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02. 22 건대입구 롯데시네마에서
솔직히 영화가 세 시간을 넘으면 중간에 쉬게 해 줘라! 근데 이 영화는 진짜 쉬게 해 준대서 보러 갔습니다.
지루할 수 있을 정도로 긴 러닝타임인데도 주변의 평이 좋아 놓치지 않기 위해 극장으로 달려갔다.
1. 장면
내가 이 글의 썸네일로도 채택한 불꽃 속의 라즐로를 올려다보는 저 장면.을 포함해서 유려하고 보기 좋은 장면이 정말 많다. 특히 서곡의 자유의 여신상 장면… 모두들 얘기하는 것 같다. 마치 여신상이 추락하는 것처럼(미국아 그대로 처박혀버려라,라는 뜻이었을까요? 그렇게도 볼 수 있겠다.). 그래서 더 압도가 되었다. 그 뒤의 200분이 별로였더라도 저 장면을 스크린에서 봤을 때의 압도감은 잊지 못할 거다.
2. 건물들
그 멋진 씬들을 담은 데에는 앵글이나 배우들의 표정의 역할도 물론 있었겠지만, 건축을 주제로 한 영화답게 건축물들이 화면 안에서 담아내는 경이감이 있었다. 건축물과 그 사이를 넘나드는 빛과 그 안의 작은 인간등을 보면서 그런 건축물들에 실제로 가서 봐야겠다는 욕망이 더욱 커졌다.
3. 음악
음악의 역할이 아주 큰 영화였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볼 때 음악보다는 화면에 더 사로잡히는 편인데 이 영화에서는 자꾸 귀가 사로잡혔다. 앞부분의 피아노 소리들은 때로 장면을 잡아먹는 것처럼 느껴졌다.
평소에 배경음악을 잘 듣지 않는 사람도 80년대로 넘어가는 부분에서 확 들리는 신디사이저 부분에는 정신이 번쩍 들지 않았을까? 영화가 끝나는 느낌이 들고 좋았다.
4. 에이드리언 브로디
웨스 앤더슨 좋아하는 사람 중에 브로디 안 좋아하는 사람 있나? 당연히 전 아닙니다.
해리슨의 대사가 떠올라서 왠지 같은 사람이 되는 것 같아 싫지만, 정말 매력적이고 위태롭고 그런 이미지에 정말 잘 어울리는 것 같다. 분명 몇 주 전에 포커페이스에서도 봤는데, 억양이랑 표정을 어떻게 그렇게 갈아 끼웠지? 보는 내내 경이로웠다.
혹시 포커페이스를 아직 보지 않았다면 추천한다. 에이드리언 브로디가 많이 나오진 않지만 나타샤 리온이 정말 좋고 찰스 멜튼, 조셉 고든 래빗 등 소소한 조연을 보는 맛도 쏠쏠하다.
5. 와 배우들
외에도 익숙한 배우들이 많이 나왔다. 분명 익숙한데…라고 보는 내내 생각했는데 역시 님포매니악에서부터 정말 예쁘다고 생각했던 스테이시 마틴과,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의 아내 역할을 맡았던 펄리시티 존스도 있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서치하면서 가장 충격을 받았던 것은 해리슨 역할을 맡은 가이 피어스가 메멘토의 주인공이었다는 것 � 너무 놀랐다
6. 삶과 생존
대체적으로 영화의 분위기가 어둡기 때문에 눈이 즐거운 것과는 별개로 감정은 클라이맥스로 갈수록 피폐해졌다. 에필로그 전에는 실제로 정말 지쳤다.
에르제벳과 라즐로를 보면 겨우 하루하루를, 순간을 살아낸다는 모습이 보여서 그 부분이 가장 몰입하고 힘겹게 했다.
0. 이런저런
일단 마지막에 조피아 배우가 조피아 딸까지 연기한 걸 모르고… (아무리 시간이 지났어도 너무했다) 순간 온갖 상상에 빠졌다. 사실 친조카가 아니었는데 살려준 건가... 따로 어디 살아있었나.. 등등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쳤는데 머쓱한 착각이었다. 하하
그리고 중간에 자꾸 침대에서 에르제벳이 속삭이는데 앵글이 너무 어깨에 붙어있는 귀신같아서 조금 무서웠다. 왜 자꾸 침대에서 그러세요 ㅜㅜ
친구와의 공통적인 평은 명확하지 않은 영화 같다,라는 것이었다. 대화 사이의 짧은 맥락들도, 갑자기 몇 년을 뛰어넘어 가버려서 생긴 그 사이의 공백도 스스로 채워 넣어야 한다.
1부 후반부에서 조금 지루해져서 깜빡 졸았는데 다행히 곧 인터미션 타이밍이었다. 인터미션 없었으면 그대로 숙면하고 한 번 더 봤을 거다. 결론적으로 관객수에는 도움이 되었으려나? 하하 내용이 씁쓸한 만큼 진한 커피를 오래오래 마시며 보면 좋을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