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적 정의』쓸모와 정의와 공감

마사 누스바움 지음, 2024년 11월 읽음

by UJUU


책을 읽는 사람이 많이 줄어든 시기이다. 나만 해도 그렇다. 갈수록 책이 아니어도 할 것이 많아지고, 책이 가져다 주는 것을 비슷하게 제공해주는 (것처럼 보이는) 것들도 정말 많아진다.

책을 읽는 것이 좋은 건 누구나 막연히 안다. 하지만 왜? 무엇을 위해서? 막상 설명하라고 하면 사실 잘 모르겠다. 특히 문학은 왜? 라고 하면 과연 내가 설득시킬 수 있을지 하는 자신이 없다. 이 책의 뒷표지에는 "우리가 다시 문학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겠다고 적혀 있다. 과연 이 책은 문학을 읽지 않는 이들에게 그 쓸모를 설득시키는데 성공했을까?
















『시적 정의』Poetic Justice

마사 누스바움 지음 | 박용준 옮김

궁리출판 | 2013





1. 책, 책, 책 책을 읽읍시다


그래서 나는 왜 책을 읽는가? 를 책을 읽기에 앞서 먼저 생각해보았다. 이전에도 종종 받았던 질문이지만 그때마다 재미로… 라고 대답하곤 했다. 어릴 땐 할 게 없어서 재미있었을까? 지금도 게임보단 책이 재미있긴 하지만, 그래도 확실히 많이 읽어서 거부감이 덜한 것도 큰 것 같다. 하지만 차치하고, 그래서 더더욱 책을 읽자고 주장하기가 어렵다. 책보단 다른 것이 더 재미있다는 사람이 많은 것 같으니.


스토리텔링과 문학적 상상이 합리적 논증에 반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필수적인 구성 요소를 제공해준다.

『시적 정의』 p. 12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 책을 지식의 취득을 위해 읽는다는 의견이 있었다. 차라리 재미를 위해서는 다른 것을 하지 굳이 책을 읽을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다. 책에 대한 의견이 지식의 취득과 여가, 둘로 맹렬하게 나뉘었다.

그렇기에 나의 재미와는 별개로 책의 장점을 이야기해보자면, 문장의 나열을 읽고 스스로 생각하는 것은 개인의 사고에 커다란 도움을 준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언어를 통해 소통해야 하기에 다양한 문장의 형태에 익숙해지고 어휘를 습득하여 자신의 문장을 구성할 수 있다면 더 효율적인 소통이 가능할 것이고 책은 당연히 그 부분을 든든하게 도울 것이다.

간접적으로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된다는 건 말할 필요도 없다. 책을 읽어야 한다는 이유를 들 때 내 방 안에서의 세계여행 등의 캐치프레이즈를 달고 얼마든지 들어보았을 것이다. 이 부분은 비문학 뿐 아니라 문학의 역할이 더 크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있지 않은 일에 대해 상상하는 것은 자신의 합리가 아니라 더 큰, 절대적인 합리성에 이를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2. 공상


'공상'을 포기하는 것은 스스로를 포기하는 것이다.

『시적 정의』 p. 20


이 책은 목차 하나를 통으로 공상이라는 주제에 할애한다. 공상의 능력은 다음과 같다.

인식된 형상에 풍성하고 복잡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능력, 보이는 것들에 대한 너그러운 해석, 손쉬운 해결책보다는 경탄에 대한 선호, 유희적이고 놀라운 움직임과 그것 자체에서 오는 기쁨, 유연함, 에로티시즘, 그리고 인간 유한성이라는 사실 앞의 경외감…

『시적 정의』 p. 103


그리고 이것이 이성과 얽혀 유익한 것이 되고, 그런 것 없이는 이성은 차갑고 잔혹한 것이 된다.



3. 인간


하지만 소설이 보여주듯 오직 공리주의적 계산에 해당하는 것만 보려는 경제학적 사유는 맹목적이다. 이러한 태도는 인식 가능한 세계의 질적인 풍성함, 인간 존재의 개별성과 그들의 내면적 깊이, 그리고 희망, 사랑, 두려움 따위는 보지 못한다. 또한 인간으로서 삶을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의미 있는 삶은 어떤 것인지 등을 알지 못한다. 무엇보다 인간의 삶이라는 것이 신비하고도 지극히 복잡한 어떤 것이라는 점, 그리고 그 복잡함을 표현하는 데 적합한 언어들과 사유의 능력을 통해 접근해야만 한다는 점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시적 정의』 p. 73


인간의 삶과 언어는 뗄 수 없다. 유발 하라리가 인간을 지배의 위치에 올려놓은 것은 언어라고 한 것처럼.

