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신의 손이다… 천사의 손이다….”
방사선 치료를 받기 위해 기계 위 올려진 지원은 눈을 감고 속으로 반복적으로 되뇌었다. 신을 잘 모르고, 천사를 잘 모르는 이도 아마 이런 순간이 오면 그러지 않을까…? 분명 이 손들이 지원을 치유하는 신의 손이고, 천사의 손이다.
한데 어느 순간 양쪽에서 라인을 맞추시던 두 선생님이 동시에 입 밖으로 “네, 그렇습니다.”라고 답했다. 헐…?! 담당 교수님과 이어폰으로 소통을 하신 건지, 아니면 좌우를 맞추던 두 분이 세팅이 다 되면 동시에 그렇게 말하도록 약속이 되어 있는지는 잘 모르지만, 모든 게 처음인 지원에게 타이밍이 너무 절묘해서 울컥했다.
혹 몸에 그어진 선에 약간의 잘못이 있다고 하더라도, 인간의 작은 착오들이 모여서 신이 의도한 완성이 되기를 기도드리며 누웠다. 이때 움직이지 않는 게 중요한데 숨이라도 멈출 수 있다면 그것마저 권할 것 같았다.
치료 후 입을 다물 힘도 없이 몇 시간을 침을 질질 흘리면서 잤다. ‘아아~ 아파요! 아이알코돈 주세요 선생님~ 어엉어’ 하면서 깨기 전까지.
원래 왼쪽 등의 고통이 매우 컸는데 치료 후 왼쪽 등 통증이 확산된 데다 왼쪽 갈비뼈와 팔과 손으로 옮겨간 고통이 너무 심했다. 사실 고통에 대해서 설명하기도 어려운 상태로 진통제가 안 들었다. 때론 메커니즘이라도 시원하게 알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이해가 되면 참기 더 나을까.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워서 침대 위를 뒹굴다가 도저히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공원으로 가자고 엄마를 재촉했다. 신께 도대체 저에게 왜 이러시냐고 통곡을 하며 꺼이꺼이 울었다. 그날 공원 근처에 있던 분들은 다 짐승 같았던 지원의 울부짖음을 들었으리라… 문득 우리에게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넉을 놓고 아이처럼 엉엉 울 공간이 많이 필요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벽이 찾아왔고, 엄마의 코 고는 소리가 지원의 귀를 맴돈다. 목이 멘다. 왜 나는 당신의 딸로 태어나 당신을 이렇게 아프게 하는가… 당신이 무슨 죄인가… 그저 미안하다. 이 걸 어떻게 다 갚을 수 있을까… 앞뒤옆 재지 않고 이 모든 게 마치 엄마 잘못인양 크게 목놓아 울었던 게 떠올랐다. 누군가의 책임으로 돌리면 조금은 편해지는 비겁함. 엄마한테 너무 미안했다. 이렇게 엄마를 아프게 할 것 같으면 몸에 있는 신경을 다 잘근잘근 끊어놓아 안 아프기만 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산이 부서지더라도 단 한 번에 죽을 수만 있다면… 하는 생각을 안 한다면 거짓말쟁이.
항상 준비하지 못한 순간이 닥치면 고통이 정신없이 휘몰아치는 것 같다. 방사선 치료 회차가 쌓이면서 하지마비 증상이 더욱 심해질 수 있다고 하신 것은 이해를 했는데, 통증이 그렇게 클 줄은 몰랐다. 뭐 알았다고 하더라도 걷기 위한 치료를 선택하지 않았을 리도 없지만.
나는 왜 이렇게 아파야 하는 걸까? 이렇게 아프면 뭘 얻을 수 있는 걸까? 인간의 바닥? 나의 바닥? 나의 바닥엔 뭐가 있는 걸까? 근데 나의 바닥을 보면 뭐가 달라질까? 여전히 진심으로 모르겠다.
그렇게 매일 치료를 받는다. 첫째 날 한번 운 것 때문인지 선생님은 세심하게 다른 천으로 몸 위를 덮어주시고 하신다. 사실 탈의를 하고 몸에 줄을 긋고 하는 과정에서 나의 현실을 볼 수 밖엔 없지만, 감사하게도 정서적 인도를 해주시는 것이다. 근데 며칠이 지나고 나니 선생님이 배려해주신다고 멀찌감치 떨어져 계신 게 더 불편하다. 그냥 가까이에서 도와주시면 좋겠다. 그리고 잘생긴 선생님 얼굴, 짙은 눈썹 한 번 더 보고 싶다. ㅋㅋㅋ 원래 한번 두 번이 어렵지, 세 번째부터는 별것 아니다.
