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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윤이 Mar 26. 2022

마이 리틀 포레스트로

나영이네 냉장고 / 양희은



나에겐 고질병이 있다. 그것은 바로, 향수병.

고향 친구들이 그토록 동경하던 서울로 입성해 환호성을 지르며 날마다 축제를 치르던 스무 살 시절, 나는 홀로 눈물을 훔치며 고향인 원주로 가는 버스에 자주 몸을 싣고 했었다.

이유는 모른다. 대학 생활은 꽤 재미있었고 도심의 반짝이는 야경이나 이름 모를 사람들이 북적이는 거리, 화려한 쇼윈도 속의 마네킹은 자주 나를 설레게 했다. 그럼에도 나는 항상 고향이 그리웠고 늘 돌아가고 싶었다. 이제는 고향을 떠난 지도 어느덧 십 년이 훌쩍 넘어 더 이상 고향이 그립다고 눈물을 훔치는 일도 없고, 계획에 없이 훌쩍 고향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싣는 일은 더더욱 없는 서른 너머의 어른이 되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고향이 그립고, 그리움이 짙어지는 날에는 꼭 임순례 감독의 <리틀 포레스트>를 켜고 가만히 들여다본다. 영화의 주인공인 혜원이가 임용고시에 실패한 이후 고향으로 도망치듯 내려갔을 때, 다들 떠났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돌아간 것이라고 생각했다. 딸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마음이기도 했고, 혜원이의 마음으로 고향으로 내려간 기억이 선명했기 때문이다.   

 

서른. 세 살배기 딸아이를 데리고 스무 살 때 떠나온 고향으로 이사했던 날. 나는 아직 가구가 다 들어오지 않아 텅 빈 거실에 누워 ‘다시 돌아왔구나.’하고 생각하며 낮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렇다. 떠나서 왔다기엔 너무나도 익숙하고 따뜻한 공간. 나에게 고향은 심리적 안전 기지였다. 타향살이가 고되게 느껴질 때마다 고속버스에 몸을 태우고 엄마 아빠가 있는 집으로 내달렸는데, 신기한 건 엄마 아빠의 집이 아니라 터미널에만 도착해도 이미 잔뜩 날이 서 있던 마음이 순두부처럼 몽글몽글 보드랍게 변했다는 것이다. 엄마가 차려준 밥을 먹고 아빠가 부쳐주는 감자전을 먹고 나면 꿈도 들어설 틈 없는 단잠을 자곤 했었다. 언제나 그 자리에서 그 모습으로 나를 보듬어 줄 고향이, 부모가 있다는 것은 가히 행운에 가까운 일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아가고 있던 것 같다.  

 

혜원이가 그랬던 것처럼 나는 고향에서 (육아를 제외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오로지 내 손으로 밥을 해 먹었다. 아침 겸 점심으로는 그날그날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만들어 먹고, 저녁에는 아이와 함께 먹으면 좋은 음식을 만들었다. 어느 날에는 백종원의 레시피를 따르기도 하고 또 어느 날에는 엄마가 일러주는 대로 따라 하기도, 그냥 내 멋대로 만들기도 했다. 먹고 치우고 먹고 치우다 보면 하루가 다 지났다. 먹고사는 일의 숭고함은 직장생활을 통해서가 아니라 삼시 세끼를 스스로 챙겨 먹는 일을 통해서 더욱 확연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 집은 (주말에만 오는 남편을 빼면) 나와 딸아이 두 식구뿐인데도 이 정도인데, 삼 남매에 시어머니까지 모시고 살던 우리 엄마는 얼마나 오랜 시간을 부엌에서 보냈을까. 그때서야 내가 나 혼자 큰 게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서야.  

이렇게 아무렇게나 늘어져서 살아도 크게 아프지 않고 잘 지낼 수 있는 건 그때 엄마가 차려준 삼시 세끼 덕분이라는 것을. 어찌 되었든 열심히 살아보고자 하는 마음은 무슨 일이 있어도 아침밥을 꼭 차려주던 엄마의 부지런함을 옆에서 보며 절로 터득한 것이라는 것을. 무너졌다가도 금방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은 매일 아침 보글보글 탁탁 칙칙 부엌에서 나는 쾌활한 소음을 들으며 눈을 떴던 평화로운 하루하루가 쌓여 기를 수 있었다는 것을.  

