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장(아르바이트생들을 관리하는 직원 개념)이 보면 어쩌나 싶지만 그런 일을 일어나지 않는다.
물류창고는 크고 사람은 많다. 어디서 누가 무엇을 하든 ‘일’만 하고 있으면 된다.
내가 쌓아놓은 상자가 일정한 간격을 자랑한다. 왠지 모를 뿌듯함이 있다. 그것도 잠시다. 여러 명이 하는 일이다 보니, 그 가지런함은 유지되지 못한다. 사실 어떤 형태이든 중요하지 않다. 만들기가 무섭게 소모되는 상자들의 멋진 쌓아 올림을 뽐낼 시간은 없다.
억울함을 토로하자면, 타이밍에 문제가 있다. 다른 사람이 잘못한 것을 내가 발견을 했다. 나의 꼼꼼함이 발현된 순간이다. 하지만 그 순간은 지나갔고, 그것을 수습하고 있을 때 반장이 보면 내가 한 일처럼 된다. 손을 번쩍 들고 말하고 싶다. "이건 제가 한 것이 아닌데요!!"
하루 중 딱 한 번의 실수에 지적을 당하기도 한다. 테이프를 엉망으로 붙이든 상자를 파손시키든 보는 사람(반장)이 없으면 끝나는 일인 것을, “하필” 나는 피해 가지 못할 때가 있다.
처음 며칠은 일을 잘한다는 소리를 듣고 싶었다. 이 창고 안에서도 요직을 맡고 싶었다. 요령 없이 열심히 했다. 테이프 사용이 거슬리면 장갑을 벗고 하기도 했다. 손이 상하고 거칠어지는 것도 불사했다. 조금 천천히 해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 곳에서 나는 혼자 얼굴에 열까지 올려가며 일을 했다.
시급은 한 시간에 대한 값이다.
지금 여기서 일을 하고 있는 우리에겐 한 시간이 지나면 같은 금액이 지급된다.
박스 100개를 만드는 사람이나, 50개를 만드는 사람이나 같다는 뜻이다.
나는 일을 잘하고 싶고, 인정을 받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꼭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가진 시간이 제일 값어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처음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그랬다. 불행히도 최선에 좋은 결과가 반드시 따라오는 세트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매번 어디서나 최선을 다 할 필요는 없음을 살면서 깨닫는 중이다. 지금의 깨달음과 인정이 달갑지만은 않다. 열심히 하는 것이 무조건 좋은 것인 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