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죽음을 계기로 다시는 세상에 이런 비극이 없기를....",
세상에 알려진 어떤 죽음이 있고 나면 뉴스를 통해 종종 전해지는 이야기다. '죽음은 설명되어야 한다'는 글을 일전에 올린 적이 있다. 특히 사고와 같은 갑작스러운 죽음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https://brunch.co.kr/@ujuboygpqn/323
우리가 평소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준비하자고 하는 것은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의미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다. 사랑하는 사람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게 되었을 때, 우리는 크나큰 상실감을 겪게 되는데 갑작스러운 죽음은 설명되어야 할 뿐 아니라 때로는 의미가 있어야 한다. 생명만큼이나 소중한, 의미 말이다. 비록 사랑하는 대상은 상실되었지만 그 죽음의 의미는 살아있는 자들에게 기억되어야 한다. 헛된 죽음이 아니어야 한다.
우리가 잘 아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은 1970년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는 말을 남기고 산화했다.
2001년, 다른 사람을 구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지하철 선로에 뛰어들었다가 세상을 떠난 고 이수현 군의 죽음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있을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여전히 그 죽음의 의미를 기리고 있다.
세상에는 알려지지 않은 많은 의미 있는 죽음들이 있다. 사회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하더라도 모든 죽음은 남겨진 그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죽음이기도 하다. 그 의미를, 삶의 의미를, 평소 우리가 죽음을 통해서 깨닫고자 하는 것이 죽음학의 목적과 의미이기도 하다.
https://www.yna.co.kr/view/AKR20210123049700073
https://www.chosun.com/international/japan/2024/12/18/QSQPGZEOURHEBATZFIS5DLRDQA/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