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주의자』모든 욕구는 폭력적인가?

한강 지음, 2024년 11월 두 번째 읽음

by UJUU


책을 고를 때 여러 기준이 있다. 그중에는 당연히 유명한 책을 읽는 것도 포함된다. 열아홉 살, 부커상이 뭔지도 모를 시절, 우리나라 작가가 맨부커 상을 탔대! 아니야, 인터내셔널이라 다르대… 등의 떠드는 소리들을 주워 모으며 학교 앞 서점에 가서 책을 샀다. 자율학습실에서 읽었는지 방에서 읽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났으니 실은 자세한 감상도 떠올리기 어렵다. 하지만 이후에 책 얘기가 주제가 되어 『채식주의자』의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이미 읽었다는 업적 아닌 업적을 지닌 채 후기를 묻는 이들에게 어려운 책이었어. 다시 읽을 자신은 없는데 커서 다시 읽어보면 다를 것 같아.라고 대답하며 과거와 미래의 나에게 감상을 미루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스물일곱 살, 작가의 수상 소식을 다시 듣게 되고, 궁금함 충족, 오랜만에 다시 읽어야겠다는 불씨, 같이 책을 읽는 사람들과의 모임 등등을 이유로 다시 책꽂이 구석을 뒤져 책을 꺼내 들었다.


















『채식주의자』

한강 지음

창비 | 2007






1. 잘 읽히는 글


본문의 마지막 내용까지 총 221페이지로 긴 책이 아니기도 하지만 별개로 여느 책 보다 잘 읽히는 느낌이 든다. 유명세에 오랜만에 책을 든 사람들도 반겨 주지 않는 내용에 반해 유려하게 흐르는 문장들에 술술 읽어버리고 말 것이다. 그만큼 더 상황들이 생생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다양한 인물의 다양한 고통이 나타나고 그 과정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게 된다. 작가의 낭독을 이미 읽고 온 사람이라면 그 차분한 목소리가 귓가에 재생될 수도 있다.



2. 정상과 비정상


정상이란 무엇인가? 3부에 걸쳐 나타나는 인물들을 보며 독자는 각자 스스로의 기준에 맞추어 정상성의 줄을 세우게 된다. 영혜의 '비정상적인 행동'은 그 혼자서는 괜찮은 것이었을까, 혹은 남편에게 고통을 가하면서 비정상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을까.

이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그 기준을 나누는 것 자체에 의문을 갖게 된다. 세상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정상과 비정상의 기준을 가지고 있을 테다. 그렇다면 과연 보편성은 존재하는가. 다수의 의견에 종속될 뿐인가?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며 스스로 정리해 본 생각은 사실 모든 기준은 자신이 속한 세상의 다수가 포함되는 집합에 따라 결정되지 않는가, 하는 것이다. 영혜가 새를 물어뜯은 것은 비정상이지만 수많은 동물을 가두어 키워 공장에서 도축하여 다 함께 뜯어먹는 행위는 정상인가? 특정 직업을 갖겠다며 밤새워 코피를 흘려 가며 책상 앞에 앉아있는 사람은 비난하지 않고 오히려 대단하다 칭한다. 그런데 나무가 되겠다며 밤새 물구나무서는 영혜는 비정상인가? 왜? 당장 오늘 밤 서울의 모두가 같은 꿈을 꾸게 되어 내일부터 모두 나와 옷을 벗고 햇빛을 받겠다며 다리를 벌리기 시작하면 그것도 곧 정상이 되어 입고자 하는 사람을 옷 벗겨 가두게 될까.



3. 폭력


이 글의 전체적 주제를 묻는 질문에 나는 폭력에 대한 이야기라고 답했다. 가해자와 피해자를 나눌 수 없는 서로에게 가해지는 다양한 형태의 폭력에 대한 이야기라고 느꼈다.

때로는 딸들의 뺨을 때리는 아버지의 모습이기도 하고, 식이를 저항하는 환자를 구속하는 병원에서의 한 장면이기도 하다. 그런 부분에서 영혜와 나무는 동일시되고, 책을 읽은 독자들에게 에코페미니즘에 대한 논의를 불러일으킨다. 가부장을 직접적으로 다루고 남편, 아버지, 형부 등 다양한 남성과 여성 사이의 관계가 보이다 보니 깊게 이야기해 보아도 좋은 주제라고 생각하지만 일단 돌아가자면,

영혜는 피해자로만 그려지는가? 그렇지는 않다. 영혜는 둥근 가슴은 무엇도 해칠 수 없다고 말하지만 그마저 점차 뾰족해진다. 나무는 무엇이든 해치지 않을 듯싶지만 영혜의 꿈속의 어두운 숲의 나무들은 뾰죽한 잎이 돋아 영혜를 찌른다.



