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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윤이 Mar 26. 2022

엄마가 됐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주저하는 연인들을 위해


이제 막 일곱 살이 된 딸아이는 요즘 들어 부쩍 친구 관계에 관심이 많다. 이사를 오느라 새로운 기관에 적응을 하는 과정이기도 하고, 형제가 없다 보니 더욱 친구에게 집중하는 것 같기도 하고. 잠들기 전 아이와 침대에 누워 오늘을 보내며 좋았던 일과 속상했던 일을 이야기하는데 어김없이 그때마다 아이가 꺼내는 주제는 '친구'다. 유치원에서 블록을 만들다 필요한 부분이 없어서 속상해하고 있으니 친구가 찾아주어서 너무 기뻤다는 이야기나, 점심 먹고 자기랑 놀기로 했던 친구가 다른 친구랑 먼저 놀아서 슬펐다는 이야기들.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아이는 묻는다. 엄마는 어렸을 때 어땠어? 친구가 많이 있었어? 친구랑 사이좋게 지냈어? 글쎄. 아이와의 대화를 이어가기 위해 내 마음 우물 속에 이야기들을 길어본다. 그렇게 아이러니하게도 '친구'라는 존재에서 가장 멀어져 있는 때에 나는 매일 밤 '친구'에 대해 떠올리고 있는 것이다.  

사실 아이를 낳고 기르며 안 그래도 안 좋은 기억력이 바닥을 쳐서 가끔 내가 좋아했던 연예인의 이름도 헷갈리고, 심지어 내가 몇 살에 결혼했었더라 몇 초간 곰곰이 생각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니 친구들과의 에피소드 같은 것은 이제 막 샤워를 끝마친 화장실의 거울처럼 뿌옇기만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에 남는 기억이 있다는 건 매우 인상 깊은 장면이겠지.


일곱 살. 나는 우주처럼 일곱 살이 되던 해에 이사를 했는데 1년밖에 살지 않았던 짧은 기억의 조각이라 사진처럼 선명하게 남아있다. 사회복지공무원이었던 아빠가 원주에서 강릉으로 발령이 나면서 우리는 강릉 옥계라는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된다. 바닷가의 작은 시골마을이었고 나와 동갑인 여자아이 둘이 있었는데 그 애들은 당연하게도 단짝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내가 나타난 것이다. 어쩐지 심상치 않아 보이는 여자애가. 아기자기 평화롭게 노는 것보다는 경쟁하길 좋아하는 왈가닥 승부사였으니 보통의 여자애들은 나를 좀 힘들어했었다. 걔네들은 나를 대놓고 싫어하지 않았지만 은근히 나한테만 안 알려주는 비밀을 만들거나 둘이만 몰래 놀다가 들키는 일이 많았다. 그럴 때 나는 속상한 마음보다는 '어쭈? 너네 또 그랬어?' 하면서 온갖 방식으로 걔네를 괴롭혔던 것 같다. 하여튼 평범하지는 않았다. 초등학교 1학년 때는 다시 원주로 돌아와 입학을 했는데 그때 역시 만만치 않았다. 짝꿍이 정해지자마자 책상에 공정하지 않게 금을 긋고는 여길 넘어오는 모든 물건들을 잘라버리겠다고 선언했고 나보다 두 배는 덩치가 더 큰 그 남자애는 덜덜 떨며 하루하루를 보냈단다. 그러다 학기 초에 소풍날 나와 함께 있는 우리 엄마를 보고는 그 남자애가 조심스럽게 다가와 '아줌마, 저 강윤이랑 짝하기 너무 싫어요'라고 했던 일화는 두고두고 내려오는 우리 집의 구비 전설 같은 존재. 그렇게 나는 좋게 말하면 괴짜였고 나쁘게 말하면 꼴통 같은 애였다. 그 이야기를 해주면 우주는 깔깔깔 너무 좋아하며 웃는다. 본 투 비 어른처럼 보이는 엄마의 흑역사를 듣는 게 신기하고 재밌는 모양이다. 그러다 2학년에 올라가면서 나는 별안간 모범생으로 탈바꿈해 그 이후로 학창 시절을 끝마칠 때까지 쭉 반장도 도맡아 하고 친구들과도 잘 지내고 공부도 열심히 했다. 이 반전의 역사를 말해주면 아이는 동그란 두 눈을 반짝이며 듣다가 말한다.

