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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eegarden Aug 15. 2021

Matches 팔이 소녀

0813

내 이름은 ‘에브리네’. 아프리카 대륙의 55개국 중 한 나라에 산다. 내가 특별할 이유는 없다. 나 같은 아이들이 아주 많이 있으니까. 아빠는 한때는 잘 나간 패배한 마약 딜러다. 요즘은 젊은 딜러들에게 밀려서 힘을 못쓴다. 이 바닥의 패권을 장악한 딜러 찰스는 아빠에게 약을 구매한 이들의 손가락을 도끼로 내려찍거나 입을 찢었다. 겁쟁이 아빠는 산입에 거미줄을 치지 않기 위해 미성년자인 나를 내보낸다. 개발도상국의 많은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이 학교를 가는 대신 일을 하는 것은 아주 흔한 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찰스를 두려워했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내가 판매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의 관용을 보였다. 어쩌면 내가 아빠와 내가 간신히 입에 풀칠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최소한만 거래를 한다는 것을 아는지도 모른다. 물론 찰스의 마음이 언제 어떻게 바뀔지는 아무도 몰랐다.


아빠는 자신이 다치거나 죽는 게 두려워서 늘 나를 내보내는 찌질이지만 내게 목표한 만큼 수익을 올리지 못하면 나를 다른 지역 늙은이에게 팔아버리겠다고 소리 지른다. 늘 술에 취한 멍텅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어리고 튼튼하게 생겨서 지참금을 한몫 단단히 챙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  물론 어떤 늙은이에게 한 번에 목돈을 받고 팔아넘기는 것보다 매일 내가 가져오는 돈이 더 낫기에 팔아넘기지 않고 있다는 것쯤은 나도 다 안다. 어차피 큰돈이 생기면 그걸 탐내는 이들이 많았고,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확률이 높았다. 나도 브라이언이 없는 낯선 지역에 가서 살고 싶지 않기에 꾸역꾸역 이 일을 하고 있다. 브라이언을 바라보고 있는 것만이 내 삶의 유일한 안식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희망이 된다.


어느 날 영국에서 온 하얀 피부와 파란 눈의 NGO 개발 전문가는 사람들을 모아 두고 나와 같은 소녀들이 결혼을 빌미로 어린 나이에 지참금을 받고 팔려가는 게 여러 개발도상국의 큰 문제라고 했다. 선진국에서는 그런 게 문제로 인식되는 것 같았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뛸 듯이 기뻤다. 우리 마을에서 모두가 당연하게 생각하고 일상적으로 이뤄지는 일이지만 입 밖으로 낼 수 없었던 일. 내 뱃속의 막연한 거부감이 가슴을 거쳐 목구녕까지 차올랐던 일. 어떤 늙은이에게도 팔려가고 싶지 않은 내 마음을 그가 대신 사람들 앞에서 논리적으로 말해준 것 같아서 고마웠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되었다. 똑똑해 보이는 사람들이 대중 앞에서 하는 말과 실제로 하는 행동이 다른 경우가 많다는 것을. 세상에는 어른 같잖은 어른들이 너무 많았다. 그의 생각이 더 듣고 싶어 그와 단둘이 있게 되었을 때, 그는 나의 팔뚝을 잡는 척하면서 내 가슴을 부여 쥐었었다. 처음엔 실수인 줄 알았으나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그는 더 대담해졌다. 나의 까맣고 탐스러운 피부가 아름답다고 했다. 자신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가지면 돈을 주겠다고 했다. 그 돈이면 힘들게 생활비를 벌기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되어 좋지 않냐고 물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어린 내게 마약을 파는 일이 더 건전하게 느껴졌다. 도망치듯 그의 사무실을 나왔고, 다시는 NGO개발 전문가들의 말을 믿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나를 지킬 수 있는 건 나밖에 없다는 것을 한번 더 확인한 계기가 되었다.


