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모두가 자신의 이야기속에

미치오 슈스케 지음, 2025년 5월 읽음

by UJUU


"저뿐만이 아니에요. 모두가 자신의 이야기 속에 있잖아요. 자신만의 이야기 속에요. 그리고 그 이야기는 항상 뭔가를 숨기려고 하고, 또 잊으려고 하잖아요."















『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

미치오 슈스케 지음, 김윤수 옮김

들녘 | 2018






오랜만에 정말 흥미롭게 읽은 책이었다. 원래 미스터리 장르를 좋아하긴 하지만 아무거나 골라서 읽었을 때에는 관성적으로 책장을 넘기거나 하는데 다른 일을 미루고 뒷장을 봐야 해! 한 것이 오랜만이라 기뻤다. 중간중간 오싹하기도 해서 즐거웠다.


물론 여러 악평처럼 기분이 나쁜 책이기도 하다. 어린아이의 시점인데도, 혹은 그래서 더욱 상상해야 하는 기분 나쁜 상황들이 많이 등장한다. 그래서 초반에는 너무나 당연한 듯 인도하는 범인을 어떻게 잡을지에 몰두하다가 어? 하는 위화감이 들면 변칙이 시작된다.


그럼에도 내가 만족하며 책장을 덮을 수 있었던 이유는, 이 책이 이야기에 의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나는 실은 비문학도 에세이도 별로 좋아하지 않고 허황된 이야기 속에 갇혀 있는 것을 좋아한다. 특히 서술 트릭에 뒤통수를 얻어맞을 때 너무너무 즐겁다. (오랜만에 우타노 쇼고의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미치오가 다이조에게, 혹은 독자에게 정면으로 이야기에 대해 얘기하는 부분이 좋았다. 자신도 이야기 속에 갇혀 살았든 그렇지 않았든 한 번쯤은 생각해 볼 기회 아닌가?


다 읽고 찾아본 짧은 후기들 중에 설명되지 않은 부분과 개연성에 대한 불호 의견도 꽤 있었는데, 나는 오히려 이야기를 방패로 삼은 점이 좋았다.

이게 다 결국은 이야기라서 가능한 일이니까!




어떠한 사실을 계속 기억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어떠한 사실을 일부러 잊는 일에 비하면 별로 어렵지 않다.

『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 p. 72


그러나 자신과 미치오……, 도대체 누구인지 판단할 수 없었다. 한 마리의 고양이를 아무런 주저 없이 '할머니'라고 부르는 미치오의 세계는 다이조의 세계보다 오히려 훨씬 견고하고 흔들림 없이 확고해 보였다. 똑같은 그 고양이가 고양이 자체이기도 하고, 죽은 아내가 되기도 하고, 또는 잔인한 욕구의 대상물이 되는 다이조의 세계보다도 훨씬 더…….

『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 p. 313


"모두 그렇잖아요."
할아버지는 내 다음 말을 기다리는 듯이 가만히 나를 바라보았다.
"저뿐만이 아니에요. 모두가 자신의 이야기 속에 있잖아요. 자신만의 이야기 속에요. 그리고 그 이야기는 항상 뭔가를 숨기려고 하고, 또 잊으려고 하잖아요."

『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 p. 340


"모두 똑같다고요. 저뿐이 아니에요. 자신이 한 일을 모두 그대로 받아들이며 사는 사람은 없어요. 어디에도 없다고요. 실패를 모두 후회하고,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전부 돌이키려고 하고, 그러면서 어떻게 살아요? 그래서 모두 이야기를 만드는 거예요. 어제는 이런 걸 했다, 오늘은 이런 걸 했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어요. 보고 싶지 않은 건 보지 않도록 하고, 보고 싶은 건 확실하게 기억하면서요. 모두 그렇다고요. 저는 다른 사람들하고 똑같은 걸 한 것뿐이에요. 저만이 아니에요. 모두가 그렇게 하고 있다고요."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슬프지 않았고 후회하지도 않았다. 나는 그저 쓸쓸했다. 목을 맨 S의 모습을 떠올렸다. 나를 노려보는 엄마의 얼굴을 떠올렸다. 졸려 보이는 아빠의 눈을 떠올렸다. 도코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는 나 자신, 미카와 함께 웃는 나 자신을 떠올렸다.

『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 p. 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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