아무것도 모르고 살던 내가 당연한 것들을 깨우쳐가는 동안, 나의 고향은 언제나 그랬듯이 그 자리에서 성실하게 성장했다. ‘봄이면 씨앗 뿌려 여름이면 꽃이 피네 가을이면 풍년 되어 겨울이면 행복하지’라는 노래 가사처럼 늦지도 빠르지도 않게 정직하고 충실하게 변화하는 자연을 바라보는 일은 그 자체만으로도 나를 풍요롭게 만들었다.

 

주변의 많은 사람은 물었다. 도대체 거기서 왜 그러고 있느냐고. 혹은 여기서 왜 이러고 있느냐고. 서울에 있는 직장도, 집도, 남편도, 편리하고 세련된 도시의 환경들도 뒤로 하고 아무 이유도 없이 딸아이를 데리고 시골로 내려와 사는 나를, 일원 어치만큼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들을 바라보면서 나는 그냥 멋쩍게 웃었다. 왜냐하면 나도 그 이유를 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보고할 답변 따위는 상관없을 만큼 그저 좋았다.

혜원이의 엄마가 그랬듯이 자연과 요리, 그리고 딸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매일매일 나의 작은 숲이 되었고, 나는 아름답고 울창한 나만의 작은 숲에서 하루하루 행복했으니까.

 

 

나는 매일 아침 일어나

냉장고를 열어서 보네

눌은밥에 도라지 무침

멸치볶음을 먹었으면

-

현미밥에 고등어구이

김치볶음을 먹었으면

-

냉장고에 먹을 게 많은 집에  

살았으면 정말로 좋겠네

 

 

아침에 일어나면 양희은 이모(진짜 이모는 아니지만 어쩐지 늘 이모 같은)의 목소리를 들으며 세수도 하기 전에 냉장고부터 열었다. 그 계절에 가장 맛있는 야채들을 꺼내 씻고, 쌀도 씻어서 불렸다. 압력밥솥에는 아이가 싫어하는 검은콩이나 아이가 좋아하는 고구마를 같이 넣는 날도 있었다. 쌀뜨물에 고등어를 담가 두었다가 밀가루는 조금 기름은 넉넉히 둘러 구웠다. 불려놓은 미역을 들기름과 다진 마늘을 넣어 들들 볶다가 전날 종일 끓인 사골국물을 넣어 푹 끓이고, 엄마가 나눠준 김치는 접시에 그대로 담아내고. 아랫집 동생이 만들어 준 멸치볶음과 우엉조림도 소꿉놀이하는 것처럼 꺼내 놓는다. 그 고소하고 달큼한 냄새가 온 집안에 퍼지면 어쩐지 제대로 살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니까 아이를 위한다는 핑계로 10년 동안 끊었던 아침밥을 챙겨 먹으며, 나의 몸도 마음도 건강을 되찾아 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일까. 고향에서 보내는 일 년 동안 아무런 답도 찾지 못했고, 아무런 문제를 해결하지도 못했지만 아무래도 상관없다고도 생각했다. 그저 고향 집으로 내려가자마자 배추 된장국을 만들어 먹고는 세상에서 제일 배부른 사람의 표정으로 드러눕는 혜원이의 얼굴과, 볼에 살이 오동통하게 올라 인디언 보조개가 움푹 패는 딸아이의 얼굴이 오버랩되며 머릿속을 맴돌 뿐이었다.

 

그렇게 다시금 답을 찾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삶으로, 서울로 돌아왔다. 아이는 유치원을 다니기 시작했고 남편은 일상을 되찾았고 나는 새롭게 적응하느라 고군분투하며 바빴다. 그러다 오랜만에 일찍 눈이 떠진 주말 아침, 냉장고를 열었다. 애호박을 반달 모양으로 썰고 다진 마늘에 들기름을 들들 볶은 팬에 넣고는 새우젓으로 간을 했다. 남은 애호박에 미소된장을 풀어 끓이고, 시어머니가 주신 간장에 잔멸치를 볶고, 계란을 부드럽게 풀어 명란을 넣고 계란찜을 만들었다. 오랜만에 아침 식사. 깨끗이 씻은 오이 고추를 담아내며 막 차림을 끝내려는 때에, 눈을 비비며 일어난 아이는 거실로 나오자마자 내 품으로 달려들더니 숨을 크게 들이쉬며 말했다.  

 원주 냄새난다!’

 

그 순간, 나는 ‘도대체 거기서 왜 그러고 있느냐’고 물었던 사람들의 질문에 대한 답을 비로소 찾았다. 내가 고향으로 아이를 데리고 내려갔던 이유를. 그 시간이 나에게 준 해답을.