업계에서 최초로 누군가 먹는 마약을 개발했다. 예전처럼 주사기로 맞는 방식이 아니라서 그런지 사람들은 더욱 쉽게 접근해왔다. 나빠 보이는 것들은 점점 더 쉬워지는 듯하고, 좋아 보이는 것들은 더 행하기 어려워지는 듯하다. 새로 개발된 마약의 이름은 ‘matches(성냥)’’이라고 했다. 언젠가 밍이 내게 해 준 이야기에 의하면 동남아시아의 한 나라 라오스라는 곳에서는 마약을 ‘happy(행복한)’라고 부른다고 했다. 아주 불행한 이들이 많이 찾는 것이니 어쩌면 세상의 불공평함과 균형을 위해 붙여진 이름 같았다. matches. 성냥처럼 화르륵 타오르는 듯이 눈앞이 번쩍한다고 해서, 그리고 환영을 본다고 해서 matches이라고 이름하는 것 같았다. 아마 이전 것보다 강력해진 것임에 틀림이 없었다. 하지만 비교는 할 수 없다. 나는 이전 것을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브라이언과 이마를 맞대고 약속했었다. 우리가 마약을 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세상 사람들은 아프리카에 관심이 없었고, 그 아프리카에서도 가장 천대받는 계층에 속한 나. Covid-19 등을 이유로, 세상이 흉흉하다는 이유로 전보다 더욱더 관심을 갖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에겐 우리만의 꿈과 약속이 있었다. 우리가 난민보다는 낫지 않냐고 이야기한 적도 있었다.


어느 날 matches를 거래하던 중이었다. 시내에서 폭탄이 터졌다고 했다. 빈번한 내전의 연장선상에 있는 우리나라. 두세 달에 한 번씩 시장에서 폭탄이 터졌고, 누군가 다치거나 죽거나 했다. 일상의 한 부분이었다. 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브라이언이 죽었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나에게 의지할 유일한 산 같았던 그. 자라면서 모든 것이 절망적이었지만 그 애만 있으면 다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늘 그는 나의 안식처가 되어주었다. 누군가 나에게 고통을 주려면 막아주었던 친구. 내 인생에 유일한, 단 하나의 의미 있는, 오직 하나 지키고팠던 소중한 것을 강탈당한 느낌이었다. 모든 것을 잊고 싶었다. 주머니에 matches가 만져졌다. 북받쳐 오르는 슬픔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약속의 대상이 사라졌는데, 약속을 지킬 이유가 없어졌다.


한 알을 삼켰다. 두통과 구토가 밀려오는 가운데, 밍이 눈앞에 서 있었다. ‘오… matches! 이게 너의 능력인 거야?’ 반가웠다. 문득 밍 때문에 가졌던 나의 꿈이 떠올랐다. ‘선생님이 되는 것’ 마약의 소굴에서 태어나서 에이즈에 걸려 살아가는 어린이들에게 조금은 다른 삶의 방식을 알려주고 새로운 비전을 제시해주고 싶었다. 동양의 작은 나라 한국에서 교육 봉사단원으로 왔다던 그 언니, 밍처럼 되고 싶었다. 밍에게서는 옅은 베이비파우더 냄새가 났었다. 엄마가 어떤 느낌일지는 몰라도 만약에 내게 엄마가 있었다면 그런 느낌이었을 것 같았다. 사실 처음 나는 밍이 싫었다. 나를 둘러싸고 있던 동네 어린아이들이 밍이 오면 다들 그녀에게로 달려가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 곁에 있다 밍이 동네 어린이들에게 해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녀가 여행했던 40개 이상의 나라에 대한 것들이었다. 재밌었다. 더 듣고 싶었다. 조금씩 가까이 가다가 밍의 뒤에 섰다. 그녀의 까만 탐스러운 머릿결에 살짝 쓸어내려 보았다. 부드러웠다. 조금만 길면 동그랗게 말려서 두피를 파고드는 뻣뻣한 돼지털 같은 내 머릿결과는 너무나 달랐다. 아마 밍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는 척하지 않았다. 모르는 척 이야기를 계속해나갔다. 아마 버스에서 다른 이들에게 여러 번 겪어서 내성이 생긴 건지도 모른다. 보드라운 향기가 나를 감쌌다. 밍은 자기도 들은 이야기라며 ‘사람의 향기는 바람을 거슬러 전해진다’고 했다. 내가 그런 사람이 되길 바란다고 했었다. ‘나 같은 애도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하고 생각했다.  


