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의 위로』, '알 것도 같은' 삶

곽아람 지음, 2025년 3월에서 4월 읽음

by UJUU


공부: (명) 배우고 익히는 것



대학은 배움의 공간이기도 하지만 유예의 기간이기도 하다. 이 책의 마지막 20 챕터에 나오는 『필경사 바틀비』를 나도 학부 수업에서 배운 적이 있었다. 정확한 과목명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때의 나도 분명 이 길지 않은 이야기에 미묘한 감명을 받았다. 『어느 세일즈맨의 죽음』과 비슷한 회색의 이미지로 그려지는 작품이다. 작가는 그 작품을 관통하는 I prefer not to알 것도 같다고 하였다. 내게 교양은 그런 '알 것도 같다'의 연속이다.


원래 책을 읽기 전에 책날개의 저자 설명이나 서문을 훑고 가는데 이 책은 왜였는지 책날개의 저자 소개를 읽지 않았다. 운명 같은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서울대학교 졸업생이 공부에 대해 하는 이야기라는 걸 알고 시작했으면 약간의 편견을 가졌을지도 모르겠다. 자격지심이냐고 묻는다면 … 당연히 없지 않다!

대학이 아무리 취업의 장이 되었어도 필수적으로 교양을 듣는 건 좋은 것 같다. 나의 모교가 후마니타스를 외치며 듣게 한 여러 인문학 수업들이 나를 못내 뿌듯하게 했었다.



무용한 공부


그 시절, 우리는 무엇 때문에 청춘의 일부를 투자하여 대학을 졸업하면 더 이상 쓸 일 없을 것 같은 언어를 붙들고 끙끙대며 머리를 싸매었던 것일까? 어떤 힘이 우리를 지식의 세계로 인도하였으며, 그 미지의 세계를 헤매며 끝없이 공부하고 또 공부하도록 만들었던 것일까?

『공부의 위로』p. 304


나는 무용한 공부를 좋아한다. 취미라고 하긴 낯부끄럽지만 내 책장을 기울이고 있는 두꺼운 책들의 분야는 암호학, 천문학, 라틴어, 고급 영문법 … 공부하는 마음먹기로 취미를 정정해야겠다.

그런 의미에서 대학 교양 수업은 얼마나 좋은가! 책을 사놓고 한 장도 펴지 않는 일이 없게 해 준다.

학교를 다닐 때에 종종 친구들과 사실 우리는 공부가 싫은 게 아니라 시험과 평가가 싫은 거야.라는 말을 했던 기억이 있다. 역시 무용한 공부를 좋아하는 세상에 더 많이 있었고 그런 기억을 소중히 간직하여 꺼내 놓은 작가의 글을 읽는 것이 따스히 느껴졌다.



연속성


일기를 쓰면 행복감이 증진됨 ― 자기 자신을 드러내고 지지받는 경험을 할 수 있으므로.

『공부의 위로』p. 295


오래전에 저자의 선생님의 입에서 흘러나온 이 말은 시간을 지나 글자를 통해 나에게 닿았다. 그리고 나는 그 문장을 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게 배움과 쓰임이 어디로 닿을지도 모르게 영원히 흘러갈 것이라는 사실이 기쁘게 느껴진다.



공감


산만한 성격 탓인지 늘 스페셜리스트보단 제너럴리스트임(이것 또한 중학생 때 영어 지문에서 배운 개념이다. 10년 넘도록 잘 써먹고 있다.)에 뿌듯함을 느끼는 나여서 그런 걸진 모르겠지만, 길지 않은 평생을 자잘한 것을 배우며 어딜 가도 말을 섞을 수 있는 잔지식이 쌓이게 되었다. 이는 공감능력이 높지 않은 나에게도 자연스러운 대화의 물꼬를 트게 해 준다.



지루한 인생을 향한 위로


그 낡고 허름한 지상(地上)의 강의실에서 우리는 천상(天上)의 언어를 배우고 있었고, 그 언어는 대부분의 수강생들에게 삶의 잉여였지만 분명 '위안'이었다. 세상은 우리에게 '쓸모'를 요구하지만 유용한 것만이 반드시 의미 있지는 않으며 실용만이 답은 아니라는 그런, 위로.

『공부의 위로』p. 306


수업을 듣고 시험을 봐도 천재가 아니고서야 평생 기억에 남을 수 없다. 교양뿐만 아니라 전공 지식도 마찬가지다. 이후에 자주 꺼냈다면 자연스럽게 쓰게 되지만 그렇지 않은 구석의 부분은 머릿속 어딘가에 먼지를 뒤집어쓰고 갇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공부의 좋은 점은 살짝 스쳐도 써먹을 수 있다는 점이다. 말끝마다 논문을 쓸 것도 아니고, 지나가다 들은 음악이 클래식 음악 수업 때 들은 것이라든가, 영화 유튜브에서 이동진 평론가가 말하는 〈시민 케인〉을 수업에서 분석한 적이 있다든가. 혹은 모두가 알고 있는 〈반지의 제왕〉이나 〈스파이더맨 1〉이 영웅 서사를 그대로 안고 있다던가. 이런 알 것도 같은 소소한 기억이 스쳐 지나갈 수 있는 순간을 더 풍요롭게 한다. 굳이 큰 쓸모는 필요 없다. 이것 자체가 나를 위한 쓸모이자 위안이다.

어차피 재미없는 인생, 나를 위한 공부는 언젠가 툭 튀어나와 미래의 내가 잠시 미소 짓게 할 것이다.



커버 이미지: 게르하르트 리히터, 읽는 사람

책 표지의 이미지도 이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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