짧은 시간이었지만 아이는 그곳에 뿌리를 내리고 흙냄새와 바람과 햇볕과 엄마의 음식을 온전히 마음껏 느꼈던 것이다. 내가 어렸을 때 그랬던 것처럼. 혜원이가 그랬던 것처럼.

스무 살, 외롭고 어려운 도시 생활을 씩씩하게 이어나갈 수 있었던 것도,  

서른 살, 다시 돌아오기 위한 긴 여행을 거침없이 떠날 수 있던 것도,  

모두 고향의 흙냄새와 바람과 햇볕과 정성이 담긴 음식의 힘이었다는 것을.  

나는 아이의 한 마디로부터 알게 되었다.  

 

혜원이의 엄마는 말한다. 모든 것은 타이밍이라고. 아빠가 영영 떠난 후에도 다시 서울로 돌아가지 않은 이유는 너를 이곳에 심고 뿌리내리게 하고 싶어서라고. 네가 힘들 때마다 이곳의 흙냄새와 바람과 햇볕을 기억하면 언제든 다시 털고 일어날 수 있을 거라고. 엄마는 믿는다고. 그리고 몇 년 만에 딸에게 보낸 편지에는 감자 빵 레시피가 적혀있다.  

혜원이의 엄마가 쓴 편지는 어쩌면 내가 1년이라는 시간을 통틀어 아이에게 전하고 싶던 메시지였는지 모른다. 건강한 자연과 정성 가득한 음식, 누군가를 위한 사랑이 너의 작은 숲이 되길 바란다고. 살아가며 힘들 때면 그 작은 숲을 펼칠 수 있는 가장 따뜻한 곳을 찾아가 배부르게 먹고 편히 쉬길 바란다고. 그리고 기왕이면 그 작은 숲이 엄마와의 추억을 가진 곳이면 참 좋겠다고.

 

딸아이가 커서 혼자 사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평일에는 허겁지겁 일어나 겨우 차려입고 출근해서 정신없이 보내다 12시 땡! 하면 조미료 폭탄의 자극적인 음식을 점심으로 사 먹고 중간중간 모니터 앞에서 군것질을 하다가 저녁엔 친구들을 만나 지글지글 맵고 기름진 음식에 술까지 곁들여 먹고 소화가 되기도 전에 잠드는 풍경. 주말에는 늦잠을 자고 일어나 소파에 누워 버티듯 굶고 있다가 점심에 배달음식을 배 터지게 먹고는 금방 꺼진 배를 군것질로 입막음하다가 저녁에 도저히 참을 수 없이 배가 고파지면 편의점에서 사 온 인스턴트 음식으로 겨우겨우 배고픔을 잠재우며 시체처럼 누워있는 풍경. 상상인데도 이렇게나 구체적인 건 다 경험치 덕분이겠지.   

아이가 독립하게 되는 그 어느 날이 되면, 양희은 이모의 ‘나영이네 냉장고’를 꼭 들려주고 싶다. 누구라도 단호하지만 따뜻한 그 내레이션을 들으면 주섬주섬 일어나 냉장고를 열게 될 것이므로. 제 손으로 해 먹지는 못해도 엄마가 냉장고에 채워준 반찬을 꺼내 감사한 마음으로 먹게 될 것이므로. 그리고 그 든든해진 속으로 세상 속으로 씩씩하게 걸어 나갈 것이므로.   

 

 

아침밥에 로망이 내겐 있어

혼자 사는 누구나 그렇지

잠자는 나를 억지로 깨워놓고

이렇게 말해주면 좋겠네  

‘얘 모름지기 사람은

아침밥을 먹어야

속이 든든한 거야

먹고 또 자더라도 일단 먹자

어 아침 먹자 ‘

 

 

미슐랭 5 스타의 레스토랑,  

휴양지 호텔에서 먹는 조식,  

옥토버페스트에서 마시는 맥주가 아니라   

눌은밥에 도라지 무침, 멸치볶음, 고등어구이, 김치볶음이 차려진 아침밥이  

진정한 로망이라는 것을 내 딸 유주는 언제쯤 알게 될까.  

이제는 누군가가 나에게 ‘그땐 원주에 왜 내려간 거야?’하고 물으면  

곧바로 대답할 수 있다.

“나 배고파서 내려갔어. 진짜 배고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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