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I(자기 공명 영상)란 자석으로 구성된 장치에서 인체에 고주파를 쏘아 신체부위에 있는 수소 원자핵을 공명 시켜 각 조직에서 나오는 신호의 차이를 디지털 정보로 변환하여 영상화하는 것을 알려져 있다. 복잡해 보이지만 다른 검사들에 비해 환자에게 해가 크지 않다는 것이 장점이다.
하지만 인체에 무해하다고 해서 검사가 힘들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경험에 의하자면 엄청난 전투기 소리를 듣고 있어야 하고, 자석에서 발생하는 더위를 감당해야 하고, 암환자의 가장 심각한 문제 중 하나인 구역감을 누워서 견뎌내야 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검사가 그러하듯이 가능하면 움직임 없이. 보통 15분부터인데 나는 척추의 어느 부위에 암이 얼마만큼 침범했는지 얼마나 치료가 가능한지 꼼꼼하게 확인을 해야 한다.
시작하기 전 선생님께서 “1시간, 힘들 거예요”라고 하셨다. 그런 주의를 감사히 여긴다. 매사 준비하지 못한 건 더 두렵기 마련이니까. 사실 건강한 사람들에겐 정말 별것 아닐 수 있을 것 같다. 건강하지 않을수록 힘든 거다. 몸이 견디기 어려운 상태, 참기 어려운 순간들을 견디라는 미션.
‘혹시… 중간에 이 빨간 버튼을 누르면 어떻게 되는 건가요?’
‘오늘껀 취소되는 거예요. 그럼 다음에 처음부터 다시 하셔야 한다는 거예요.’ 그렇다면 오늘의 포기는 최악의 선택이다. 잘해보자 밍갱.
어떻게 잘 해낼 수 있을까... 눈을 감아보니 <이번 생은 처음이라>라는 드라마가 떠올랐다. 사회 혹은 개인들의 어떤 문제들에 관한 작가만의 색다른 제안을 건넨 드라마로 내게 남았다. 물론 대부분의 드라마나 영화가 그러하듯 클리셰 부분들도 있었지만, 우리 인생에 클리셰가 없는 경우가 있던가…
이 드라마를 좋아한 이유야 여러 개지만, 특히 지호 엄마가 툭툭 던지는 msg가 좋았다. 지방에서 작가라는 꿈 하나만 믿고 서울로 상경하게 된 지호. 이런 지호에게 엄마는 사투리로 지혜의 말을 건넸었다. “우리 삶의 힘든 순간들을 견뎌내기 위해선, 평소에 내 별 주머니에 행복한 순간들을 많이 모아둬야 해…” 난생처음 들어보는 이야기였던 것 같다.
헬리콥터에 탑승할 때 쓰는 커다란 까만 귀마개를 끼워 주실 때, 눈을 감고 내 인생의 아름다운 순간들을 꺼내 봐야겠다 마음먹었다.
두두두 두두두ㅡ 시작이다. 자… 이제 내 별 주머니를 열어볼까?
우선 어린 시절로 가보자. 엄마…? 아빠…? 한데 떠오르는 게 별로 없었다. 밥을 먹고살기 위해, 삶을 살아 내기에 우리 가족들은 너무 바빴다. 분명 있었을 텐데 바삐 지나쳐가느라 미처 담지 못한 듯한 내 별들… 주머니에 담긴 게 별로 없었다. 어떤 소중한 별들은 어린이의 속도에 맞춰 주머니에 담길 시간도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게… 자라는 동안 나는 ‘빨리’라는 단어를 참 싫어했던 것 같다.
결국 내가 선택했던 아름다웠던 연애의 순간들과 추억들로 한 시간을 채웠다. 벅차게 반짝이던 아름다웠던 순간들… 내게 사랑이 시작된 순간들, 사랑한 순간들을 알록달록 연등처럼 하나씩 밝혔다. 사랑의 대상 그 자체만으로도 안식이자 위안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런 아름다운 기억들이 아직 내 세포 속에 오롯이 살아있음에 감사했다.
“너무 잘하고 계세요. 이제 10분밖에 안 남았어요.”
검사를 마쳤더니 내 안의 기력이 바닥났고 기계에서 휠체어에 내려올 힘도 남아있지 않았다. 땀을 너무 많이 흘렸고 바로 수분의 재흡수를 촉진하는 바소프레신 링거 주사를 맞아야 했다. 만약 내게 행복했던 순간의 상상이 없었다면… 꽤나 시끄럽고 외로웠던 그 시간을 버틸 수 있었을까? 사람들은 MRI 시간 동안 어떤 기억을 떠올리고 있을까…? 당신 곁에 앉아 별 주머니를 함께 구경하고픈 밤이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