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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윤이 Mar 26. 2022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

그치지 않는 노래 / 김현철



새해가 되자마자 아이가 아프기 시작했다.

그간 돌발진이며 수족구, 장염을 비롯한 숱한 고비들을 넘겨온 터라 39도가 넘는 열에도 당황하지 않고 차분히 해열제와 미온수 마사지를 준비했다.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에 스스로 감탄하며 꽤 프로 엄마가 되었다 자만하고 있을 때. 방심은 꼭 그런 때 내 뒤통수를 세게 갈겨왔다.

떨어질 것처럼 좀체 떨어지지 않는 열은 5일을 지속했고 눈이 벌게서 배가 아프다고 뒹굴뒹굴 구르기 시작한 아이를 보고 짬이고 프로고 뭐고 잠옷을 입은 채로 응급실로 내달리며, 자식을 키우는 일이란 매일매일이 신입사원인 것을 새삼 다시 되뇌었다.

아이는 꼬박 일주일을 내내 아팠다.

새해부터 김우주 보호자라는 이름표를 달고 우주어머님으로 불리며 아이의 손발 노릇을 하고 있자니 나는 올해도 망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이름을 잊고 싶지 않아서, 잃고 싶지 않아서 지푸라기를 붙들고 발버둥을 치고 있는데 하늘에서는 콧방귀를 뀌어 그 지푸라기를 훠이 날리고는 ‘너는 그래 봤자 우주 엄마야, 어딜 까불어?’ 하는 것만 같았다.

설상가상 아이 아빠는 독일과 파리로 긴 출장을 앞두고 있었고, 친정과 시댁 모두 아이를 대신 돌봐 줄 여력이 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우주엄마의 역할을 다할 사람은 오로지 나뿐이었다. 우주엄마는 나뿐이라는 것은 아주 자명한 사실이기도 했고.

전장에 뛰어드는 기사처럼 우주엄마로 무장을 하고 병원을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는 동안, 내가 약속했던 원고 작업이나 받기로 계획되어있던 교육이나 함께 하는 공부 모임 같은 건 끼어들 틈이 없었다. 하고 싶었고 해야만 하는 일들이 목에 걸린 가시처럼 내내 맴돌았지만, 들리지 않는 혼잣말을 반복하며 되뇌었다. 난 우주엄마니까. 난 우주엄마니까.

마침 그 주에는 겨울비가 마치 장맛비처럼 내렸다.

주룩주룩 지치지도 않고 내리는 겨울비를 바라보면서 ‘도대체 이 비는 언제 그치는 걸까’ 생각하다 알게 되었다. 이 비는 곧 그치겠지만 언제든지 또다시 내릴 수 있다는 걸. 아니 내릴 것이라는 걸. 아, 엄마가 되었다는 것은 절대 그칠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구나. 그런 생각이 새삼, 문득 마음을 스쳤다.

누군가의 친구, 어딘가에 노동자, 어떤 어떠한 사람인 강윤이는 언제든 그칠 수 있고 또 그치기 싫어도 그칠 수밖에 없을지 모르지만 우주엄마는 절대 그칠 수도 없고 그쳐서도 안 된다는 것이라는 걸 말이다. 그러니 그치지 않을 유일한 내 이름은 ‘엄마’라는 것을 대학병원 입원실 창문에 떨어지는 빗방울을 바라보다 어이없이 깨닫게 된 것이다.  

매우 슬플 줄 알았는데 의외로 담담해졌고 오히려 안심이 뒤섞인 평온함이 찾아왔다. 그동안은 ‘엄마 말고 강윤이‘라는 마음가짐으로 내내 그 경계선에서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를 했다면 이제는 ‘강윤이이자 엄마’로서 서로서로 바통을 주고받고 도와가며 이어달리기를 해야겠다는 평화로운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실제로 줄다리기보다는 이어 달리리가 훨씬 적성에 잘 맞았다.  

그리고 정말 거짓말처럼 아이가 퇴원하자마자 나는 같은 병명으로 병원에 입원하여 김우주 보호자가 아닌 강윤이로 하루를 지낼 수 있었다. 운명이란.  

 

 

그렇게 나는 병원에서 어색하게 심심한 아침에,

아이의 귀여운 목소리가 그리워지는 오후에,

아이에게 자장가를 불러주고 싶은 밤에,

김현철의 그치지 않는 노래를 들으며 흥얼거렸다.

 

-

그치지 않는 노래 아빠가 부른 노래

엄마가 부른 노래 그치지 않는 노래

그치지 않는 노래 하루가 기뻤을 때

웃으며 듣는 노래 그치지 않는 노래

그치지 않는 노래 슬픔이 가득할 때

위로를 받는 노래 그치지 않는 노래

그치지 않는 노래 아빠 사랑 기억해

엄마 사랑 기억해 그치지 않는 노래

랄랄라 라 라라 라라 라 라라 라라.

 

 

하루가 기쁘든 슬프든, 웃을 때든 울 때든, 위로받고 싶을 때나 사랑받고 싶을 때도, 만날 때나 떠날 때도 그치지 않을 내 이름은 엄마라는 것을. 아이는 내 이름을 영원히 엄마로 노래할 것이라는 것을.

어느 겨울날, 아데노바이러스는 아주 똑똑히 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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