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 서정주의 '신부'
대기한다.
계속 기다린다.
그러다,
기다리는 게 만성이 되었다.
대기...
만성...,
대기...대기대기대기대
기대를 말자. 끝.
문득, 서정주의 시집 <질마재 신화>(1975)에 실린 <신부>라는 시가 떠오른다.
신부는 초록 저고리 다홍 치마로 겨우 귀밑머리만 풀리운 채 신랑하고 첫날밤을 아직 앉아 있었는데, 신랑이 그만 오줌이 급해져서 냉큼 일어나 달려가는 바람에 옷자락이 문 돌쩌귀에 걸렸습니다. 그것을 신랑은 생각이 또 급해서 제 신부가 음탕해서 그 새를 못 참아서 뒤에서 손으로 잡아당기는 거라고, 그렇게만 알곤 뒤로 안 돌아보고 나가 버렸습니다. 문 돌쩌귀에 걸린 옷자락이 찢어진 채로 오줌 누곤 못 쓰겠다면 달아나 버렸습니다. 그러고 나서 40년인가 50년이 지나간 뒤에 뜻밖에 딴 볼일이 생겨 이 신부네 집 옆을 지나가다가 그래도 잠시 궁금해서 신부방 문을 열고 들여다보니 신부는 귀밑머리만 풀린 첫날밤 모양 그대로 초록 저고리 다홍 치마로 아직도 고스란히 앉아 있었습니다. 안쓰러운 생각이 들어 그 어깨를 가서 어루만지니 그 때서야 매운 재가 되어 폭삭 내려앉아 버렸습니다. 초록 재와 다홍 재로 내려앉아 버렸습니다.
안쓰러운 생각이 들어 그 어깨를 가서 어루만지니 그 때서야 매운 재가 되어 폭삭 내려앉아 버렸습니다.
재가 되어 내려앉아 버렸다니....그것도 폭삭 말이다... 어깨를 어루만졌을 뿐인데...
40~50년을 꼼짝 않고 앉아 기다렸으니... 그럴 만도 하겠거니 하며,
아무튼, 예전에 이 시를 읽으면서 특히 '재가 되어 내려앉아버렸다'는 구절을 읽을 때면,
내 억장이 무너지는 듯하였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