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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eegarden Sep 25. 2021

5. 방사선종양학과 시뮬레이션

-와… 이분 왜 이렇게 쨍하게 잘생긴 걸까…?


지원은 늘 잘생긴 사람들과 인연이 많았다. 이럴 때도 대박 심쿵하게 잘생긴 선생님이 앞에 ‘뙇’ 서계신다. 사실 이 병원은 아침마다 마주하게 되는 머리에 떡지고 게슴프레 눈뜬 인턴 선생님, 최소 두 시간마다 고개만 돌리면 만날 수 있는 간호 선생님마저 미남 미녀 일색이다. 얼굴 보고 뽑는 건가… 혹시 환자도 얼굴 보고…? 그래서 나도 얼굴로 뽑힌 환잔가 ㅋㅋㅋ 이 병원이 특별히 그러한 건지, 아니면 누군가를 돕는 사람들의 영혼이 그렇게 보이는 건지는 지원도 확신이 없다. 이제 사람에 대한 것들이 잘생긴 못생김 경계로 보단 맑고 깨끗함 어두움 탁함의 느낌으로 다가온다.


생각보다 병원 라이프는 다이내믹하다. 제발 조금만 조절할 수 있다면, 몸만 가눌 수 있으면 들려줘야지 하는 이야기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직 지원에겐 상황도 능력도 역부족이다. 하지만 매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어서 꼭 들려줘야 할 것 같은 새로운 이야기들이 쏟아진다. 만약 아라비안 나이트의 주인공이 지원이었다면 40일보다 더 긴 밤을 넘길 수 있지 않았을까…


여튼 방사선종양학과라… 여긴 또 어디?

처음 암이 생겼을 때, 단호하게 강력하게 암 근처의 대부분을 절제했기 때문에 방사선을 통해서 자신의 세포를 죽이는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재발 전이의 경우는 퍼진 영역이 많아 아예 방사선 치료를 고려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하반신 마비 증상을 조절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지원은 방사선 치료를 받아야 하는 거다. 처절하게 삶이 끝나가는 와중에도 선택하라 놓인 선택할 수밖에 없는 선택의 연속. 거 쫌 쿨하게 끝나면 안 되나?


-모자랑 마스크 벗으세요.


처음엔 머그샷을 찍어야 한다. 디카로 민낯의 얼굴을 찍는데 부끄러웠다. 사실 코로나 시대라서 얼굴을 보일 일은 첫 머그샷을 제외하고는 별로 없다. 혹시 다른 사람과 바뀔 것을 우려해 처음에 한 번만 남긴다고 한다. 한데 잘생긴 선생님 앞의 마스크 탈의는 정말 난감하다.


이후 상의를 탈의했는데, 문득 어떤 수치스러움이 밀려왔다. 분명 10분 전 담당 교수님께 어떤 과정을 거칠 건지에 대해 친절히 설명을 잘 들었고, 울지 않을 거라 자신했는데… 자신도 모르게 차갑게 누운 방사선 기계 위에서 눈꼬리를 따라 옆으로 아주 눈치없게 눈물이 주르륵주르륵 흘러내렸다. 아무도 지원에게 모욕적으로 대한 적이 없는데, 너무 모욕적인 기분. 교수님, 아니에요. 그런 거 아니에요. 말하지 못했다. 그저 서글픔이 목을 움켜쥐고, 숨도 못 쉬게 꽉 막히게 했다. 그리고 체액이 정신을 못차리고 저만 살자고… 이렇게 생판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벌거벗게 될 줄 몰랐다. 한낱 정육점에 걸린 고기가 된 것 같단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조금은 더 구체적으로 생각했다. 한 사회가 여성에게 남몰래 준 룰 아래 지원은 순종적으로 살았다. 아름다운 여성으로 자라는 내내 빨리 몸을 가리고 숨기는 게 더 자연스럽던 분위기가 왠지 그녀에게 새빨간 거짓말을 해온 느낌이었던 거다. 배신감.



