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국DPT Jun 09. 2024

미치도록 외로우면 영어가 는다.

한없이 작고 외로웠던 미국 유학이야기 01

2006년 처음 산호세를 갔을 때 많은 어른들이 "너는 유학도 늦게 왔으니, 한국 애들이랑 어울리지 마. 영어 배워야 하니까"라는 말을 서슴없이 했다. 다행이었을까, 11학년부터 다녔던 써니베일에 위치한 Christian high school에는 유학생은 그해 나뿐이었다. 


영어를 못하는 상태에서 미국 친구들과 11학년 정규 과목들을 ESL 없이 듣는 건 당연 쉽지 않았고, 그보다 더 힘들었던 건 친구를 사귀고 어울리는 것이었다. 나를 항상 반겨주고 인사해주는 친구들은 분명 있었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부족했던 영어로 인해 그 고마웠던 친구들에게도 가까이 다가갈 용기와 자신감이 부족했던 것 같다. 


미국 고등학교는 또 어찌나 일찍 끝나던지, 집에 오면 3시였다. 어딜 가려면 라이드가 필요했거나 엄청 걸어야 했는데, 라이드를 부탁하는 것도 어린 나이에 눈치가 정말 많이 보였다. 그러다 보니, 나는 자연스레 점점 고립되어 갔고, 외로움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일상의 나날들을 보냈다.


하지만, 그 고독했던 외로움을 순간순간 가려주는 소중한 인연이 있었다. 당시 나를 보살펴줬던 홈스테이 페밀리에는 94세의 Irish 할머니가 계셨는데, 할머니도 바로 전년도에 뉴욕에서 이사 오셔서 여기서의 생활이 많이 적적해 보이셨고 항상 나처럼 혼자셨다. 그러다 보니 집에 오면 할머니와 단둘이 있는 시간이 많았다.

 

지금까지도 아주 생생하게 기억나는데, 처음엔 진짜 할머니 말이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그래도 사람 곁에 머무르고 싶었을까, 들리지 않는 영어도 그저 미소로 답하며 할머니의 이야기를 옆에서 듣는 날들이 많아졌고, 나는 학교가 끝나면 자연스레 할머니부터 찾게 되었다. 그렇게 두 달쯤 지났을까, 할머니 말에 이렇게 저렇게 반응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고, 할머니의 영어에 익숙해져가는 나를 볼 수 있었다.


그 당시 할머니는 항상 교회에 가면 사람들에게 나를 "Puppy"라고 표현하셨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그 말이 딱 맞았던 것 같다. 그만큼 그때 할머니는 나의 외로운 유학 생활에서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분이셨다.


11학년을 마치고 그 홈스테이를 떠나면서 가장 아쉽고 슬펐던 건, 할머니를 더 이상 뵐 수 없다는 것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때의 나는 미치도록 외로웠고, 그 외로웠던 순간들 속에서 다행히도 할머니가 계셨기에 할머니의 영어 그리고 이야기들로 내 외로움을 조금이나마 달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힘들었던 외로움을 견뎌내고 나니, 더이상 할머니는 계시진 않았지만, 그때 할머니에게 배운 영어는 내 안에 오랜 시간 남아, 내 유학 생활에 큰 힘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지금까지도 가끔 내 외로웠던 유학 생활에 은인이셨던 할머니와의 시간들이 그리울 때가 있다.


작가의 이전글 해외 물리치료사 Money vs. English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