빙글빙글 돌 때는 유일한 해결책은 책을 읽는 것이다. 나는 정아은의 ‘당신이 집에서 논다는 거짓말’이라는 제목을 보고 홀린 듯이 집어 들고 읽기 시작했다. 책에서는 마리아 비즈의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라는 책을 인용하여 이내 나의 마음을 대변해주기 시작했다. 책장을 다 덮은 후에야 나는 내가 ‘그냥 주부세요?’, ‘집에 그냥 계신 거죠?’라는 질문에 크게 당황하고 얼굴이 붉어질 만큼 억울해하던 감정을 확실히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건 그 아줌마의 인격에 문제가 있어서도 아니고, 내가 자격지심으로 똘똘 뭉친 못난이라 서도 아니었다. 그저 오랜 역사와 관성을 지닌 통념적인 말들이었음을, 그 말에 담긴 역사적, 문화적 함의를 꿰뚫어 보는 통찰력을 기르는 것이 내가 해야 하는 일이었음을.  

여전히 완벽한 이해에 다다른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주부’로 살아가는 나의 정체성에 대해서 스스로 폄하하거나 위축되는 일은 줄어들었다.   

나는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편하게 먹고사는 사람이 아니라, 남편이 편히 돈을 벌어올 수 있도록 아이를 양육하고 살림을 돌보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하고 인정하게 된 것이다. 실제로 당장 내가 아파서 병원에라도 입원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아이는? 남편은? 양가 부모님은? 아마 그들의 삶의 균형은 완벽하게 무너질 것이다. 내가 하는 일을 다른 사람에게 돈을 주고 부탁하려면 남편이 벌어오는 돈 전부가 들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주부’라는 비임금 노동자가 있기 때문에 남편이 임금 노동을 할 수 있는 것이라고, 그러므로 우리 관계는 상호 의존하는 관계라고. 나는 당당히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뭐, 실제로 이렇게 누군가에게 말해본 적은 없지만 적어도 누군가가 던진 악의 없는 질문에 괜한 적개심을 갖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 괄목할 만한 성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밖에서 바라보는 나는 여전히 누군가의 엄마로 집에서 노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 마음 안에서 바라보는 나는 가정을 이루고 집안을 돌보고 아이를 기르는, 인간의 노동 중에서 가장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는 대단한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다. 물론 여전히 밥하고 청소하고 빨래하는 일이 나의 주요 업무라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고, 근사하게 차려입고 빌딩 숲으로 나가 낯선 이들과 섞이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지만 그래도 지난날처럼 내가 나라는 게 싫거나 내가 누군지 몰라 부유하는 일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가끔은, 사원증을 목에 매고 테이크아웃 커피 잔을 손에 쥔 채 동료들과 삼삼오오 이야기꽃을 피우며 길을 걷는 싱그러운 내 또래의 젊은 직장인들을 지나쳐갈 때면 괜히 마음이 쿵 내려앉는다. 그리곤 이름 석 자가 적혀 있는 사원증에 시선이 머물며 내 이름을 괜히 중얼거리게 된다. 강윤이, 강윤이, 하고.  


이름이 없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내 이름 석 자가 사무치게 그리워지는 날이면, 2013년 드라마스페셜 ‘연우의 여름’의 OST였던 ‘제 이름은요’라는 노래를 찾아 듣는다. 한예리 배우의 서툴지만 담담하고 깊은 목소리가 산뜻한 기타 선율과 함께 흘러나오면, 그때 그 여름의 씩씩한 연우가 생각이 나며 덩달아 씩씩한 강윤이가 되고 싶어 진다.  

 

 

 

이따금 문득 내 이름을 중얼거리죠.

흰 종이 한 장 가득히 끄적여도 보죠.

내가 나라는 게 불쑥 겁이 날 땐

나도 모르게 종이를 구겨 버리죠

할머닌 아빨 내 이름으로 부르시고

아빠는 엄말 내 이름으로 부르시고

내가 나라는 게 가끔 낯설을 때

엄마가 불러주면

조금 안심이 되죠

여름밤 골목길 산책하노라면

지겹던 풍경도 살갑기만 해

보기 좋게 낡은 것 같아

나도 그럴 수 있다면

-

여름 밥 골목길 산책하노라면

정답게 누군갈 부르는 소리

저 멀리서 다가올수록

내 이름에 가까워져

오늘도 문득 내 이름을 중얼거리죠

흰 종이 한 장 가득히

끄적여도 보죠

이게 나라는 게 좀 어색하지만

그대가 불러주면 조금 나아질 거야

좋아질 거야 나아질 거야  

 

 

이 노래를 듣고 있으면 어린 시절 동네 아줌마들이나 멀고 가까운 친척들이 엄마에게 ‘강윤아하고 부르는 장면과 우주 친구의 엄마들이 나에게 ‘우주야’하고 부르는 장면들이 교차하며 떠오른다. 그리고 엄마의 이름은 인희고, 내 이름은 강윤이고, 우주의 이름은 영원히 우주라는 당연하고 자명한 사실을 다시금 마음속으로 다짐하듯이 왼다.

엄마는 인희고, 나는 강윤이고, 우주는 우주다, 라고.   

주부로 살아가는 나는 내 이름이 강윤이라는 것이 불쑥 겁이 날 때도 가끔은 낯설기도 좀 어색하기도 하다. 그럴 때면 나는 흰 종이 한 장 가득 이름을 끄적이는 대신 이 노래를 반복 재생하며 듣다가 엄마에게 전화를 한다. ‘응, 강윤아‘하는 엄마의 목소리가 전화기 건너편에서 들려오면 많이 안심이 되니까.  

동시에 엄마라는 세계 속에서 점점 옅어지던 나의 이름을 정성스럽게 보듬고 가꾸어 그 세계 바깥으로 ‘이게 내 이름이에요!’하고 외치고 싶어 진다.  

그래서일까. 얼마 전 놀이터에서 새로 알게 된 아이 친구 엄마와 놀이터에 서서 세 시간이 넘도록 대화를 나누다 헤어졌는데도 서로의 이름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고 화들짝 놀라며 한밤중에 마치 큰일이 난 사람처럼 황급히 아이 친구 엄마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그런데 이름이 뭐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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