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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준택 Spirit Care Aug 07. 2022

세상의 모든 주워들은 말

창의력 없는 자의 변(辯)

그러고 보면 진정 순수한 창작이 있을까?


하나님조차도 자신을 본떠 인간을 만들었다고 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창세기 1장 27절)


내가 쓰는 글의 대부분은 어디서 주워들은 얘기다. 그것이 공부를 한 것이든 어디서 우연히 보고 들은 것이든 말이다. 내 생각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도 그럴 것이, 요즘처럼 인터넷 등을 통해 정보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나의 머리엔 인풋(input)만 될 뿐 창의적인 아웃풋(output) 기능은 약해지는 것 같다. 생각의 힘(흔히 생각의 '근육'이라고 표현되는)이 퇴화하는 것이다. 실제로 지하철에서 보면 나를 포함한 거의 모든 사람들은 스마트폰에 코를 박고 있다. 활자중독과도 같은 영상 중독이다. 어른들이 애들 보고 게임중독, 인터넷 중독이라고 나무랄 자격이 있는지 모를 일이다.  


예전엔 TV를 바보상자라고 했다. 극장에서 보는 영화를 제외하면 일상생활에서 영상 콘텐츠를 접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는 TV 였다. 그 외의 비영상 콘텐츠는 신문이나 책 정도였을 것이고 나머지 시간에는 사람과 대화를 하거나 혼자서 생각(멋진 말로 '사색'이라고 하자)을 했을 것이다.


영화 '찰리와 초콜릿 공장'
"모두 명심해, 절대 애들을 TV 옆에 두면 안돼. TV는 바보상자. 애들의 상상력을 무디게 만들지 마음의 눈까지도 멀게 만들지.  동심의 세계도 빼앗아 가지. 애들 머리는 녹슬게 되고 아무 생각 못하게 돼."(영화 '찰리와 초콜릿 공장' 중에서)


지금은 어떤가. 그 '중간중간 빈 시간'이 없다. 그럴 틈이 없다. 왜냐면 지금은 TV, 영화, 신문 그리고 책이 모두 스마트폰 속에 있기 때문이다. 늘 내 손바닥 안에서 모든 걸 보고 듣고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뭐 하고 있는지도 볼 수가 있다. 너무너무너무 많은 정보와 콘텐츠가 있다. 하루 종일 봐도 재미난 게 넘쳐난다. 그리고 거의 모든 일처리도 스마트 기기로 할 수 있다. 커뮤니케이션도 할 수 있다. 손에서 스마트폰을 놓을 수가 없다.  


예전에 이리저리 바쁘게 시간 들여하던 모든 것들을 스마트폰 하나로 해결할 수 있으니 우리 인간은 그만큼 더 여유가 있어지고 여가를 즐기고 느긋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걸까? 예를 들어, 지하철 오는 시간과 정보를 스마트폰으로 실시간 확인할 수 있으니 더 여유가 생긴 걸까? 반대로 곧 지하철이 도착한다는 정보를 보고 몇 분 더 일찍 타겠다고 뛰는 사람들을 보며 그렇지 않다고(여유가 생긴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건 지나친 일일까?  


스마트폰은 '바보상자' 정도가 아니라 인간을 콘텐츠 읽어 들이는 기계로(또는 소비자... 즉 소비하는 놈(?), 다른 말로 하면 소비하고 돈을 지불하는 '바보'로) 만드는 것 같다. 그렇게 무차별적으로 정보와 콘텐츠를 접하게 되는 우리 인간은, 나는, 점점 더 생각을 하지 않게 된다. 생각을 할 수 없게 된다.  

윌리엄 셰익스피어

나는 이 글 맨 처음에 "그러고 보면 진정 순수한 창작이 있을까?"라고 물었다. 그래, 그러고 보면 셰익스피어의 위대한 희곡들 조차도 그 이전 시대의 작품이나 이야기, 신화, 전설 등에서 줄거리를 차용하거나 원형을 따르지 않았던가. 그 위대한 셰익스피어까지도 말이다. 


나도 이 글을 쓰면서 얼마나 많이 인터넷을 검색했던가. 셰익스피어 때는 인터넷도 스마트폰도 없었겠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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