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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eegarden Sep 19. 2021

2. 나와바리 전쟁

입원한 지 삼일도 아니고, 세 시간 만에 이게 무슨 일이람…


마음이 고단하면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게 빠르게 흐를 때가 있다. 분명 저녁 7시인데 종일 하반신 마비에 대한 고민으로 깜깜한 밤 같다. 고단함을 들고 있기 어려워 어서 불을 끄고 잠들고 싶은데, 병원에는 점등 소등룰이라는 게 있기에 항상 등이 아픈 나는 왼쪽으로 살짝 돌아누웠다.(나중에 알고 보니 보통 저녁 8시 30분만 되어도 전체등은 끈다고 한다.) 돌아누운 내 눈과 딱 마주치는 저 불 빛. 이 순간은 저것만 없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물론 소등시간이 되면 꺼지겠지만, 바로 ‘녹스’하고 외치고 싶었다.

사실 오른쪽으로 돌아누울까 생각도 했지만, 아까 짐을 정리하느라 벽을 등지고 있던 엄마의 남루한 뒷모습을 봐버렸다. 왼쪽이 낫겠다… 눈이 따갑더라도 그걸 참는 게 낫겠다 싶었다.


그렇게 자다 깨다 자다 깨다 3시간 30분쯤 지났다. 불이 안 꺼진다. 이상하다. 그래도 아픈 자는 기력이 없으니 별말 없이 누워있을 따름이다.

옆에 있는 할머니의 간병인인 여동생이 목소리를 세우며 자기들은 전체 등을 끌 수도 병실을 옮기거나 간호사실에서 잘 수 없다고 했다.

고통에 잠 못 드는 날카로운 짐승인 지원. 인내를 살짝 모아 무슨 소린지 귀 기울인다.

아… 내가 잠 못 드는 걸 눈치챈 엄마가 간호사에게 가서 밤 열 시가 넘었으니 불을 꺼달라고 했는데, 그쪽에서 그럴 수 없다고 한 것 같다. 간호사는 개인 등만 켜 두시거나 다른 병실로 이동해주시거나, 불이 환한 간호사실에서 주무시는 게 어떻겠냐고 여러 번 말했다는데… 다른 환자들을 다 깨워가며 항변을 하는 거다. 병실의 창가 쪽에 좋은 자리에 위치한 터라 더 목소리를 높이는 듯도 했다. 그래… 어딜 가나 구역이라는 게 있지. 살면서 수없이 봐온 영역 싸움. 그건 그렇지만…

지원은 “밤이면 소등하는 게 병원의 룰인데… 왜? “라고 생각했지만, 뭐 어떻게든 되겠지 생각했다. 원래 환자는 하나부터 열까지 다 귀찮게 마련이다.


한데 옆 간병인의 목소리가 계속 커진다.

‘내가 미국에서 살다 와서 그러는데, 한국에서는 환자를 이런 식으로 대하냐’고 간호사에게 따져 묻고 있었다.

게다가 배려가 없다고 하는데, 우리 엄마한테 하는 소리인 것 같아서 당황스러웠다. 배려라면 이 세상에서 손에 꼽힐 우리 엄마가…? 에이… 그럴 리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엄마에게 ‘아줌마라고 호칭하며 ‘환자가 최고이지 않냐 묻는  사람의  때문이었다. ‘나도 환자인데내가 여태까지 참고 배려한  뭐였을까’. 그리고 우리 엄마는 댁보고 꼬박꼬박 선생님이라고 하는데 아줌마라니? 하는 표정으로 침대에 등을 세워 앉았다.

계속 꿀먹은 벙어리 환자였던 지원이 일어날  생각지 못했던  사람은 지원의 차가운 논리 앞에 당황하며 간호사 앞에서 있지도 않았던 일들, 앞뒤가 맞지 않는 말들을 늘어놓았다.


지원이 우여곡절 끝에 자리에 다시 누우며 눈을 감은 ,   한마디 때문이었다. “불을 끄면 할머니가 잠을  .”

죽음을 마주하고 있는 자에게 어둠은  도전임에 틀림없고,  할머니가 불을 끄고 잠들  없다면  마음도 편히 잠들기 어려울  같았다. 그래서 그냥 불을 켜고 자겠다고 한 것이다.


하지만 이내 후회했다. 밤새 한숨도 잘 수 없었기 때문에… 원래 통증에 찌든 환자들의 판단이란 게 그렇게 갈대 같게 마련. ‘나는 앞으로 잘해나갈 수 있을까…?’ 아침이 오고 휴대폰이 나도 모르게 스스륵 툭하고 떨어지면서 한 마지막 생각이었던 듯하다.


눈을 떴는데, 지원 엄마가 짐을 싸느라 분주하다. “엄마 갑자기 ?” 원래 병실을 옮겨주는  안되는 거지만 특별히 배려하기로 했단다. 4인실에서 5인실로 좁아졌지만 병실의 창가 쪽으로 바꼈다. 직접 가보니 햇볕도  들어오고, 보호자 침대도 협소하지 않고, 공기도 쾌적하고 전망도 좋다. 간호사의 잘못도 아닌데 연신 내게 미안하다고 하셨다. 그렇게 여차저차 한동안 나의 나와바리일 곳에 자리 잡게 되었다. 이런걸 전화위복이라고 말할  있을까…?




아래 사진은 올케가 보내준 동영상에서 캡처한 우리 집 꼬맹이 뒷모습이다. 잠자리가 잡히지 않는다며 아주 상심하고 있는데, 잠자리는 나의 뚠띠 뒤통수에 꼭 달라붙어 있었다. 뒤에서 살며시 다가가서 무릎 꿇고 꼬옥 안아주고 싶다. 보드라운 저 아이의 볼에 내 볼을 비비며 향기를 맡고 싶다. 그러다 문득 내게 신이 저렇게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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