4. 트라우마


영혜가 꿈을 꿨다며 이야기하는 채식에 대한 사유는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에서 비롯되었을 수 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아버지의 폭력성이 자녀들에게도 가해졌음을 알 수 있다. 오토바이에 개를 매달고 달리는 모습과 가부장 아래에서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자란 인혜와 영혜의 모습이 교차된다.



6. 사랑


그렇다면 (적어도 처음에는) 부부, 가족 등 보통 사랑으로 묶인다는 관계 안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았으니 그 안의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자.


가장 많은 이야기가 나올 만한 주제는 영혜와 남편의 결혼이다. 책의 서문을 열며 남편은 영혜와 결혼한 이유를 나열한다.


아내가 채식을 시작하기 전까지 나는 그녀가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 끌리지도 않았다. … 내가 그녀와 결혼한 것은, 그녀에게 특별한 매력이 없는 것과 같이 특별한 단점도 없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신선함이나 재치, 세련된 면을 찾아볼 수 없는 그녀의 무난한 성격이 나에게는 편안했다. 굳이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박식한 척할 필요가 없었고, 약속시간에 늦을까 봐 허둥대지 않아도 되었으며, … 그러니, 세상에서 가장 평범한 여자로 보이는 그녀와 결혼한 것은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예쁘다거나, 총명하다거나, 눈에 띄게 요염하다거나, 부유한 집안의 따님이라거나 하는 여자들은 애초부터 나에게 불편한 존재일 뿐이었다.

『채식주의자』p.9-10


이 부분을 발췌하면서도 남편에게서 위화감을 크게 느끼지 않았다는 이들에게 위화감이 느껴졌다. 물론 현대의 결혼 제도가 사랑이 넘치는 낭만적인 결혼! 에 국한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알고 있지만 자신의 입장에서 아내를 "선택"하게 된 사유를 나열하는 모습을 보는 기분은 어떤가?


이후로도 남편은, "내 기대에 걸맞게"라든가 "관여하지 않았다"라는 문구를 아내를 표현할 때 사용한다. 아내는 자신의 기대에 걸맞은 행동을 출력해 주고, 자신에게 관여하지 않으면 되는 집 안의 구성품 중 하나일 뿐이다. 방에 틀어박혀 있는 아내의 모습을 회상하며 "아마도 일을 하거나 책을 읽는 모양으로-"라 말하는데, 이는 그 방문을 열고 확인한 적도, 확인할 생각도 없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적어도 남편이 영혜의 행동을 막은 이유에는 사랑이 포함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가 본격적으로 행동을 시작한, 참지 않게 된 시점은 영혜의 행동이 자신에게 피해를 줄 때였다. 그것도 개인적인 식이 취향을 집에서 채울 수 없을 때가 아니라 사회적 성장을 방해할 때, 타인에게 그 문제가 드러났을 때였다.


영혜의 가족이 영혜를 다그치는 부분은 어떠한가. "세상천지에, 요즘 고기 안 먹고사는 사람이 어디 있어!" "예, 하고 먹는 시늉만 하면 간단하잖아."라는 말들에서 진심으로 건강에 대한 걱정이나 가족을 향한 사랑이 보인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세상 기준에 맞지 않으니, 노하는 아버지의 모습에 대항하는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으니 내 앞에서라도/먹는 시늉이라도 하라고 이야기한다.


이 글의 어느 부분에서 사랑을 느낄 수 있는지 알기가 어렵다. 인혜와 지우를 떠올리자면 책임감과 사랑 어드메에서 한쪽이 다른 쪽을 잡아먹고 있지는 않은가 싶다.

물론 이 책이 사랑을 논하는 이야기는 아니라고 쳐도, 지나며 얘기해 온 폭력에서 사랑의 결여가 어느 정도의 역할을 하고 있을지 의문이 든다.



7. 논란의 번역


8년 전 처음 수상 소식을 들었을 때 역자인 데보라 스미스의 번역이 수상에 기여한 바가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은 한강 작가와 번역가 데보라 스미스가 공동 수상했다. 각 나라의 문학이 수상을 위해서는 영어로 번역이 되어야 평가될 수 있다는 안타까움(그리고 다른 부정적인 감정들)은 일단 넣어 두겠다.


남편이 영혜에 대해 서술하는 책의 도입부 부분을 한국 독자들은 그러려니, 하고 넘기는 반면 번역서를 읽은 영어권 독자들은 바로 남편의 캐릭터를 파악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자세한 이야기는 여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위에서 발췌해 온 도입부의 번역문은 아래와 같다.


