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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eegarden Jun 05. 2021

무엇이 할머니를 살아있게 하나요?

0604

한동안 그저 매일 조금씩 걸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카톡에 꼬박꼬박 답하고, SNS에 댓글을 달고, 소소한 행복을 누릴 수 있었다. 그래서 꿈꿨다. 소박한 북토크, 사인회 등. 아주 오랜 만에 예쁜 옷을 샀고, 스타일에 맞춰 예쁜 귀걸이도 샀다. 설레고 있었는데, 지지난 주 119 구급차에 실려 응급실에 가게 되었고. 특별병실을 거쳐 입원을 하게 되었다. 나의 모든 계획들은 다시 멈추게 되었다. 북토크도, 사인회도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대면으로 하기로 예정되어있던 인터뷰들이 다 취소되었다. 요즘 자도 자도 안 괜찮으니까 계속 잠만 자게 된다. 약을 먹고 잠들었다가 아파서 깨고 아프니까 다시 약을 먹고 다시 자고의 무한 반복이다. 괜찮냐고 묻지 마시랍. 안 괜찮으니까. ㅎㅎㅎ


쓰기 싫었다. 또 내가 힘들고 아픈 이야기를 해야 하니까. 하지만 누군가 나의 글을 기다린다고 했고, 병원에서 본 어떤 장면이 눈을 감아도 자꾸만 떠올라서 그 장면을 쓰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쓰기로 했다.


실려가면서 눈을 꼭 감았다. 하느님이랑 눈도 마주치기 싫었고,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살려달라고 하지 않았다. 고집스러운 딸처럼 양악을 꽉 물고 참았다. 그렇게 고통 가운데 엄마 아빠 몰래 “제발 이게 마지막이길…” 하고 중얼거렸는지도 모르겠다. 가장 고용량 마약성 진통제를 맞았는데도 차도가 없었을 때, 응급실 의사 선생님은 쇼크가 올까 봐 더 이상 주사를 놔줄 수가 없다고 하셨다. 의사 선생님께, “엉엉… 선생님... 너무... 아파요... “ 해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고용량 마약성 진통제도 맞고, 패치도 붙이고, 원래 먹던 약 맥시멈까지 먹고 다음날이 되어서야 통증이 좀 진정되기 시작했다.


병원에 있는 것은 정말이지 서글프다. 하기 싫은 검사를 매일 하고 매일 피를 뽑았다. 앙마른 내 몸에 바늘 꽂을 데가 없어서 발등을 찾아간다. 번번이 세 번째까지는 눈을 꼭 감고 잘 참는다. 그런데 네 번째부터는 나도 싫은 소리를 하게 된다. “선생님, 피가 나올 것 같은 곳에 찌르면 안 되나요?” 속상해 보고 있던 엄마도 고개를 돌리고야 만다. 힘겹게 피를 뽑고 나니 내 촛대 뼈 주위, 발등은 여기저기 멍투성이다. 엄마와 아빠와 동생을 동시에 보고 싶었다. 하지만 응급실에서는 돌아가면서 한 번에 한 명씩만 볼 수 있었다. 입원했을 때는 주보호자 한 명만 가능해서 엄마만 볼 수 있었다. 면회는 불가. 아… 집에 가고 싶다.


특히 손등에 주렁주렁 호스가 달린 나는 카톡도 못하게 된다. 카톡을 하면 손등 피부가 아프니까... 멈춘다. 또 엄지 손가락 끝에는 집게가 꽂아진 라인을 달고 있어야 한다, 마약성 진통제를 너무 많이 먹은 내가 잠들었다가 숨을 멈추면 안 되니까… 멍청히 천장을 보고 눕는다. 결국 약에 취해 잠을 자거나, 주는 밥이나 먹고, 하라는 검사나 하게 된다.


그렇게 5인실. 나는 맨 안 창쪽 침대다. 내 앞쪽 침대 할머니, 내 왼쪽 침대 할머니, 둘 다 중증환자로 말로 의사소통을 못하신다. 대부분 괴이한 소리를 내셨다.