그리고 뒷담화 이론도 소개했는데, 이 부분을 읽으면서 그 생각이 났다. 인간의 삶과 공동체를 이끄는 것은 합리성이 아니다. 합리적인 사고만 한다고 잘 살 수는 없다. 공감되지 않는 주변 사람의 이야기에도 고개를 끄덕이고 나와 맞는 구석을 찾아야 한다. 그러려면 평생 모든 사람을 만나며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보단 오히려 방에서 책을 읽는 것이 더 효율적일 것이다. 흔한 이야기보다 더 재미있을 수도 있다!

이런 효율성 이야기 말고 낭만적으로도 이야기해본다면, 존재할 수 없는 이야기들을 만들고 그에 몰입하는 인간의 사유는 얼마나 신기하고 아름다운가?



4. 재판관으로서의 시인


사실 이 책은 책을 읽어야 하는 개인적인 이유보다 공적인 부분에 더 치중되어 있다. 마지막 목차는 법과 재판의 수준에서 문학적 상상력이 역할을 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읽는 내내 이런저런 물음표가 떠올랐다. 정리하지 않고 물음표들을 여기에 두고 가자면 아래와 같다. 내가 책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해서 나온 의문들일지도 모른다고 스스로를 계속 의심했기에 미래의 나에게 맡겨 둔다.


감정적인 판결

- 어디까지지?

어른보다 어린아이 살해범이 더 중형인 이유? (일단 실제로 중형인가?

시인은 "자신의 시대와 영토의 형평을 맞추는 자"

"상황에 개입하도록 유혹하는 소설의 제안에 거리를" 둔다면 "소설을 계속 읽어야 할 이유가 불분명해"지는가?

문학적 재판관은 정말 중립성을 지키는가? 풍부한 상상력은 중립성에 정말 도움이 될까? 불이익을 고려하는 건 중립인가..?

그러면 너무 배고파서 지나가는 사람 빵을 훔친 것도 그쪽에 몰입해줘도 되나?

헌법적 제약에 따른 상상력이라는게 가능한가? (246

"독자성과 개별성"



5. 아쉬운 점


사실 읽기가 참 어려운 책이었다. 평소에 문장이 술술 넘어가는 소설만 읽어 온 나의 탓도 있을 테지만 왠지 문장이 머릿속에 들어오지 못하고 튕겨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번역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았지만, 그건 원서를 읽어보지 못해서 판단하기가 어렵다. 나중에 다시 읽는다면 원어로 읽어 볼 참이다.

그것 말고도 읽으면서 계속 혼란해서 잘 안 읽히는 이유를 두가지 정도 생각해 보았다.

먼저, 찰스 디킨스의 『어려운 시절』이 정말, 정말 많이 인용된다. 등장인물들의 행동으로 무언가 설명하는데 당연히 간단한 소개는 되어 있었지만 그 책을 읽어보지 않은 입장에서는 내가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쉬웠다. 그렇다고 이 책을 읽기 위해 빠르게 읽어 볼 만한 분량의 이야기도 아니었다. 그 책 말고도 여러 책의 여러 부분이 인용되어 있는데 이 정도 책은 이미 읽어봤다고 전제하는건가, 하는 느낌도 들었다.

문장 수준에서는 일단 한 문장이 길고 문장 안에 지칭이 너무 많았다. 읽는데 가장 오래 걸렸던 부분은 한 페이지에 수많은 "그러한"이 쓰이는데 각각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이리저리 찾아다녀야 했을 때다.

내용이 비유하는 인물도, 문장이 가리키는 대상도 계속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드는 기분이 들어서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책의 주제도 반박하기 어려운 "책의 중요성!" 이기 때문에 맹렬한 비판도 하기 어려웠고, 다음에는 전체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며 꼭 다시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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