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끝의 버섯』 그리고 세계 안의 모든 것

애나 로웬하웁트 칭 지음, 2025년 3월 읽음

by UJUU




우리 것인 줄만 알았던 통제된 세계가 실패했을 때, 통제받지 않는 버섯의 삶이 선물이자 길잡이가 되어 준다.

『세계 끝의 버섯』 p.23


아쉽게도 원문을 저장해 두지 않았지만 X(사실 난 아직 일론 머스크가 있을 방향을 째려보며 트위터라고 부른다)에서 누군가 "이 책을 읽으면 며칠간 인생을 사랑하게 된다"라는 식의 말을 써 놓은 것을 보고 그럼 읽어줘야지!라고 생각했다. (원문을 언젠가 다시 타임라인에서 만나게 되면 꼭 출처를 남기겠다.) 도서관 앱을 켜서 검색하자 근처의 모든 도서관에서 대출 중 혹은 심지어 예약 중이었고, 지금 내 뒤에도 나의 반납을 기다리는 여러 주민분들이 있다. 빨리 반납하지 못해 죄송할 따름이다.

500페이지가 넘고, 팬시한 표지가 아닌 마치 사전 같은 양장본인 데다가, 가벼운 소설도 아니지만 읽고자 하는 사람이 줄을 선 이 책의 매력은 무엇일까?



관계


임박한 반납일자에 문장을 하나씩 뜯어보지 못하고 후루룩 읽고 난 내가 한 단어로 이 책을 정의하자면 관계라고 말하겠다. 버섯이라는 큰 흐름을 따르고 있지만 그 길에서 여러 나라와 여러 집단과 여러 이념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은 나에게 이 모든 것이 얼마나 얽혀 있는지 알라고 소리치는 것 같았다.



확장


그래서 날 유혹했던 그 문구처럼 인생을 사랑하게 되었느냐? 아쉽게도 나에게 그만큼의 인상은 남기지 못했다. 완독 했다는 뿌듯함에 잠시 스스로를 칭찬하는 시간을 가졌다는 일종의 보상은 받았다.

다만 내가 얻은 더 큰 효과는 나의 시야가 엄청나게 확장되는 기분이 들었다는 것이다. 사실 바쁘게 하루를 살아가면서 내가 소비하는 것들이 어디서 어떻게 출발하고 도착하는지 관심을 갖지 않게 된다. 그저 애플리케이션과, 쿠팡 트럭과, 뜯어서 버려야 하는 상자들의 이미지만 막연히 존재할 뿐이다. 송이버섯이 식탁에 자주 오르는 재료는 아니지만 설령 오른다고 해도 깨끗이 흙이 털어진 채 포장되어 있는 모습까지만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아무것도 없는 듯한 땅속에서 발견되는 버섯과 거래를 위한 텐트들이 함께 연상될 것이다. 어떤 나무들이 심기고 베어지고 파헤쳐졌는지도. 그 대상이 버섯에게만 국한되겠는가? 아니다. 집 문 앞에 던져질 때까지 온갖 사람들과 시장 논리를 거쳐 왔다는 것도 문득문득 떠오를 것이다. 자본론이 아닌 문화인류학 책이 이것을 해낸다!



부활


미루고 미루다 이제야 읽게 된 것이지만, 하필 지금 읽어 더 인상 깊었던 부분이 있다.

수많은 일들을 겪고도 숲은 결국 부활한다는 것이다.



기억에 남는 개념


혁신과 확장성이 꼭 함께 가는 것은 아니다 - nonscalability

무역업자는 곧 번역가이다

공급 사슬은 진보를 필요 없게 한다 - 철저하게 역할이 나누어지면 균등한 교육은 필요가 없기 때문에!

소외: 시장 안에서 교환 대상이 되는 것들은 속했던 세계와 분리되는 과정을 거친다





분량이 적은 책이 아니라 독서모임에서 다루기 어려운 것이 아쉬울 만큼 좋은 기억으로 남은 책이었다. 데굴데굴 구르면서 읽을 정도로 쉬운 과정이 아니었는데도 그러하다. 읽는 나는 막연하지만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확실해서일까.

다른 이들의 후기를 보니 삶이 길을 잃은 것 같을 때 길잡이가 되어 주는 것 같다고 하니 미래의 나도 꼭 한 문장 한 문장 소화하며 읽기를 어려운 다짐을 해 본다.

이 문장을 읽었을 때 인간으로서 조금은 힘이 나는 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는 가치가 있을 것 같기도!



우리가 엉망으로 만든 이 세계에 아직 무언가 살아 있다







커버 이미지: 빈센트 반 고흐, Trees and Undergrow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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