어느 날 밍이 크레파스, 색연필이라는 것을 들고 왔었다. 처음 보는 것들이었다. 두 손에 들고 한참을 서있었다. 뭘 하라는 건지… 그걸 가지고 놀면 밍이 내 과거와 내 마음을 알 수 있다고 했다. 나는 믿지 않았다. 자라면서 얼마나 다양한 거짓말을 들어왔던가. 밍에게 그런 능력이 있을 리 없다. 그녀는 그저 다양한 세상에 대해서 들려주는 이야기꾼일 뿐이다. 내가 크레파스를 들고 어찌할 줄 몰라 망설이자 그녀가 시범을 보여줬다. ‘그림을 그리는 것’이라고 했다. 난생처음 그림이라는 걸 그리기 시작했다. 내가 학교에 가지 못했고, 교육을 받지 못한 것일 뿐 머리가 나쁜 게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게다가 4살짜리 잔느 앞에서 크레파스를 어떻게 쓰는지 모른다는 것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내가 크레파스와 색연필을 들자 잔느를 포함한 어린이들 사이에서 ‘우와’ 하는 환호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어깨가 으쓱해졌다. 그리고 밍이 그리라고 한 것들을 순차적으로 정성을 들여서 그려나갔다. 시간이 흘러 그림 그리기가 끝났다고 나는 자랑스럽게 그녀에게 말했다. 그림을 한참 쳐다보던 그녀의 눈에, 그림과 나를 번갈아 바라보던 눈에 갑자기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갑자기 그녀가 엉엉 대성통곡을 하고 울기 시작했다. “밍 왜 그래?” 거짓말인 줄 알았던 그녀의 말이 진짜였나 보다. 그녀는 내 과거와 내 마음을 알게 된 것 같았다. 아무도 모르길 바랐는데… 울음을 멈추고 질문을 시작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녀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었냐고. 얼마나 아팠냐고. 누가 그랬냐고. 그 어떤 것도... 그냥 에브리네는 너무 멋진 사람이라고만 말했다. ‘진짜? 정말?’ 처음 들어보는 칭찬에 너무 부끄러워 얼굴이 화끈거렸지만, 마음에 무언가 얹혀있었던 나쁜 기억들이 바람과 물에 쓸려져 내려가는 것만 같았다. 며칠간 다녀본 학교에서는 조금만 의사소통이 안돼도 뺨을 때리고, 발로 날아 차기를 하던 선생님들이 흔했다. 조그마한 밍은 세상의 많은 이야기를 꾹꾹 눌러 채운 선생님 같았다. 이후에 알게 된 바에 의하면 미술심리치료라고 했다. 그 이후로 나는 밍을 좋아하게 되었다. 마치 그녀와 친구가 된 것 같았고 나는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정말 행복했던 순간이었다. 한데 밍은 이제 그만 떠나야 한다고 말했다. ‘밍… 가지 마… 안 가면 안 돼?’


