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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윤이 Mar 26. 2022

좋아해, 이유는 없어.

걷고 싶다 / 조용필



남편은 누군가를 좋아하는 데는 이유가 없다는 꽤 근사해 보이는 말을 했지만, 나는 근사하지 않은 사람이라서일까. 무언가를 좋아하는 그 이유를 손가락을 접어가며 생각해보는 걸 좋아한다. 예를 들어 나는 남편의 하얗고 동그란 볼, 골똘하게 생각에 잠긴 듯 꾹 입을 다물고 있는 옆모습, 부드럽고 다정한 목소리를 좋아한다. 또 나는, 도서관의 고요한 공기와 공짜로 책을 누리게 해주는 너그러움, 퀴퀴하지만 계속 맡고 싶어지는 냄새, 책 한 권을 거쳐 간 수많은 이들의 흔적들을 마주할 수 있다는 것이 좋다. 이렇게 좋아하는 것의 좋아하는 이유를 떠올리다 보면 기분이 좋아지고, 그 무언가를 더욱더 사랑하게 되기 때문에 좋아하는 이유를 꼽는다는 건 어떻게 보면 하나의 리추얼인 것이다.   

하지만 좋아하면서도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보지 않은 대상이 딱 하나 있다. 그건 바로 내 딸 우주. 이유 같은 건 생각할 겨를도 없이 좋아하게 된 존재이자, 딱히 좋은 구석이 없다 한들 평생 동안 좋아할 수밖에 없는 사이이기 때문일까.  

우주가 좋은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날 밤, 여전히 꽤 오래 이어지고 있는 불면증 때문에 또 잠을 설치고 있었다. 옆에서 세상모르고 쌔근쌔근 자고 있는 우주를 바라보다가 그 아이의 다섯 개의 발가락에 시선이 멈췄다. 옥수수 알갱이 같기도 하고, 작은 조약돌 같기도 한 그 발가락 안쪽 보드라운 살결에 내 다섯 손가락을 대본다. 그러다 이내 피아노를 치듯 아무렇게나 막 만져도 깨기는커녕 움직이지도 않는다. 어쩜 이리도 귀여울까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지는 그 순간, 한밤의 적막을 깨고 내 귀에는 조용필의 걷고 싶다, 그 첫 구절이 저절로 플레이된다.  

 

 

이런 날이 있지

물 흐르듯 살다가

행복이 살에 닿은 듯이

선명한 밤

내 곁에 있구나

네가 나의 빛이구나

멀리도 와주었다 나의 사랑아  

 

 

그렇다. 이 아이야말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만 같은 지루한 내 인생에서 유일하게 살에 닿은 듯 선명한 행복을 느끼게 해주는 존재인 것이다. 그러니 좋아하는 이유 같은 게 도대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하지만 그래도 잠이 안 오는 날 밤에 혼자 누워 ‘로또가 당첨되면 뭘 해야 할까’하는 쓸모없는 고민을 하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 내가 우주를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 꼽아보기 시작한다.  

이름 김우주. 여자아이. 나이는 일곱 살, 키 108cm, 몸무게 15.5kg. 작고 마른 체형. 오밀조밀 눈코 입이 들어선 아기 고양이 같은 얼굴이 좋고, 숱이 별로 없어 늘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는 머리칼이 좋다. 몸집에 비해 큰 발이 시원시원하니 좋고, 길쭉길쭉 곧게 뻗은 손가락이 좋다. 나와는 다른 하이톤 목소리로 나의 말버릇을 닮은 말투가 좋고, 아빠를 닮은 얼굴로 내 표정을 짓는 게 좋다. 이제 막 샤워를 하고 나와 향긋한 향이 나는 자그마한 몸도, 일어나자마자 내 얼굴 앞에서 하품할 때 입에서 나는 단내도 좋다. 내가 좋아하는 걸그룹 노래를 춤까지 따라 하며 불러주는 넉살이 좋고, 별일이 아닌데도 깔깔대고 웃거나 또 별일 아닌데도 엉엉 우는 너의 해맑음이 좋다. 누구든 안아주길 좋아하는 사랑이 넘치는 아이라 좋고, 무언가 스스로 해냈을 때 뿌듯해하며 ‘노력은 멋진 거야!’하고 감탄할 줄 아는 모습이 좋다.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소설 제목처럼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대화들을 나눌 수 있는 딸이라 좋고, 가끔 내가 울어도 물끄러미 바라보다 눈물을 닦아주며 ‘엄마는 엄마지?’하고 단단한 물음을 던지는 속 깊은 네가 좋다. 열 손가락을 꼽은 지 이미 한참. 이러다가는 꼬박 밤을 새울 것 같아 이제 그만 생각해야지 하며 눈을 감고 다시 노래 가사를 더듬는다.  

 

 

 

불안한 나의 마음을  

언제나 쉬게 했던

모든 것이 다 괜찮을 거야

말해주던 오 나의 사람아  

난 널 안고 울었지만  

넌 나를 품은 채로 웃었네

오늘 같은 밤엔

전부 놓고 모두 내려놓고서

너와 걷고 싶다

너와 걷고 싶어

소리 내 부르는 봄이 되는

네 이름을 크게 부르며

보드라운 니 손을 품에 넣고서

 

 

 

사실 이토록 좋고 또 좋은 아이를 낳고도, 나는 참 많이 울었다. 산후우울증이 잠잠해지고 이제 좀 씩씩하게 지낼만하다 생각했는데 예고도 없이 찾아온 팬데믹으로 계획했던 일들이 완전히 잠식당하자 다시금 어딘가 숨어있던 우울감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온종일 바깥에서 뛰노는 걸 좋아하는 아이와 단둘이 24평의 아파트에서 24시간을 보내면서, 어느 날에는 냉장고에 문을 열다가 ‘아, 도망가고 싶다‘ 중얼거리기도 했다. 그런데 꼭 그럴 때면 그런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아이가 갑자기 내 치마 품으로 들어와 방긋 웃는다. 그러고 보면 갓 태어나 응애응애 우는 아이를 안고 철도 없이 몸이 힘들다며 그 갓난아이와 함께 돌림노래처럼 울기 시작하면, 그때도 아이는 거짓말처럼 울음을 뚝 그치고 날 가만히 바라보았었다. 그리고는 이내 곧 웃어줬다. 방-긋.  

그렇게 내가 너를 안고 울 때면 너는 언제나 나를 품은 채로 웃었던 것이다. 그것이 어떤 사랑인지는 이제는 안다.  

 

 

제아무리 ‘내 이름은요!’하면서 잘난척해 보아도 결국 내가 소리 내 부르는 이름은 봄이 되는 네 이름이라는 것을. ‘엄마는 엄마지?’하는 너의 단단한 물음의 답은 ‘그럼, 엄마는 엄마야.’ 뿐이라는 것을. 나에게 이 삶의 마지막 순간이 다가온다면,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내가 좋아하는 우리 딸과 걷고 싶으리라는 것을.

잠든 아이의 보드라운 손을 품에 넣고서 노랫말을 읊다가 알게 되었다.  

 

이제는 누군가 ‘너는 네 딸이 왜 좋아?’하고 물어보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좋아해, 이유는 없어.  

아무래도 많이 울면서 근사한 사람이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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