왼쪽 할머니는 간병인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학대를 당하고 계셨다. 할머니가 간병인에게 불편함을 호소하면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라고 말했다. 할머니가 검사가 있어서 금식해야 하는 날에는 놀리는 듯이 사과를 쩝쩝거리며 먹으며 “할머니는 못 먹어. 금식해야 하잖아.” 어떤 날은 할머니 보고 “자지 말고, 깨어 있으라고! 오늘 가족들 오는 날이라니까!” 호통쳤다. 그러면 안된다고 말할까도 생각해봤지만, 간병인의 정신이 건강하지 않은 듯하여 더 말할 수 없었다. 내게도 몇 번쯤 ‘에어컨을 꺼라. 불을 꺼라’ 등등 명령을 했고, 우연히 그 장면을 목격한 간호사가 그러면 안된다고 했더니 더 이상 내게 말하지 않았지만, 그 짜증은 고스란히 말 못 하는 환자인 할머니에게 돌아갔다.


앞쪽 할머니는 하루에 몇 번씩 주기적으로 가래를 뽑아야 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건 의료진이 아닌 가족이 해준다고 했다. 둘째 딸이라는 분이 가래를 뽑기 시작했다. 심한 악취가 났다. 그 시간이 끝나면 할머니는 계속 울었다. 사실 나는 그게 울음소리인 줄 몰랐다. 그저 이상한 소리라고만 생각했다. 다만 둘째 딸이 “자꾸 울면 또 한다~! 쯥! 그러니까 뚝 그쳐. 쓰~으읍! 다른 사람들한테 미안하게 왜 이래. 또 한다!” 라며 할머니에게 여러 번 겁을 줬다. 그래서 그게 할머니의 울음인 것을, 눈물인 것을 알게 되었다.


두 할머니의 눈을 본 적이 없다. 내가 지나가며 볼 땐, 항상 눈을 감고 계셨다. 살아는 있지만 살아있지 않은 것 같은 상태랄까… 나는 마음으로 물을 수밖에 없었다. “할머니… 무엇이 할머니를 살아있게 하나요?” 도무지 내가 할머니라면 절대 이곳에 이 상태로 있다는 것을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끊임없는 검사와 기계소리, 환자들 기침 가래소리 우웅 우웅 띡띡 삐-이 딸깍. 내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없고, 자꾸만 무언가를 더 못하게 되는 듯한 곳. 병원에 있어서 편안해진 것이 아니라 병원에 있어서 날카롭고 예민해진 나는 커튼을 쳐버렸다.


그리고 천장을 보다 잠이 들었다. 아주 비싼 마약성 진통제를 아주 많이 쏟아부었으니 계속 자는 수 밖에. 자다가 기계 소리에 잠에서 깼다. 치과에 가면 들리는 침을 제거하는 석션 소리. 이비인후과에 가면 콧물을 빼는 기계소리. 또 할머니 가래 뽑는 시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번엔 첫째 딸 차례인 듯했다.


나는 생각했다. 악취가 나네. 창문을 열어야겠다. 농양을 한참을 뽑네무지 아플 텐데할머니  울텐데한데 이상했다. 가래 뽑기 시간이 끝났는데, 할머니가 울지 않았다. 이해할  없었다. 뭐지? 혹시 기절하셨나? 다시 귀를 기울였다. 도저히  수가 없었다. 온갖 라인을 주렁주렁 달고 커튼 밖을 나서기로 했다.


첫째 딸이 침대 상체를 세워 앉은 할머니를 오른 팔로 감싸 안은 채 악취는 아랑곳없이 할머니의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비스듬히 맞대고 부비며 눈을 감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엄마… 엄마… 살려면 이거 잘 참고 해야 해… 응...? 알지...? 우리 엄마 오늘 너무 잘했네… 엄마… 엄마… 너무 고마워…”


예상치 못한 장면을 목격한 나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은 채로 눈물이 쏟아졌다. 화장실 가는 척하려고 했는데, 움직일 수가 없었다. 많이 아팠을 텐데, 할머니는 울지 않았다. 그저 괜찮다는 듯이 가만히 눈을 감고 계셨다. 그걸로 내게 답 하셨다.


할머니… 미안해요… 제가 많이 부족해서 아는 게 없어요. 이제 좀 알 것 같아요.


둘째 딸이 이 글을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 글에 상처 받지 않았으면 한다. 나는 그녀가 얼마나 고생하고 있는지 안다. 5인실 병실, 바닥에서 15센티 높이의 좁은 패드에서 매일 쪽잠을 자는 그녀의 삶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안다. 다만 나는 그 장면을 봐버렸고, 퇴원을 한 후에도 눈을 감으면 그 장면이 떠올라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우리를 지키는 천사들이 있다. 오늘도 그런 천사 같은 분들의 헌신과 기도로 하루를 산다.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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