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처음엔 순진하게도 내게 기적이 일어날 줄 알았던 것 같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나니까. 나는 내가 복이 아주 많은 사람인 걸 안다. 지금만 봐도 내 글을 읽어주는 귀한 독자분들도 많고, 나를 위해 기도해주는 분들도 얼마나 많은가를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2020년 6월에 4개월이라는 시간을 받았으니 지금까지 살고 있는 것도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기도 덕분인걸…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나를 응원하는 분들을 위해서라도, 너무나도 간절히 무언가 바꿔볼 수 있다면 바꾸고 싶었다.
한데 인생은 예상을 할 수 없기에 인생이라 한댔다. 먼저 말기암환자가 되었을 때 나는 그게 내 인생의 바닥인 줄 알았다. 슬퍼했다. 신을 원망했다. 한데 바닥이 아니었다. 걸을 수 없는 말기암환자가 되었다. 역시 그땐 그게 바닥인 줄 알았다. 거기에 일상생활을 거의 영위할 수 없는 걸을 수 없는 말기암환자가 되었고, 결국 숨이 잘 안 쉬어지는 일상생활을 거의 영위할 수 없는 잘 걸을 수 없는 말기암환자가 되었다. 여기까지 오는 내내 기적이 일어날 거라 생각하지 않았을까… 아니 기적까지 바라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아파도 아픈 채로 계속 글을 쓸 수 있을 줄 알았다. 내 생의 끝자락에서 간신히 잡은 것이었으니까…
열과 성을 다해 글을 쓸 수 없게 된 나는, 하고 싶은 것 리스트를 써보았다.
1. 자유자재로 씻고 싶다.
2. 걱정 없이 맛있는 것들을 잔뜩 먹고 싶다.
3. 자유롭게 걷고 달리고 싶다.
4. 음악을 듣고 싶다.
…… 등이었다.
하고 싶은 것들이 너무 사소한 것들이라 눈물이 났다. 사소한 것, 일상의 소중함,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것의 감사함에 대해서 까맣게 잊고 살았던 나. 뭐든 더 잘하고 싶었던, 더 잘할 수 있는데만 집중하던 내가 생각이 났다. 별로 쓸데없는 거였는데 말이다.
그래서 다시 산다면…이라는 글을 써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을 다시 산다면…
1. 온전히 나만의 위한 시간을 따로 떼어두겠다. 누구보다 내가 가장 소중하니까.
2. 나 자신에게 솔직할 것이다. 유치하다 바보 같다 싶어도 내 안의 목소리를 외면하지 않겠다.
3. 나를 웃게 하는 사람을 절대 놓치지 않겠다. 더욱 수줍음 없이 열렬히 사랑하겠다.
4. 아름다운 순간들. 누릴 수 있는 순간들을 주변 눈치 보지 않고 충분히 누리겠다.
5. 나를 흔들리게 할 정도로 부정적인 에너지를 건네는 사람들을 거침없이 피하겠다.
6. 좀 더 예쁜 말로 관계를 만들어가겠다. 어리석게도 똑부러지게 말하는 게 잘하는 건 줄 알고 살았다.
7. 사랑하는 사람들과 음식을 함께 만들고 먹는 시간을 충분히 갖겠다. 더불어 좋은 음식, 건강한 음식을 먹겠다.
8. 경제적인 부분을 등한시하지 않겠다. 돈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거라고 나를 속였던 어른들이 밉다. 공부하고 준비하겠다.
9. 더 열심히 다른 이들을 돕겠다. 그러지 않으면 삶에 무슨 의미가 남을까…
10.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많이 갖겠다. 조카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겠다. 사랑을 더 많이 표현하겠다.
물론 어떻게 살아도 후회라는 게 남는 거란 걸 안다. 내 삶을 사랑했다. 순간순간 그때는 그게 최선이었다는 것도 안다. 그런데… 자꾸만 지혜롭게 좀 더 잘할 순 없었을까 싶다. 이 성격은 죽을 때까지 안 바뀌는 건가 보다. 저보단 지혜로우시리라 믿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