'그러니까 엄마, 우정은 망가져도 고칠 수 있는 거지?‘


세상에 그 해맑은 질문을 남기고 까무룩 잠이 들어버린 아이의 머리칼을 쓸어내리며 어쩐지 많은 생각에 잠기던 밤,

나는 잔나비의 '주저하는 연인들을 위해'라는 노래를 들으며 그 언젠가 추억할 그 밤 위에 갈피를 꽂아둔 페이지를 열었다.


한창 싸이월드를 즐겨하던 스무 살의 어느 즈음. 서로 유쾌하고 다정하게 지냈지만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된 고등학교 때 친구로부터 생각지도 못한 쪽지를 받았다.

아마 '안녕? 오랜만이다. 잘 지내지?'로 시작하는 쪽지였을 것이다. 평범한 안부인사 뒤에 그녀는 그 당시 대유행하던 이병률의 <끌림> 중 한 구절을 적어 보냈다.

'넌 친구를 마중 나왔는데 탑승자 명단을 확인했더니 친구는 아예 비행기를 타지 않았다고 했고, 그 친구가 탔을 거라 생각했던 비행기조차 나고야로 회항했다고 말했어. 넌 그 친구를 아주 좋아하는 것 같았고 난 이상하게 그 한 번도 본 적 없는 친구를 슬쩍 질투했지. 그래, 넌 네가 좋아하는 모든 걸 말해버리는 순간, 누구나 그 대상을 질투하게 만들어버리는, 이상한 매력을 지닌 아이였지.'

이 문장을 보는 순간 네가 생각이 났다며. 그래서 뜬금없지만 너에게 꼭 말해주고 싶었다고. 그런 이상한 매력을 가진 네가 꼭 행복하길 멀리서나마 응원하겠노라, 투박했지만 순도 백 프로의 진심을 꾹꾹 눌러 담은 쪽지였다.

이상한 매력. 그 아리송한 단어는,

한 때는 아주 가까웠지만 끝내는 안부조차 모르는 사이가 된 사람들의 얼굴이 늘어날 때마다 어김없이 툭툭 떠올라 내 마음을 괴롭게 했다.

여전히 나는 그 '이상한 매력'에 대해 잘 모른다. 아직도 내게 유효한 매력인지, 무엇이 이상하다는 건지, 좋은 건지 안 좋은 건지, '매력'만을 보고 마음을 깊이 주고 나눈 사람들이 곁을 떠나는 게 그 '이상한' 모습 때문인 건지. 그러니까 이 결말의 모든 원인이 나 때문인 건지 말이다.

하지만 '주저하는 연인들'을 반복 재생하며 듣던 그 밤에 알게 된 건,

그건 그냥 어긋난 관계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 원인이 내 못난 마음이든, 네 못난 마음이든 상관없이 그걸 따져가며 애를 쓸 만큼의 마음의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았을 뿐이라는 걸.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그저 닳아버려 연소된 것뿐이라는 걸 말이다. 시간이 또 지나고 또 어떤 사람을 맞이하고 또 어떤 사람을 보내게 될지 지금의 나는 전혀 가늠할 수가 없고 마음대로 되지 않을 테지만 '언젠가 또 그날이 온대도 서둘러 뒤돌지 않고 마주 보던 그대로 뒷걸음치면서 서로의 안녕을 보면' 될 일이라는 것도.



스무 살 때의 싸이월드 쪽지처럼, 서른넷의 어느 날에 인스타그램 디엠으로 메시지가 하나 날아왔다.

'너는 지금 어떤 사람일까? 너는 어떤 네 모습이 마음에 들까? 내 메시지를 받은 네 기분은 어떨까?' 물음표로 가득 메운 메시지였다.

아주 가까웠지만 이제는 안부조차 모르는 사이, 사실 이제는 기억도 잘 나지 않아 그 어떤 사과도 원망도 할 수 없는 사이, 그래서 아무렇지 않아도 아무나 될 수 없는 사이의 친구에게서.

하지만 그때와 달라진 점은 이제는 더 이상 그 쪽지가 내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제는 피고 지는 마음을 안다.

그 마음들을 떠올릴 때면 '주저하는 연인'들을 듣고 싶고 그 노래를 듣고 있다 보면 나는 이상하게 떡볶이가 먹고 싶어질 뿐.

그러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가 되어도 언제나 떡볶이는 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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