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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eegarden Sep 27. 2021

7.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밤이었다.

병원은 병실은 끊임없이 어제 오늘 내일 다른 사람들이 만나서 하나의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한다. 누군가 입원이라는 걸 하고 퇴원이라는 걸 하면서.


거짓말같이 느껴지지만 이건 정말이지 하루 밤새 일어난 일이다. 지원과 같은 병실에 있던 할머니가 순간 치매 증상을 보여 다른 병실에 격리되었고, 그 사이 한 환자는 자살미수로 입원했다. 실려온 환자는 살았는데 같은 시간 병원 옆 작은 공원에서 한 40대 남자가 목을 매어 생을 마감했다. 의사 선생님께 자신은 정말 괜찮다며 손사래 치며 폐렴으로 입원한 할머니는 여섯 시간 만에 눈물이 멈추지 않는 당혹스러운 중풍 할머니가 되어 버렸고. 폐암 할아버지는 할아버지의 진정이 힘든 기침으로, 항암 할머니는 항암 할머니 대로 주사를 맞으며 통증으로 힘들었던 밤이었다.


병실 운명 공동체? 사실 공동체라는 단어를 떠올려보게 된 이유는… 하루에도 몇 번씩 우리의 살아있음을 확인해주는 삐삐삑 기계음 소리. 그리고 각자 자신이 얼마만큼 먹고 얼마만큼 내보내는지 통증을 포함한 많은 개인적인 것들을 항상 서로 듣고 있기 때문이다. 화장실의 가스 소리 마저도. 모른 척 듣고 있어도 환자들의 새벽은 왜 그렇게도 고통스러운지 가슴이 쓰라리게 애잔하다. 지원의 경우도 통증으로 거의 잠못 이루고 매일 새벽 5시의 브리핑은 빨간 눈을 한 토끼처럼 퀭하니 듣게 된다.


구역감 나는 가래 기침을 공유하는 공동체. 선을 긋고 외면 같은 걸 하고 싶어도 새벽에 들은 비명 소리에 어느새 마음 공동체가 되어 버리고 만다. 벌써 몇 준데 적응되지 않는 소리들… 가까이에서 고통의 민낯을 느끼고는 괜찮을까 걱정이 된다. 이미 미워할 수 없는 고통을 공유해버렸기에… 지원이 밥숟가락을 뜰 때마다 자신 안에 있는 힘껏 가래를 끌어올리는 아저씨와 공동체가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물론 밤새 잠 못 이루는 그녀의 뒤척임과 고통 신음 역시 함께 견디어 내는 것이다.


밤새도록 잠이 안 온다고 간호사에게 징징대는 민폐 아저씨. 금연해야 한다고 소리치던 지원과 반대편에서 당당하게 지독한 담배를 유유히 피워대던 아저씨와 왜 운명공동체가 되어야 하는가… 실로 짜증 난다. 그럼 안된다고 몇 번이나 말했냐고!!! 아무리 봐도 지원은 가해자가 아니고 피해자인 듯한데 왜 이런 운명을 공동으로 짊어져야 하나 싶기도 하고 손해 보는 느낌이 아주 여기저기 널려있다. 게다가 사람들은 지원의 삶에 전혀 관심이 없는듯한데, 왜 지원만 남들의 삶에 이렇게 목을 매는가 싶기도 하다.


근데 지금 아저씨 아프니까 봐주는 거다. 밤새도록 아픈 건 지원 그리고 아저씨만의 잘못은 아니니까. 솔직히 아저씨는 지독한 담배 탓이 좀 있는 거 같지만. 생각해보면 신은 지원에게 답할 것이 아주 많다. 지원은 이렇게 나름의 기록하며 하나하나 물으면서 그 답들을 기다리고 있다.


‘지원님~ 이거라도 먹어야 해요. 안 그럼 치료 이겨낼 수 없어요.’라는 진심이 담긴 천사의 말에 오후 다섯 시쯤 마른 뺨을 비벼 쓸어 올리며 정신을 차렸다. 한데 정신차리고 처음 들은 News가 누군가의 죽음이었다. 하룻밤. 이건 정말이지 0.1%로도 거짓이 없는 사실, 누군가 진짜 소설이 아니냐고 물을 것 같은 사실이다.


