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freegarden Sep 29. 2021

8. 방사선 치료 1일 차/2일 차

“이건… 신의 손이다… 천사의 손이다….”


방사선 치료를 받기 위해 기계 위 올려진 지원은 눈을 감고 속으로 반복적으로 되뇌었다. 신을 잘 모르고, 천사를 잘 모르는 이도 아마 이런 순간이 오면 그러지 않을까…? 분명 이 손들이 지원을 치유하는 신의 손이고, 천사의 손이다.


한데 어느 순간 양쪽에서 라인을 맞추시던 두 선생님이 동시에 입 밖으로 “네, 그렇습니다.”라고 답했다. 헐…?! 담당 교수님과 이어폰으로 소통을 하신 건지, 아니면 좌우를 맞추던 두 분이 세팅이 다 되면 동시에 그렇게 말하도록 약속이 되어 있는지는 잘 모르지만, 모든 게 처음인 지원에게 타이밍이 너무 절묘해서 울컥했다.


혹 몸에 그어진 선에 약간의 잘못이 있다고 하더라도, 인간의 작은 착오들이 모여서 신이 의도한 완성이 되기를 기도드리며 누웠다. 이때 움직이지 않는 게 중요한데 숨이라도 멈출 수 있다면 그것마저 권할 것 같았다.


치료 후 입을 다물 힘도 없이 몇 시간을 침을 질질 흘리면서 잤다. ‘아아~ 아파요! 아이알코돈 주세요 선생님~ 어엉어’ 하면서 깨기 전까지.


원래 왼쪽 등의 고통이 매우 컸는데 치료 후 왼쪽 등 통증이 확산된 데다 왼쪽 갈비뼈와 팔과 손으로 옮겨간 고통이 너무 심했다. 사실 고통에 대해서 설명하기도 어려운 상태로 진통제가 안 들었다. 때론 메커니즘이라도 시원하게 알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이해가 되면 참기 더 나을까.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워서 침대 위를 뒹굴다가 도저히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공원으로 가자고 엄마를 재촉했다. 신께 도대체 저에게 왜 이러시냐고 통곡을 하며 꺼이꺼이 울었다. 그날 공원 근처에 있던 분들은 다 짐승 같았던 지원의 울부짖음을 들었으리라… 문득 우리에게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넉을 놓고 아이처럼 엉엉 울 공간이 많이 필요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벽이 찾아왔고, 엄마의 코 고는 소리가 지원의 귀를 맴돈다. 목이 멘다. 왜 나는 당신의 딸로 태어나 당신을 이렇게 아프게 하는가… 당신이 무슨 죄인가… 그저 미안하다. 이 걸 어떻게 다 갚을 수 있을까… 앞뒤옆 재지 않고 이 모든 게 마치 엄마 잘못인양 크게 목놓아 울었던 게 떠올랐다. 누군가의 책임으로 돌리면 조금은 편해지는 비겁함. 엄마한테 너무 미안했다. 이렇게 엄마를 아프게 할 것 같으면 몸에 있는 신경을 다 잘근잘근 끊어놓아 안 아프기만 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산이 부서지더라도 단 한 번에 죽을 수만 있다면… 하는 생각을 안 한다면 거짓말쟁이.


항상 준비하지 못한 순간이 닥치면 고통이 정신없이 휘몰아치는 것 같다. 방사선 치료 회차가 쌓이면서 하지마비 증상이 더욱 심해질 수 있다고 하신 것은 이해를 했는데, 통증이 그렇게 클 줄은 몰랐다. 뭐 알았다고 하더라도 걷기 위한 치료를 선택하지 않았을 리도 없지만.


나는 왜 이렇게 아파야 하는 걸까? 이렇게 아프면 뭘 얻을 수 있는 걸까? 인간의 바닥? 나의 바닥? 나의 바닥엔 뭐가 있는 걸까? 근데 나의 바닥을 보면 뭐가 달라질까? 여전히 진심으로 모르겠다.


