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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eegarden Sep 03. 2021

영혼의 친구에게, 9월의 안부를

0902

예전에 영국에서 석사할 때 너무 awesome한 남자를 만난 적이 있어. 같은 과 남자애였는데, 겁나 잘생기고, 똑똑한데, 인품도 존경스러울 정도라 정말 연애하고 싶은 남자들 중 하나였어. 근데, 연하였어. 왜 우리 사귀면 안 되냐고 묻는 그 녀석에게 ‘내가 나이가 많아서 연애를 할 수 없다’고 변명을 했는데, 그때 걔가 그러더라. 우리 신체에 나이가 있는 것처럼 우리 영혼에도 나이가 있다고. 그 영혼의 나이로 보면 우린 친구인 것 같다고. 그리고 때론 자신이 나보다 더 성숙한 영혼인 것 같다고…


한국 와서 다시 영국 갈 준비 하다 시한부 선고를 딱 받았는데, 예전에 그 애가 “네 방에서 자고 가면 안돼?”라고 물었을 때, ‘그래도 된다’고 할걸 하고 얼마나 후회되던지… 그냥 손만 잡고 자겠다고 내가 먼저 했어도 부족 할판에. 하하하.


무튼 그때부터 생각하게 되었어. “영혼의 나이”에 대해서…


그래서 난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널 내 신체적 나이와 상관없이 영혼의 동갑, 영혼의 친구로 생각하기로 했어. 영혼의 친구인 너에게 9월의 안부를 전하려고 해. 이미 8월의 안부는 브런치 안데르센 동화 재해석 소설로 전한 거 알지?  




영혼의 친구! 안녕?


그간 어떻게 지냈어?

나는 그동안 아주 많이 아팠어. 이젠 머리를 감기 위해 머리를 숙일 때도, 잠결에 돌아누울 때도, 숨을 쉴 때도 아파. 늘 이게 최고로 아픈 걸 꺼야 생각하는데, 최고보다 더 아플 수 있는 게 신기해. 숨 쉬며 어깨를 들썩일 때마다 아프면 삶이 저주가 돼. 다음 숨을 참아야 하나 고민하게 되거든. 사실 이런 말은 잘 안 하는데, 오랜만에 연락 온 오빠한테 이 말을 했다가 얼마나 미안했는지… 계속 두고두고 마음에 걸렸어. 근데 그게 진심이었는걸...




요조는 마음이 너무 아파서 아침에 눈을 뜨면 눈물이 난다고 했다. 나는 요조랑은 달리 몸이 아파서 아침에 눈을 뜨면서 눈물부터 난다. 너무 아프면 잠에서 깰 때 시간이 많이 걸린다. ‘일어나야 하는데..’를 마음속으로 스무 번 즘 중얼거리고 눈을 뜬다. 눈물이 거짓말 같이 주르륵주르륵 흐른다. 정말이지 슬퍼서 흘리는 눈물이 아니다. 손을 덜덜 떨면서 머리맡에 놔둔 약과 물컵을 든다. 매일 벌컥벌컥 잠옷의 목부분에 물을 흘리면서 약을 삼킨다. 너무 아파서 1초라도 빨리 약을 삼키고픈 마음인 거다. 가끔 사래가 들기도 한다. 그리고 다시 눕는다. 시계를 확인한다. 경아, 삼십 분만 참자, 딱 삼십 분만. 때로 그것은 사십 분이 되기도 한 시간이 되기도 하지만 일단 나를 속여야 한다. 물론 약이 안들을 때도 있고 그런 순간이 미리부터 두렵다. 삼십 분만 참으면 괜찮아질 거야… 주로 이런 삼십 분 동안 ‘이렇게 살 거면 그냥 바로 죽고 싶다’는 생각을 가장 많이 리얼하게 한다. 누군가는 멋진 하루를 열 때. 나는 늘 죽음을 생각한다. 그러나 보통은 그렇게 삼십 분이 지나면 다시 잠이 든다. 너무 아파서 깼기에 깊은 잠을 못 잤는데 마약성 진통제를 먹으니 온몸에 긴장이 풀리기도 하고, 그 죽음이라는 슬픈 생각을 지워보려는 나의 몸부림이기도 하다. 그렇게 자고 깨고 자고 깨고.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게 잠들어 산다. 아프거나, 아픈게 괜찮아질 순간을 기다리고 있거나, 자고 있거나. 어느 날, 눈을 떴을 때 안 아프면 순간은 정말 감사하고 행복한 순간이다.




