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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eegarden Mar 03. 2021

해리포터 기숙사

0301

‘윙가르디움 레비오우사!’

입으로 여러 번 주문을 외웠다.

기숙사 문을 들어서면,

헤르미온느처럼 내가 공중에 띄워야 할 것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녹스!’

바쁜 일정 끝에 지쳐 잠들 때, 이 주문으로 방에 불을 꺼야 하니까.


해리포터 영화를 보면 말하는 모자(Sorting Hat)가 마법사가 될 아이들의 생각과 기질에 따라 속할 기숙사(College)를 골라준다. 아이에게 모자를 씌워주면 어떤 때는 즉시, 어떤 때는 한참을 갸우뚱거리며 고민하다가 답을 준다. 용감한 학생이 가는 그린핀도르, 똑똑한 학생이 주로 가는 레번클로, 후플프푸, 슬리데린 중에 어떤 기숙사에 선택될까 설레는 아가들의 표정만큼, 나는 진지했다. (사족으로 온라인에 떠도는 해리포터 기숙사 배정 테스트에 따르자면 나는 레번클로에 배정될 확률이 높다고 했다. 검색해서 테스트해보는 것을 재미로 권해드린다.)



요즘 런던에 있는 대부분의 대학 기숙사는 현대식 건물로 짓고, 기숙사 비용을 결제하면 그곳에 머무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신설 기숙사에 살고 싶지 않았다. 영국에서 몇몇의 대학교에 아직 해리포터 기숙사와 비슷한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곳들이 있다. 옥스퍼드, 케임브리지, 세인트 앤드류스, 더럼 대학교 등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각 기숙사가 설립된 연도에서 알 수 있을 만큼 시설이 낡았지만, 나는 꼭 그런 곳에서 살고 싶었다. 지인 덕분에 운명처럼 런던에서 그런 기숙사(이하 해리포터 기숙사)에 지원할 기회를 얻었다.


그곳에 살기 위해선 합격 레터를 받아야 했다. 정해진 기간까지 지원서, 추천서 두 장, 자기소개서, 학업계획서 등을 제출해야 했고, 때에 따라서는 기숙사 학장이나 관계자의 인터뷰를 보는 경우도 있다. 진심으로 그 공동체에 속하고 싶은 열정이 있는지 묻는 것 같았다. 해리포터 기숙사는 커뮤니티에 기여할 수 있는 지원자들의 현재 능력 및 소신 그리고 향후 사회 기여 가능성을 높이 평가했다. 작든 크든 실제로 그 공동체에 기여하는 바가 있어야 했다. 학업 성취도와 관련하여 무척 뛰어난 학생이 매년 세 번이나 지원했으나 번번이 떨어진 경우도 있었다. 기숙사 학장은 그가 자신이 속한 커뮤니티에 봉사하고자 하는 이타적인 마음이 없기에 그랬다고 했다.


예로, 옥스퍼드 대학교는 트리니티 기숙사(Trinity College), 퀸즈 기숙사(The Queen's College), 그리고 실제 해리포터 식사 만찬 장소 촬영지인 크라이스트 처치 기숙사 (Christ Church College) 등의 38개의 기숙사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기숙사는 성적순으로 학생을 뽑는 것이 아니고, 그 공동체가 추구하는 가치와 정체성에 맞는, 그 기숙사에 기여할 수 있는 학생들을 위주로 뽑는다. 연주회가 강점인 기숙사, 조정과 같은 특정 운동 종목이 강점이 기숙사 등으로 각 컬리지의 색이 무척 달랐다. 나의 경우 그러니까 해리포터 기숙사의 경우는 옥스퍼드 대학교의 울프슨 컬리지(Wolfson College)와 자매결연이 되어 있어서 옥스퍼드와 런던을 오가며 여러 친구를 사귈 수 있었다. (언젠가 자매결연 프로그램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 옥스퍼드에서 펀팅을 하는 느낌, 울프슨 컬리지의 가든파티 등 짧게 설명할 수 없는 순간들이 있다.)


그래서 해리포터 기숙사에 뽑혔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 나는 영화 속의 헤르미온느가 된 기분이었다.  


선발이 되면 그 기숙사의 시스템과 문화를 공유하는 멤버로 그곳의 룰을 따라야 하고, 그렇지 못할 시 퇴사다. 우선 입사도 하기 전에 기숙사 등록자 투어(Registrar's Tour) 프로그램을 통해서 추구하는 가치와 공유하는 규칙에 대해서 설명을 들었다. 등록자 투어, 월컴 파티, 페어웰 파티, 담당 교수 초청의 밤 등은 필수 참석이다. 이러한 연회는 사진처럼 대연회장에서 긴 테이블에 앉아 정말 영화 해리포터의 한 장면인 듯 진행되었다. 필수 참석 행사는 근사한 코스 요리가 무료로 제공된다. 옷은 반드시 formal 하게 갖춰 입어야 한다. 정장이 아니라면 각국의 전통의상을 입는 것을 권했다. 무척 다채롭고 아름다웠다. 나 역시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날은 세계 각국에서 온 친구들 사이에서 슈퍼스타가 되곤 했다.



선택 참여 프로그램으로는 음악회, 오페라 공연, 아카펠라 공연, 학생이 직접 강연자가 되는 TED 강의, 영국 셀럽 강연, 여왕 혹은 시장 등 유명 인사의 방문 행사, 다양한 규모의 토론회, 어린이를 위한 행사, 핼러윈 행사, 난민 후원의 밤, 마라톤 행사, 요리 행사, 크리스마스 파티, 여름 파티 등이 있었고 기숙사 홈페이지에 미리 공지가 올라오고 신청하면 참여할 수 있었다.