방사선 치료 중간중간 다시 몸에 그어진 선을 보정할 때가 있다. 그땐 세계 천재 조각가, 미켈란젤로가 나의 몸에 그림을 그린다고 여긴다. 나는 또 하나의 신의 치유 예술 작품이 된다고. 천재인데다 잘생기기까지한 조각가를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마음속에 미소를 띄운다. 마음가짐을 잘 하려한다. 그리고 이젠 부끄럼 없이 곧잘 말한다. “선생님 못 일어나겠어요. 좀 잡아주세요.”라고. 매사 능동적인 인간이던 지원에게 이 모든 것이 낯설다. 도와달라니…
평생 죽음과 임사체험을 연구한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이렇게 말했다고. 이 세상에서 경험해야 할 것으로 계획한 모든 것을 경험해야 삶이 끝이 나는데, 도움을 받는 게 너무 어려운 사람도 결국 누군가의 도움을 진심으로 감사히 받아들일 수 있는 차원에 올라야 죽음에 이를 수 있다고... 아우 피곤한 말이다.
<방사선 치료 2일 차>
어젯밤에 한 번은 적당히, 한 번은 엉엉, 그리고 여러 번 숨죽여 울었다. 여전히 너무 아팠다.
치료를 하기 전, 치료를 하는 순간, 치료를 마치고서 늘 열심히 기도를 한다. 신의 손. 천사의 손. 부디 인간인 선생님의 실수가 있더라도 주님께서 바로 잡아주소서… 같은 기도다.
영성이 밝은 어떤 이들은 기도를 하면서 신과 직접 대면하기도 하고 그 대면을 통해서 계시를 받지만 나는 사람을 통해서 신의 존재를 만난다. 이부분에서 난 새끼 손가락 꼬리걸고 약속할 수 있다. 의료계 종사자분들께서 꼭 아셨으면 좋겠다. 환자들이 막 짜증을 내곤 해도, 당신의 손길은 그들에게 ‘신의 손길’이고 ‘천사의 손길’ 임을… 그저 눈앞의 고통과 체력 때문에 감사함을 표현할 여유가 없을 뿐이라는 것을…
오늘도 내 신의 손, 내 천사의 손은 다정하기 그지없이 나를 잡아주고, 안아주고, 밀어주고, 인도하고, 이끌어주셨다. 만약 오늘 당신의 손이 없었다면 악착같이 살아보겠다고 이겨내 보겠다고 침을 질질 흘리며 잠든 나의 하루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 글을 쓰는 이 순간도 오늘의 천사님은 폐암으로 호흡이 힘들어 가래를 빼내야 잠을 잘 수 있는 아저씨를 여러 번 다독이며 한 번만 더 참으라고 애달래듯 하고 계신다. 아오… 아직 여기저기서 다양한 방법으로 담배 피우는 분들, 어떤 이유로든 좋으니 제발 담배 좀 끊으라고요. 여기 아저씨는 아무리 떼어낼래도 떼어내지지 않는 가래 때문에 매일 새벽에 호통치며 고통스러워 하시네요. 지금 이 순간 담배를 끊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마세요. 진심으로 부탁합니다.
* 저처럼 방사선 치료를 하셔야 하시는 분들께.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저희 경우는 식도 부분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대요. 원래 메스꺼움 구역감이 있는데 치료 때문에 부어서 목과 식도에 이물감이 생기니까 더 음식을 못 먹게 되는 거죠. 일단 저는 부드러운 우유, 요구르트, 키위, 바나나, 밤, 동치미 육수, 이런 걸 먹어보고 있어요. 하지만 정직히 말하자면 빈속이었던 경우가 더 편하긴 했어요. 딜레마인 것 같아요. 자신의 방법을 찾는게 중요하겠죠? 미리미리 준비를 잘해주세요. 기운이 없으면 치료를 이겨내기 힘들어요. 우리 서로 응원해요.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