다음엔 몸에 매직 같은 걸로 그림을 그리고 지표가 되는 코일 같은 걸 붙인다. 원래 좋아하는 보라색이라며 받아들여 버렸다. 심리상담자로 활동하며 컬러 테러피까지 배운 여자 지원이니까. 참, 지표가 틀리면 곤란하다. 몸 피부 위 곳곳에 그려진 곳에 방사선을 정확하게 쏴야 치료 효과가 나타날 확률이 높으니까. 방사선으로 몸안의 세포를 죽이는데, 건강한 세포를 죽이면 어떻게 한단 말인가… 부디 꼭 죽어야 할 세포들만 사멸해주기를 조심조심 숨 쉴 때도 조심조심 기도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오늘은 여기까지라고 하셨다.


방사선 기계 위에서 깡마른 지원을 내려주신 선생님. 쨍하게 잘생긴 선생님이 한쪽 무릎을 꿇고 휠체어 앞에 앉아 눈을 맞추고 눈으로 ‘괜찮다’고 했다. ‘그냥 다 그런 거라고… ‘ 지원도 선생님 말을 알아들었다는 듯이 입 주위 근육에 힘을 살짝 주며 여러 의미를 품은 고개 까딱을 했다. 촬영실 안에서 촬영실 밖으로 그리고 방사선종양학과 큰 문까지 약 20미터를 놀이기구를 타듯이 밀어주셨다. 7초 정도. 휠체어가 아닌 롤러코스터를 탄 듯 너무 재밌었다. 키득키득. 성격 급한 사람들의 휠체어 푸싱의 맛. 성격 급한 사람들 좋아.


두통, 메스꺼움, 구토, 피로감, 식욕부진, 피부 가려움, 벗겨지거나 거무스르해질 수 있음. 또 골수에 영향으로 백혈구 혈소판 수치 등이 떨어질 수 있음 등의 부작용을 덧붙여 알려주셨다. 매일 듣는 부작용, 매일 경험하는 것들이 많아 특별함이 없어 시시하다.


앞으로 치료를 받는 동안은 거품 비누 샤워하고 싶어도 하면 안 된다. 혹시 피부에 꼼꼼히 기입해둔 정보들이 지워지면 큰일이기 때문이다. 여태까지 힘겹게 받은 치료가 도루묵이 될 수 있고,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할 위험도 있다. 그저 눈을 감고 상상해본다. 아름다운 나의 몸. 샤워를 한 개운한 상상. 아… 따듯한 물에 개운하게 샤워하고 싶다… 사람들은 자신이 지금 이 순간에도 벌떡 일어나 사랑으로 충만한 샤워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는 걸까?






늘 함께 있어서 고마운지 모르고, 아름다운 줄 모르는 나의 몸. 내 보드라운 살갗을 만져주고 칭찬해줬으면 하는 날이었다. 분명 아름다웠음에도 스스로 몸이 예쁘다고 뽐내거나 자랑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별것 아니게 보이는 그런 게 이제는 후회가 된다. 있는 그대로의 내가, 자유롭게 발가벗은 내 몸이 얼마나 사랑스럽고 예쁜지 춤이라도 춰봤으면 좋았을 걸…


병상에 누운  손목의  향기를  맡아본다. 혹시 잠시라도  존재의 근원에  닿을  있을까 생각해보며오늘 엄마가 샤워할 때는,  걱정하느라 쫓기는  대충대충 비누칠을 하지 않고 꼼꼼하게 향이 좋은 퍼프로 충분히 거품을 냈으면 좋겠다. 자신의 피부도 살보작살보작 어린 아기 볼때기 만지듯이 정성을 다하듯 했으면 좋겠다. 그게 지금 진심으로 내가 당신에게 바라는 바다. 남녀노소 관계없이  몸은 아름답고 사랑스럽고 소중한 .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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