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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eegarden Feb 15. 2021

작가의 시간

0214

제목은 그럴듯하게 작가의 시간이라고 달았지만, 사실 말하고 싶었던 것은 우리들의 시간이다. 작가는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이고 우리는 매일 새로운 무언가를 창조하고 있으니, 우리 모두는 작가다.


예전에 작가의 시간과 관련된 글을 읽은 기억이 있다. 우리가 작가 사인본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는, 그 사인이 대단해서가 아니라 나에게 전할 글을 쓰는 작가의 시간을 선물로 받은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공감했다. 나 역시 펜을 들고 글을 써내려 가는 것보다 무엇을 이야기할지 생각을 정돈하는 데 더 긴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의 책을 읽어준 당신의 시간, 나의 책을 리뷰해준 당신의 시간, 나의 글에 댓글을 달아준 당신의 시간에 진심으로 정성껏 답하고 싶었다. 아마 '그동안 얼마나 글을 쓰고 싶었는지...'라는 나의 말에 어느 정도의 진심이 담겼는지 가늠하기 어려울 거다. 서운하셨으리라. 내게 그렇게도 귀한 시간을 선물해주셨는 데, 나는 그러지 못해서...


이번 주 병원에 갔을 때, 마약성 진통제를 두 배 이상 더 받아왔다. 이 말은 내가 깨어있는 시간이 길지 않다는 거다. 약의 용량을 늘리고는 며칠을 잠만 잔 것 같다. 오늘도 하루 종일 잤다. 약에 취해 자다 통증 때문에 저녁 여섯 시쯤에 눈을 떴다. 일어나니 아빠가 없었다. 엄마한테 물어보니 인천 소래포구에 갔다는 데, 간 것도 벌써 돌아올 시간인 것도 몰랐다. 깨어 있는 동안 밥을 한번 먹었고, 침대 자리를 청소했으며, 관장을 하고, 약을 먹었다. 보통은 예쁘게 가득 채워지는 다이어리의 오른쪽 페이지에 채울 말이 없었다. 그나마 지키던 나만의 작은 룰도 사라졌다. 약을 먹어서 덜아픈 시간을 계속 자야만 한다면, 나는 살아있는게 맞을까? 나는 왜 사는걸까? 나와 비슷한 상태에 있는 분들은 무슨 생각을 하시고, 어떤 결론을 내리셨을까... 침대 정리를 하다가 무거운 겨울 매트를 들지 못해서 '엄마... 좀 도와줘.'라고 말하고는 주저 앉아서 엉엉 울어버렸다. 엄마는 괜찮다고 했다. 좀 더 시원하게 울라고 했다. 그럴 수도 있다고.


나는 드릴 시간이 없다. 내 시간을 드리자면, 귤 하나를 덜 먹어야 하고, 화장실을 한번 덜 가야 한다. 그래서 마음이 너무 고되다.


아프기 전에는 글과 책을 급하게 읽었었다. 단물만 쪽 빨아먹고 버리는 껌처럼 읽었다. 그러나 요즘은 댓글도 국물까지 다 마셔버릴 기세로, 닭백숙을 먹는 마음으로 읽는다. (아, 나는 비건이지만 표현이 그렇다는 거다. 하하하.) 표현하지 않는다고 사랑하지 않는게 아니다. 만나자고 하지 않는다고 해서 당신이 보고 싶지 않은게 아니다. 글에 답하지 않는다고 해서 당신이 내게 주신 시간을 감사히 여기지 않는 게 아니다. 그 글을 쓰기 위한 당신의 시간이 얼마나 귀한지 나는 분명히 아는 사람이니까...


여기저기 사랑 고백이 가득한 Valentine's Day에,

사랑 고백도 잘 못하는 몬난이 드림

이라고 어제 써놓고 못 올리고 있다가 이제야 올린다. 너무나 소중한 우리들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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