소규모 그룹 모임도 활성화되어 있다. 국가별 대륙별 모임, 요리 모임, 요가 모임, 댄스 모임, 다큐멘터리 시청 모임, 보드게임 모임, 영화관 방문 모임, 장학생 모임, 상담 모임 등. 그리고 1~3 파운드면 들을 수 있는 요리, 운동, 댄스 강의도 많았다. 아마 내가 모르는 모임도 더 있을 것이다.


처음으로 기숙사에 이사를 들어가는 날. 기숙사 담당자의 메일을 받았다. 환영 친구(Welcome Friend)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얼굴은 모르고 이름만 알게 된 한 친구가 정문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인도에서 온 Design을 전공하는 활발한 친구였다. 내 방까지 안내를 해주며, 전화번호를 알려주고 개인적으로 궁금한 부분에 대해서 언제든지 도움을 주겠다고 했다. 그녀는 나의 첫 번째 기숙사 친구가 되었고, 다른 행사를 처음 참여할 때 어색하거나 불편하지 않게 동행인이 되어 주었다. 도움받는 게 어색했던 나에게 그녀는 기숙사의 구성원으로 기꺼이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평소 다른 기숙사에서 살던 친구들에게 불평불만을 많이 듣곤 했다. 주방이나 공동 공간이 쓰레기 더미와 같다.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지 않는다. 등등. 신기하게도 해리포터 기숙사에서는 다른 곳에 비해 많은 일이 순조롭게 흘러갔다. 문제 자체가 생기지 않을 수는 없었으나, 좀 더 다양한 방식으로 조화롭게 해결되었다고나 할까. 학교에 수업을 들으러 가는 길에서 인종차별을 당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기숙사에서는 그런 경우가 거의 없었다. 물론 기숙사에 다양성을 존중하는 규정이 있고, 그런 사람들을 위주로 뽑으니까 당연한 거 아냐?라고 물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해리포터 기숙사에는 우리가 함께 지키고자 하는 가치가 있었고, 그것이 누군가에 의해 망가지면, 함께 바로 잡으려 했다. 물론 누군가를 대신해 헌신하는 존재도 분명 다른 곳보다 많았다고 생각한다.



석사 혹은 박사 과정에 있는 학생들만 지원과 합격이 가능했기에, 비교적 나이가 많은 결혼한 커플들이나 파트너들이 꽤 있었다. (언젠가 캐나다 친구와 나눈 파트너에 관한 이야기도 공유하고 싶다.) 학생 기숙사인데 아기들도 자주 볼 수 있었다. 아이들을 위한 놀이방, 도서관도 마련되어 있었다. 그곳의 축복받은 아기들은 자라면서 당연하게 다양성을 받아들이고, 존중을 몸과 마음에 익히는 것으로 보였다. 어찌하여 운명을 만나게 된다면 그와 함께 공부를 하며 아이를 키우고 싶은 공간이었다. 식당에는 여러 메뉴 중에 꼭 하나는 비건을 위한 메뉴가 준비되어 있었다.


그곳에는 외향형 인간이든, 내향형 인간이든 존중받을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었다. 힘들 때는 손 내밀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도 있었다. 구성원 하나하나 소외되는 사람들이 없도록 돕는 시스템. 다양한 사람들이 서로 존중하는 조화로운 공동체. 그것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라는 것을 수업이나 강의를 듣지 않았지만, 시스템 속에서 이타적인 삶의 가치에 대해 체화하는 느낌이었다.


또 기숙사의 정체성, 그 공동체가 가진 문화와 시스템이 좋았다. 해리포터 기숙사의 구성원들은 이타적인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존중받는 공동체를 만들었다. 이기적으로 사는 게 어때서라고 묻는 이들에게, 그건 아니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당신이 살아있는 것 자체가 어쩌면 이기적인 거라고. 그렇게 매일 엄청난 쓰레기들을 만들어내며, 그렇게 수많은 생명체를 죽이며 사는 존재로서 숙명은 어찌하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에 대한 책임감은 가져야 한다고. 반드시 마음속에 양심은 살려둬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인종, 국적, 성별, 나이와 관계없이 자유롭다고 느꼈고, 존중받고 있다고 느꼈다. 그리고 배웠다. 우리가 살고 싶은 아름다운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는 구성원의 책임감이 필수라는 것을. 그곳이 완벽한 공간이었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누군가 내게 왜 그곳이냐고 물었다. 그 질문에 대한 나의 답이다. 그런 공동체에서 살아보았더니 참 좋더라고…


내게 누군가 혹은 무언가를 사랑하는 것은, 대상에게 폐가 되지 않으면서 조용히 그 혹은 그곳에 익숙해지는 것이라고. 이미 어린 왕자와 여우가 서로에게 길들이는 것이라는 표현을 사용해 버렸지만,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나의 세계를 만들어갔다. 내가 아니면 안 되고, 네가 아니면 안 되는.


나는 오늘도 자기 전 주문을 외운다.

윙가르디움 레비오우사.

언제 어느 순간에 내가 공중에 띄워야 할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주문을 외운다.

녹스.


붙임 1. 내가 만난 아름다운 순간들에 대한 에세이 그리고 어떤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가능하다면 그 글들을 책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붙임 2. 올해 여름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꿈을 꿉니다. 그 길로 가는 길에, 그 길에서 돌아오는 길에 내가 사랑한 그 공간을 다시 방문하는 꿈을 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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