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04
한동안 그저 매일 조금씩 걸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카톡에 꼬박꼬박 답하고, SNS에 댓글을 달고, 소소한 행복을 누릴 수 있었다. 그래서 꿈꿨다. 소박한 북토크, 사인회 등. 아주 오랜 만에 예쁜 옷을 샀고, 스타일에 맞춰 예쁜 귀걸이도 샀다. 설레고 있었는데, 지지난 주 119 구급차에 실려 응급실에 가게 되었고. 특별병실을 거쳐 입원을 하게 되었다. 나의 모든 계획들은 다시 멈추게 되었다. 북토크도, 사인회도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대면으로 하기로 예정되어있던 인터뷰들이 다 취소되었다. 요즘 자도 자도 안 괜찮으니까 계속 잠만 자게 된다. 약을 먹고 잠들었다가 아파서 깨고 아프니까 다시 약을 먹고 다시 자고의 무한 반복이다. 괜찮냐고 묻지 마시랍. 안 괜찮으니까. ㅎㅎㅎ
쓰기 싫었다. 또 내가 힘들고 아픈 이야기를 해야 하니까. 하지만 누군가 나의 글을 기다린다고 했고, 병원에서 본 어떤 장면이 눈을 감아도 자꾸만 떠올라서 그 장면을 쓰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쓰기로 했다.
실려가면서 눈을 꼭 감았다. 하느님이랑 눈도 마주치기 싫었고,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살려달라고 하지 않았다. 고집스러운 딸처럼 양악을 꽉 물고 참았다. 그렇게 고통 가운데 엄마 아빠 몰래 “제발 이게 마지막이길…” 하고 중얼거렸는지도 모르겠다. 가장 고용량 마약성 진통제를 맞았는데도 차도가 없었을 때, 응급실 의사 선생님은 쇼크가 올까 봐 더 이상 주사를 놔줄 수가 없다고 하셨다. 의사 선생님께, “엉엉… 선생님... 너무... 아파요... “ 해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고용량 마약성 진통제도 맞고, 패치도 붙이고, 원래 먹던 약 맥시멈까지 먹고 다음날이 되어서야 통증이 좀 진정되기 시작했다.
병원에 있는 것은 정말이지 서글프다. 하기 싫은 검사를 매일 하고 매일 피를 뽑았다. 앙마른 내 몸에 바늘 꽂을 데가 없어서 발등을 찾아간다. 번번이 세 번째까지는 눈을 꼭 감고 잘 참는다. 그런데 네 번째부터는 나도 싫은 소리를 하게 된다. “선생님, 피가 나올 것 같은 곳에 찌르면 안 되나요?” 속상해 보고 있던 엄마도 고개를 돌리고야 만다. 힘겹게 피를 뽑고 나니 내 촛대 뼈 주위, 발등은 여기저기 멍투성이다. 엄마와 아빠와 동생을 동시에 보고 싶었다. 하지만 응급실에서는 돌아가면서 한 번에 한 명씩만 볼 수 있었다. 입원했을 때는 주보호자 한 명만 가능해서 엄마만 볼 수 있었다. 면회는 불가. 아… 집에 가고 싶다.
특히 손등에 주렁주렁 호스가 달린 나는 카톡도 못하게 된다. 카톡을 하면 손등 피부가 아프니까... 멈춘다. 또 엄지 손가락 끝에는 집게가 꽂아진 라인을 달고 있어야 한다, 마약성 진통제를 너무 많이 먹은 내가 잠들었다가 숨을 멈추면 안 되니까… 멍청히 천장을 보고 눕는다. 결국 약에 취해 잠을 자거나, 주는 밥이나 먹고, 하라는 검사나 하게 된다.
그렇게 5인실. 나는 맨 안 창쪽 침대다. 내 앞쪽 침대 할머니, 내 왼쪽 침대 할머니, 둘 다 중증환자로 말로 의사소통을 못하신다. 대부분 괴이한 소리를 내셨다.