라고 쓰고도 한참이 지났어. 이것 말고도 통증에 관한 글을 꽤 썼는데, 들려주진 않을 생각이야. 그러니 안부를 묻지 말아줘. 그저 너의 라이킷이면 충분해.


이렇게 고통스러운 삶을 버티고 있는 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때문인 거 같아. 사실 너는 크게 걱정 안 해. 내 동생도 아내와 봄이가 있으니까 걱정 안 하려고 해. 그저 ‘나 죽으면 우리 엄마 아빠 불쌍해서 어떻게 해…’ 같은 거야. 근데 무슨 인생이 이러냐?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 때문에 마음 아픈 삶, 너무 싫으다.


내 글을 기다린다는 네 말. 내 책이랑 잡지랑 내 글이 나온 거 다 들고 와서 사인해달라는 너. 내가 글을 잘 쓰는 게 아닌 거 알아, 그저 네가 나한테 살아갈 의미를 주고 싶은 거. 또 다른 너는 용돈으로 고작 30만 원 받으면서 내 두 번째 책은 25권 사주겠다는 말에 그 25권 때문에 내가 책을 써야 하냐 농담하며 얼마나 웃었는지. 유익한 상점에 방문했다는 얼굴모를 너에 대해 전해 들은 날엔 내게 마음결이 고운 친구가 얼마나 많은지 생각했어. 그 말과 행동에 힘을 얻고, 숨 쉴 때 참을만한 날은 쓰려고 했어. 그러니 부디 답하지 않은 카톡으로 내 사랑을 평가하지 않길…  


너도 알다시피 나는 긴 시간 외국에서 지냈어. 그중 내가 미얀마에서 일하는 동안 르완다, 방글라데시, 페루, 라오스, 에티오피아, 우즈베키스탄, 우간다에서 근무한 동기들이 있어. 세상에 대한 사랑이 아주 크고, 너무 좋은 사람들이라 함께한 무언가를 남기고 싶었어. 그래서 고민 고민하다 함께 ‘우리들의 버킷리스트’에 대한 책을 만들었어.


책 제목은 Keep the Bucket. 원래 버킷리스트는 Kick the Bucket이라는 말에서 왔어. 자살을 하기 위해 양동이 위에 올라가는데, 그때 그 양동이를 발로 차 버리는 거지. 그래서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을 리스트를 ‘버킷리스트’라고 하나 봐. 근데 나랑 같이 책을 쓰는 언니들, 이 멋진 언니들이 이 너무 온화하고 다정한 사람들인 거야. 그래서 kick, hit, suicide 같은 단어를 안 좋아하는 거야. ㅋㅋㅋ 그래서 남들 겁나 세게 발로 ‘양동이를 걷어차!’ 할 때 ‘양동이를 지키자.’ 같은 의미가 된 거야. 무언가를 소망하고 우리의 삶을 소중히 여기며 잘 살아보자. 그런 뜻이 된 거지. 물론 이건 우리가 정한 제목에 대한 나의 해석이고, 우리 편집장이 해설을 어떻게 덧붙일진 기다려봐야 해. 일단 각자 분량의 글을 넘겼어. 이제부턴 편집장의 능력이지… 말기암환자인 나의 버킷리스트가 궁금하거나 세계 각국 국제개발협력분야에서 일한 언니들의 버킷리스트가 궁금하다면 읽어봐. 참, 독립출판사의 책은 보통 200권 정도가 나오고 다시 안 나오는 경우가 많대. 그러니까 혹시 읽고 싶다면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 줘. 자세한 건 나중에 또 쓸게.


2021년 9월 2일

약속 아닌 약속이었던 약속을 지킨 척할  있어 좋은 , 오랜만에 자랑할게 있어 좋은 밍갱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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