Before my wife turned vegetarian, I'd always thought of her as completely unremarkable in every way. To be frank, the first time I met her I wasn't even attracted to her. … However, if there wasn't any special attraction, nor did any particular drawbacks present themselves, and therefore there was no reason for the two of us not to get married. The passive personality of this woman in whom I could detect neither freshness nor charm, or anything especially refined, suited me down to the ground. There was no need to affect intellectual leanings in order to win her over, … And so it was only natural that I would marry the most run-of-the-mill woman in the world. As for women who were pretty, intelligent, strikingly sensual, the daughters of rich families - they would only ever have served to disrupt my carefully ordered existence.

『The Vegeterian』p.3-4


한국어 사용자로서 느끼는 한강 작가의 문장들은 날카롭지 않다. 한국어들 사이에서도 무척 유려하다.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completely unremarkable"로 번역되었다. 찾아본다는 동사는 detect로, 무난한 성격은 passive라는 단어로 대체되었다. 이러한 단어들이 남편의 어조를 조금은 다르게 만들었을까? 물론 번역이나 언어의 차이 말고도 문화권에서의 차이도 아주 크게 작용할 것이다.


그렇다면 번역가의 개입은 어디까지 가능한가? 양 언어를 모국어처럼 사용할 수 있는 데다가 문화까지 완전히 이해한 상태에서의 번역은 불가능하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채식주의자의 번역에서 오류가 많았다는 점은 차치하고, 번역가가 많이 개입했다는 부분에서 수상의 의미는 퇴색되는가? 앞에서도 잠깐 이야기했지만 심사하는 이들이 각 나라의 작가들이 의미하고자 하는 바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특정 언어로 번역된 문장밖에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번역에 대한 지식이 깊지 않은 터라 주변의 전공자들에게 간단한 생각을 물어보았는데 각자의 생각이 조금은 갈리었다. 도착어 문화권을 바탕으로 해석 가능하도록 변형하는 것까진 괜찮다는 입장도 있었고, 작가의 의도만 바꾸지 않는다면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용인되는 것이 오히려 긍정적이라는 입장도 있었다. 관련하여 이 기사도 흥미롭게 읽었다.



8. 표지


개정판의 표지는 색감이 크게 바뀌었다. 그 표지로 첫인상을 했다면 달랐을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내가 전체적인 이미지에 갖고 있는 감상은 어두운 질척함이다. 어둑한 시골길을 달리는 바람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하다. 물빛의 꽃을 첫인상으로 했다면 뿌리 깊음 대신 한결 가벼움이나 아슬함을 떠올렸을까 모르겠다.



9. 몽고반점


글을 마무리하려다 보니 2부에 대한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이야기는 극으로 치닫고 다 읽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많은 화제가 나온 부분이지만 내가 화자에 크게 이입하지 못한 탓인지, 이야기도 크게 흥미롭지 않아서였는지는 모르겠다.

성벽의 연장 혹은 예술 혹은 합리화 혹은 영혜의 치유. 중의 어떤 것으로도 설명할 수 있겠지만…



10. 인혜 | 언니


인혜는 책의 마지막을 닫으며 독자들에게 긴 여운을 남긴다. 1부와 2부에서 타인의 서술로 등장하다 영혜의 가장 오래된 가족으로서 옆에서 지켜보는 역할을 한다. 인혜는 도피와 책임 사이에서 위태롭게 서 있다. 영혜도 인혜의 남편도 모두 다른 것을 등한시한 채 자신의 욕구에 충실하지만 인혜는 그렇지 못한다.

어쩌면 그런 부분에서 가장 많은 독자들이 인혜에게 공감하는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모습과 가장 비슷해서, 혹은 자신이 떠올리는 "정상성"에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서.



0. 총평


소설 하나는 하나의 세계를 통으로 담고 있다. 가장 유명한 문학상을 받으며 가장 많은 사람에게 읽히고 있을 이 세계는 읽는 이들에게 각각 어떤 메시지를 전했을까. 그저 거부감일 수도, 스스로를 돌아볼 수도, 자신의 트라우마를 떠올릴 수도 있겠다.

나에게는 정상성이 무엇인지, 각자의 기준이 얼마나 다른지에 대한 의문을 크게 남긴 책으로 남았다. 책이 남긴 것이기도 하고, 책을 읽고 다른 사람들과 나눈 대화가 남긴 것이기도 하다.

때로 무용지물인 것만 같은 문학이 인생에게 남기는 것은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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