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박함이란 없을 것 같던 말기암환자의 삶인데 뭐가 이렇게 위태로운 걸까. 또 다시 응급이란다.
0.1%도 감수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이것만은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것들. 머릿속으로 생각만 해도 입 밖에만 내도 동티가 날 것 같아서 꺼려하고 외면하는 일들. 상상할 수 없는 순간에 툭하고 일어난다. 마치 예상치 못한 단추가 떨어지는 것처럼.
그간 의사 선생님께 드린 “이 정도까지의 고통이면 제가 어떻게든 약으로 컨트롤해 볼게요…” 말이 입술에서 쏙 들어갔다. 컨트롤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이제 마음대로 움직이지도 못한다구요…?” 그녀가 긴 침묵 끝에 입을 떼었다.
하반신 마비 증상이 찾아왔다. 아침에 눈을 떴는데,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었다. 근데 그게 기분이 아니었던 것. 여기저기 전이되어있는 암중에 어떤 녀석들이 커져서 척추를 눌러서 그렇게 된 것이다.
더 이상 물을 말이 없는 그녀가 진료실을 나섰다. 진료실 앞 의자에 둘러싸여 갑자기 어 엉엉 어… 알 수 없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그간 보이지 않게 숨겨져 있던 울음이 터져 나온 듯했다. 물론 ‘니가 울면 진료실 앞의 다른 환자들은 어떻게 해… 다들 너무 힘들 텐데…’라고 생각했으리라. 한데 이번만큼은 더 이상 사람들의 감정을 생각할 겨를이 없는 듯이 중얼거리는 것도 같다.
매일 조금이라도 걷는 것으로 꾸역꾸역 버텨내고 있던 말기암환자 라이프. 사람마다 스스로에게 삶과 죽음을 설명하는 어떤 기준 같은 게 있을 것이다. 그녀에겐 ‘일상적인 생활을 스스로 할 수 있음과 없음’이 바로 그것이 아니었을까. 한데 보고 있는 사람마저 말문 막히게. 그녀의 삶엔 도대체 왜 이런 일들이 생기는 걸까? 왜 이렇게 끊임없이 고통스러워하는 걸까? 그녀의 표정에서 막막함과 먹먹함이 공존했다. 여전히 그녀는 이유를 모르고, 답도 역시 모를 것이다. 많은 이들이 그러하듯이.
사실 사람들은 그녀의 고통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말을 하든 말을 하지 않든 달라지는 건 없었으니. 다만 그녀가 글을 쓰기 시작한 걸 보면 아직 세상과 사람들을 짝사랑하고 있는 게 아닐까... 팔에 패치 주머니, 손등에 링거줄, 양팔에 출입용 팔찌 낙상 주의표 채혈 금지표 등등 많은 것들을 더덕더덕 붙이고 시간마다 검사와 진료과 주사와 통증 감소를 위한 치료를 받으러 가면서… 왜 이것을 시작한 걸까... 숨도 쉬기 버겁고 물도 자동 재충전이 되었으면 싶다고 생각하는 그녀인데... 하지만 죽는 마지막 그 순간까지 자신이 할 수 있는 몫을 최선을 다하기로 마음을 먹은 것 같았다. 사람들은 모두가 자신의 삶을 산다. 그녀 역시도 그저 오늘의 몫만큼 살아내려 마음먹은 것이다. 어떤 것들은 고통 속에서 더 분명하게 보이기 마련이다.
누군가는 아주 멋진 하루를 보내고 있고, 다른 누군가는 평범한 하루에 불평하고 있는데… 반면 나는 어떻게 맞이한 생일인데 또 응급이라는 것과 병원에서 추석을 보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데 시간이 한참 걸렸다. 당연하다. 하지만 불평불만은 적을수록 좋다. 그렇다고 내가 불평불만을 말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오해는 없었으면 한다. (엄마 아빠 미안하고 사랑해.)
명절에 불행한 사람들이 많다는 연구결과를 읽은 기억이 있다. 함께 맛있는 음식들을 먹으며 다정하고 따듯한 마음과 말을 전하는 추석이길 바란다. 특히 사랑을 많이 나눠주시길… 모든 것은 가까이 있을 때 정성을 다해 잘 가꾸어 지키는 게 좋은 듯. 나처럼 가족과 함께 있을 수 없는 사람들도 있으니 말이다. 모두들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Merry 한가위이시길…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