평소 자주 병원 옆 공원에 머무르던 한 70대 노인이 나무 곁에 계속 서있던 40대 남자를 한참을 바라봤단다. 그러다 사람이 죽은 것 같다고 119에 신고를 했다. 망자를 발견한 노인의 말에 의하면, 목을 매 죽은 그이는 조금만 떨어져서 보면 그저 나무를 계속 바라보고 서있는 것 같았다고 했다. 몸에 상처가 없이 깨끗하다고 했다. 왜… 발버둥 치지 않았을까… 아직 40대면 무언가를 더 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무슨 사연일까… 어떤 고민을 했을까… 추석이 고작 며칠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하지만 요즘 지원은 판단 평가 옳고 그름에 조금은 먼발치에 있으려 한다.


잘 때 코가 살짝 시린 걸 보면, 어제 갑자기 날씨가 쌀쌀해지긴 했다. 앞으로 추워질 날씨를 고민했을지도… 어쩌면 앞으로 있을 곳이 없어 당황했을지도… 누구도 그의 고민을 모른다. 그가 멀리 여행을 떠나기 전 영혼으로 잠시 지원에게 머물렀더라면 조금은 그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었을까? 아마 자신의 고통에 허덕이던 지원도 외면했으리라… 얼마나 오랫동안 나무를 바라보고 있었을까… 나무에게 무엇을 물었을까… 나무는 뭐라고 답했을까… 외로웠을 그의 역사가 그의 이야기가 미궁속에 사라진 밤이다.


평소엔 그저 평범한 밤이었고, 그저 가을 겨울이었는데, 어둠의 한가운데 홀로 서보니 너무 무서운 밤, 너무 추운 가을 겨울이다. 앞으로 세상은 어떻게 이런 영혼들을 지켜낼 수 있을까… 차라리 그 비정한 시간에 나는 잠들어 있었다고 모른 척 변명을 해볼까…


사람의 2미터 거리에서 자살을 시도한 자는 살았고, 사람의 3미터 거리에서 자살을 시도한 자는 죽었다.

그저 1미터…


이전까지 일면식 없던 자들의 고통들… 지원의 삶은 늘 저들과 먼데 있는 줄 알았다. 한데 지금 지원의 삶이 그들의 삶의 한가운데 서있다. 이상하게도 자꾸만 지원에게만 답을 재촉하는 것 같다. 쥐뿔 아무것도 아는 것도 가진 것도 없는데…


‘아유~ 내 쏙이 이상햐죽겄어~ 어떻게 좀 해봐! 나 좀 어떻게 해보라고!’ 먼데 간 영혼에 대한 관심은 어느새 신경질적인 말을 할 수 있는 할머니들에게로 옮겨간다. 자기 몸이 아픈데 다른 누군가에게 어떻게 해봐라 외치는 사람들.

 

결국 아침이 밝으면 그날의 승자는 가장 목소리가 큰 사람 혹은 그날 퇴원하는 사람이 된다. 항암 할머니가 이겼다. 할머니는 다음 항암을 위해 10월 19일에 다시 입원하신다며 유유히 떠나셨다. 욕을 글로 배운듯한 할머니는 어젯밤과 새벽 폐암으로 기침하는 할아버지에게 대놓고 시끄럽다고 한마디도 말하지 못하고 입안으로 밤새 쌍욕을 해댔다. 지원은 그저 오늘 밤도 잠들 수 없겠구나 했었다.


 ‘근데요 할머니… 사실은 할머니 잠들고는 코 고는 소리가 이 병실에서 제일 커요… ㅋㅋㅋ’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밤이었다.




엄마가 예전에는 자신과 자신의 가족만을 주로 생각하고 기도했는데, 즘 하는 기도가 점점 달라진다고 한다. 지구상의 수많은 고통받는 이들의 고통이 조금이라도 멈출  있길 눈물로 기도한다고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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