그렇게 매일 치료를 받는다. 첫째 날 한번 운 것 때문인지 선생님은 세심하게 다른 천으로 몸 위를 덮어주시고 하신다. 사실 탈의를 하고 몸에 줄을 긋고 하는 과정에서 나의 현실을 볼 수 밖엔 없지만, 감사하게도 정서적 인도를 해주시는 것이다. 근데 며칠이 지나고 나니 선생님이 배려해주신다고 멀찌감치 떨어져 계신 게 더 불편하다. 그냥 가까이에서 도와주시면 좋겠다. 그리고 잘생긴 선생님 얼굴, 짙은 눈썹 한 번 더 보고 싶다. ㅋㅋㅋ 원래 한번 두 번이 어렵지, 세 번째부터는 별것 아니다.


방사선 치료 중간중간 다시 몸에 그어진 선을 보정할 때가 있다. 그땐 세계 천재 조각가, 미켈란젤로가 나의 몸에 그림을 그린다고 여긴다. 나는 또 하나의 신의 치유 예술 작품이 된다고. 천재인데다 잘생기기까지한 조각가를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마음속에 미소를 띄운다. 마음가짐을 잘 하려한다. 그리고 이젠 부끄럼 없이 곧잘 말한다. “선생님 못 일어나겠어요. 좀 잡아주세요.”라고. 매사 능동적인 인간이던 지원에게 이 모든 것이 낯설다. 도와달라니…


평생 죽음과 임사체험을 연구한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이렇게 말했다고.  세상에서 경험해야  것으로 계획한 모든 것을 경험해야 삶이 끝이 나는데, 도움을 받는  너무 어려운 사람도 결국 누군가의 도움을 진심으로 감사히 받아들일  있는 차원에 올라야 죽음에 이를  있다고... 아우 피곤한 말이다.


<방사선 치료 2일 차>


어젯밤에 한 번은 적당히, 한 번은 엉엉, 그리고 여러 번 숨죽여 울었다. 여전히 너무 아팠다.


치료를 하기 전, 치료를 하는 순간, 치료를 마치고서 늘 열심히 기도를 한다. 신의 손. 천사의 손. 부디 인간인 선생님의 실수가 있더라도 주님께서 바로 잡아주소서… 같은 기도다.


영성이 밝은 어떤 이들은 기도를 하면서 신과 직접 대면하기도 하고 그 대면을 통해서 계시를 받지만 나는 사람을 통해서 신의 존재를 만난다. 이부분에서 난 새끼 손가락 꼬리걸고 약속할 수 있다. 의료계 종사자분들께서 꼭 아셨으면 좋겠다. 환자들이 막 짜증을 내곤 해도, 당신의 손길은 그들에게 ‘신의 손길’이고 ‘천사의 손길’ 임을… 그저 눈앞의 고통과 체력 때문에 감사함을 표현할 여유가 없을 뿐이라는 것을…


오늘도  신의 ,  천사의 손은 다정하기 그지없이 나를 잡아주고, 안아주, 밀어주고, 인도하고, 이끌어주셨다. 만약 오늘 당신의 손이 다면 악착같이 살아보겠다고 이겨내 보겠다고 침을 질질 흘리며 잠든 나의 하루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글을 쓰는  순간도 오늘의 천사님은 폐암으로 호흡이 힘들어 가래를 빼내야 잠을   있는 아저씨를 여러  다독이며  번만  참으라고 애달래듯 하고 계신다. 아오아직 여기저기서 다양한 방법으로 담배 피우는 분들, 어떤 이유로든 좋으니 제발 담배  끊으라고요. 여기 아저씨는 아무리 떼어낼래도 떼어내지지 않는 가래 때문에 매일 새벽에 호통치며 고통스러워 하시네요. 지금 이 순간 담배를 끊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마세요. 진심으로 부탁합니다.




* 저처럼 방사선 치료를 하셔야 하시는 분들께.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저희 경우는 식도 부분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대요. 원래 메스꺼움 구역감이 있는데 치료 때문에 부어서 목과 식도에 이물감이 생기니까 더 음식을 못 먹게 되는 거죠. 일단 저는 부드러운 우유, 요구르트, 키위, 바나나, 밤, 동치미 육수, 이런 걸 먹어보고 있어요. 하지만 정직히 말하자면 빈속이었던 경우가 더 편하긴 했어요. 딜레마인 것 같아요. 자신의 방법을 찾는게 중요하겠죠? 미리미리 준비를 잘해주세요. 기운이 없으면 치료를 이겨내기 힘들어요. 우리 서로 응원해요. 사랑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7.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밤이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