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적인 정서와 감정에 대하여
“지나간 일에 새로운 눈물을 낭비하지 말자”
(영화, 신과 함께-죄와 벌, 2017)
고대 그리스의 비극작가 에우리피데스는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진다.
“Waste no fresh tears over old griefs.” 이미 지나간 슬픔에 새 눈물을 낭비하지 말라.
이 문장은, 한국 영화 〈신과 함께〉에서도 등장한다.
상실은 시간을 멈추게 한다.
사람을 잃고, 관계를 잃고, 어떤 시절을 잃으면 우리는 그 순간에 오래 머문다.
그때 그렇게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조금만 더 잘했더라면
왜 나는 그 순간에 그러지 못했을까
이 질문들은 모두 과거를 향해 있다.
문제는, 그 질문이 애도를 넘어서 자책과 형벌이 될 때다.
우리는 종종 이미 끝난 사건을 끝나지 않은 재판처럼 오늘의 나에게 계속 들이댄다.
에우리피데스의 문장이나〈신과 함께〉의 대사는 결코 이런 의미가 아니다.
“울지 마라”
“잊어버려라”
“강해져라”
오히려 그 반대다. 이 문장들이 말하는 것은 이미 충분히 흘린 눈물 위에
또다시 현재의 눈물을 쏟지 말라는 뜻에 가깝다.
애도는 필요하다. 상실은 애도 없이 지나갈 수 없다.
억지로 잊힌 슬픔은 언젠가 다른 모습으로 돌아온다.
치유는 강제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상실의 아픔은 시간표대로 끝나지 않는다.
충분히 울 필요가 있다
충분히 그리워해야 한다
충분히 아파해야 한다
그러나 애도의 목적은 그 자리에 영원히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 아픔을 안고도 앞으로 걸어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애도는 기억을 지우는 일이 아니라
기억이 삶을 마비시키지 않도록 자리를 정리하는 과정이다.
지나간 일을 소중히 여기는 것과 지나간 일에 삶을 묶어두는 것은 다르다.
우리는 과거를 애도할 수 있다. 하지만 과거를 위해 오늘의 하루를 모두 바칠 필요는 없다.
울어야 할 만큼 울었다면,
이제는 묻지 말자.
“왜 그랬을까” 대신 이 질문을 남겨두자.
“이 남은 시간을, 나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그 질문이 시작되는 지점에서
비로소 애도는 끝나고 삶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