눈을 떴더니 노려보며 내 앞에 서있던 아빠가 내 머리와 뺨을 후려치며 나를 당장 팔아버리겠다고 한다. 팔려가기 전에 미뤄왔던 할례를 해야 한다고 했다. 아빠에게 레게머리를 잡혀 끌려가며 울며불며 발버둥 쳤다. 하지만 도망갈 수 없었다. 할례를 하려 달려드는 잔인했던 동네 아줌마들과 할머니들. 자신들이 그렇게 고통스러웠음에도, 더 열심히 그 일을 행하는 사람들. 오히려 자신이 느꼈던 고통을 더 느끼게 해 주리라는 눈빛으로 말했다.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라고. 전통이라고. 잔인한 눈빛의 번득임. 도망치고 싶었으나 그러기에 나는 너무 연약했다. 될 대로 되라지. 어차피 이제 내 고통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었다. 브라이언마저 이 세상에 없으니… 상상할 수 없는 고통에 기절했다.  동네에선 딱 한 명만 할례를 피할 수 있었다. 그녀의 부모님이 그녀를 너무 사랑하기에 그런 게 가능하다고 했다. 부모에게 받는 사랑이 어떤 건지 나는 알 수 없었다. 엄마는 이미 에이즈로 죽었고, 아빠는 알코올 중독자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으니… 사랑은 뭘까…? 왜 내겐 주어지지 않은 걸까…?


기절했다가 고통 속에서 깨어났다. 고통이 너무나 커서 견딜 수가 없었다. 아프리카의 대부분의 소녀들이 당하는 일이고, 대부분이 잘 극복하는 일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감당하기 벅찬 일이었다. 게다가 내겐 브라이언도 없고, 이제 곧 한 늙은이에게 팔려갈 것이다. 삶에 희망이 없는 이에게 내일이란 없다. 언젠가 브라이언과 함께 도망가기 위해 숨겨두었던 가진 matches을 입에 다 털어 넣었다. ‘번쩍. 화아~ ‘ 몸의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 matches는 몸의 고통, 마음의 고통을 다 잊게 해주는구나… 기억조차 나지 않는 엄마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같이 가자고 했다. 단호하게 뿌리쳤다. 나를 지켜주지 못한 어른 같잖은 어른 주제에 어디서 감히… 엄마도 할머니도 다 멍청이에 바보 같았다. 자신의 몫만큼의 아주 작은 손톱만큼의 역사도 바꾸지 못한 위인들. 그저 시키는 대로만 살다 간 멍청이들. 멀리서 브라이언이 내게 웃으면서 다가왔다. 자신을 걸어서 나를 지키던 나의 오랜 벗. “나 없이 많이 힘들었지...” 브라이언도 밍처럼 내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세상의 모든 이들이 나를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괜찮았다. 나의 밍, 나의 브라이언. 나의 벗들만 나를 이해하면 그만이었다. 그 들이 있는 곳이 내겐 천국이었다. matches을 입에 모두 털어놓은 것에 후회란 없었다.


아침이 왔고, 아름다웠던 matches 팔이 소녀는 약물중독으로 사망에 이른 채 발견되었다. 누구도 마약중독자 소녀의 끝을 존중할 마음이 없었기에, 질질 질 끌려서 시체 처리소에 던져졌다. 시체 처리소조차 돈이 질서였고, 그녀의 아빠는 그 돈을 낼 능력도 생각도 없었다. 하지만 분명 그녀의 눈과 입은 웃고 있었다. 누군가는 비난의 어조로 그녀가 마약에 손을 댄 사실에만 집중했다. 명백한 범죄라고 소리치고 소리쳤다. 또 다른 누군가는 선의를 담은 목소리로 ‘어린 게 약물 중독이라니 ‘하면 혀를 끌끌 찼지만, 어차피 그건 성냥불이 켜졌다 꺼지는 순간만큼의 동정이었다. 모두 그녀가 어떤 환경에서 왜 마약에 손을 댈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관심 가질 여유가 없었다. 아주 급하게 평가부터 해야 했으니까. 어떻게 하면 그녀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지, 무엇이 그녀의 삶에 작은 변화를 줄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그녀를 그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구해낼 수 있는지 관심이 없었다. 다들 자신의 삶을 살기에 너무 바쁘고, 자신의 삶과 그녀의 삶 사이에 먼 거리가 있음을 확인하기에 바빴다. 그리고 그녀의 불행이 본질적으로 자신들의 삶과 먼 거리에 있음에 안도하고 안도했다. 모든 이에게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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