왼쪽 할머니는 간병인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학대를 당하고 계셨다. 할머니가 간병인에게 불편함을 호소하면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라고 말했다. 할머니가 검사가 있어서 금식해야 하는 날에는 놀리는 듯이 사과를 쩝쩝거리며 먹으며 “할머니는 못 먹어. 금식해야 하잖아.” 어떤 날은 할머니 보고 “자지 말고, 깨어 있으라고! 오늘 가족들 오는 날이라니까!” 호통쳤다. 그러면 안된다고 말할까도 생각해봤지만, 간병인의 정신이 건강하지 않은 듯하여 더 말할 수 없었다. 내게도 몇 번쯤 ‘에어컨을 꺼라. 불을 꺼라’ 등등 명령을 했고, 우연히 그 장면을 목격한 간호사가 그러면 안된다고 했더니 더 이상 내게 말하지 않았지만, 그 짜증은 고스란히 말 못 하는 환자인 할머니에게 돌아갔다.
앞쪽 할머니는 하루에 몇 번씩 주기적으로 가래를 뽑아야 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건 의료진이 아닌 가족이 해준다고 했다. 둘째 딸이라는 분이 가래를 뽑기 시작했다. 심한 악취가 났다. 그 시간이 끝나면 할머니는 계속 울었다. 사실 나는 그게 울음소리인 줄 몰랐다. 그저 이상한 소리라고만 생각했다. 다만 둘째 딸이 “자꾸 울면 또 한다~! 쯥! 그러니까 뚝 그쳐. 쓰~으읍! 다른 사람들한테 미안하게 왜 이래. 또 한다!” 라며 할머니에게 여러 번 겁을 줬다. 그래서 그게 할머니의 울음인 것을, 눈물인 것을 알게 되었다.
두 할머니의 눈을 본 적이 없다. 내가 지나가며 볼 땐, 항상 눈을 감고 계셨다. 살아는 있지만 살아있지 않은 것 같은 상태랄까… 나는 마음으로 물을 수밖에 없었다. “할머니… 무엇이 할머니를 살아있게 하나요?” 도무지 내가 할머니라면 절대 이곳에 이 상태로 있다는 것을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끊임없는 검사와 기계소리, 환자들 기침 가래소리 우웅 우웅 띡띡 삐-이 딸깍. 내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없고, 자꾸만 무언가를 더 못하게 되는 듯한 곳. 병원에 있어서 편안해진 것이 아니라 병원에 있어서 날카롭고 예민해진 나는 커튼을 쳐버렸다.
그리고 천장을 보다 잠이 들었다. 아주 비싼 마약성 진통제를 아주 많이 쏟아부었으니 계속 자는 수 밖에. 자다가 기계 소리에 잠에서 깼다. 치과에 가면 들리는 침을 제거하는 석션 소리. 이비인후과에 가면 콧물을 빼는 기계소리. 또 할머니 가래 뽑는 시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번엔 첫째 딸 차례인 듯했다.
나는 생각했다. 악취가 나네. 창문을 열어야겠다. 농양을 한참을 뽑네… 아… 무지 아플 텐데… 할머니 또 울텐데… 한데 이상했다. 가래 뽑기 시간이 끝났는데, 할머니가 울지 않았다. 이해할 수 없었다. 뭐지? 혹시 기절하셨나? 다시 귀를 기울였다.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온갖 라인을 주렁주렁 달고 커튼 밖을 나서기로 했다.
첫째 딸이 침대 상체를 세워 앉은 할머니를 오른 팔로 감싸 안은 채 악취는 아랑곳없이 할머니의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비스듬히 맞대고 부비며 눈을 감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엄마… 엄마… 살려면 이거 잘 참고 해야 해… 응...? 알지...? 우리 엄마 오늘 너무 잘했네… 엄마… 엄마… 너무 고마워…”
예상치 못한 장면을 목격한 나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은 채로 눈물이 쏟아졌다. 화장실 가는 척하려고 했는데, 움직일 수가 없었다. 많이 아팠을 텐데, 할머니는 울지 않았다. 그저 괜찮다는 듯이 가만히 눈을 감고 계셨다. 그걸로 내게 답 하셨다.
할머니… 미안해요… 제가 많이 부족해서 아는 게 없어요. 이제 좀 알 것 같아요.
둘째 딸이 이 글을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 글에 상처 받지 않았으면 한다. 나는 그녀가 얼마나 고생하고 있는지 안다. 5인실 병실, 바닥에서 15센티 높이의 좁은 패드에서 매일 쪽잠을 자는 그녀의 삶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안다. 다만 나는 그 장면을 봐버렸고, 퇴원을 한 후에도 눈을 감으면 그 장면이 떠올라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우리를 지키는 천사들이 있다. 오늘도 그런 천사 같은 분들의 헌신과 기도로 하루를 산다. 감사하고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