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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초시현 Jul 24. 2019

한라산 숲에서의 소름 돋는 이야기

한적한 도로에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꺄아아아아악!"


가자, 한라산.

북쪽으로는 제주시와 공항이, 남쪽으로는 서귀포시가 자리 잡고 있는 제주의 중심인 한라산은 봄철에도 장맛비가 내리고, 여름철엔 하루에 1000mm 이상의 집중호우가, 겨울철엔 대설특보와 함께 폭설과 입산통제가 이어진다. 한라산엔 총 7개의 등산코스와 둘레길 코스가 있는데, 나는 그중 1개의 코스를 타고 올라가서 백록담에 올라갔다 오기로 했다. 한라산 같은 경우 보편적으로 해수면 높이 0m부터 1950m까지를 오르는 게 아니라 해발 1100m가 넘는 고지까지 이동한 뒤 등산을 시작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등산을 하는 높이는 동네 뒷산 수준인 800m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물론 그건 차량이 있을 때 이야기고.. 난 차량이 없는 관계로 해발 0m인 대포 주상절리 부근에서 출발해서 자전거와 백팩 등 대략 30kg 이상의 짐을 끌면서 올라갔다. 잠시 후 허벅지, 종아리 근섬유들이 실뜨기를 하기 시작했고 호흡까지 터질 듯하여 토를 하면 폐가 목 구녕으로 튀어나올 듯싶었다. 대포 주상절리에서 1100도로까지 이동하니 해가 모두 졌다. 차량 몇 대가 뒷 범퍼로 빨간 불빛을 은은히 뿜으며 1100 도로 언덕길의 어둠을 뚫고 조용히 올라갈 뿐이었다. 어둠이 내린 도로는 고요했고, 그 흔한 가로등 하나가 없어서 자연스레 저시계 상태로 변했다. 이때다 싶어서 서둘러 헤드라이트를 꺼내 쓰고는 배터리를 아끼기 위해 최저 광량으로 맞춘 후 아무런 말도 없이 조용히 어둠 속을 걷기 시작했다.


생수가 동난 상태였기에 금세 땀으로 버무려진 몸뚱이에 탈수 증상이 와서 헥헥거리기 시작했다. 산 중턱에서부턴 비바람이 휘몰아쳤다. 비바람이 불자 곧이어 저체온증 증상이 나타나서 온몸이 뻣뻣해지고 입술이 파래졌다. 이게 한여름이 맞나 싶었다. 정말이지 제주의 날씨는 30분 전이 다르고 30분 후가 다르다는 걸 다시 한번 체감하는 순간이었다. 얇은 패딩이 한 벌 있었더라면 급변하는 날씨에 체온을 어느 정도 유지할 수 있었을 텐데, 여름에도 추울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 게 참 한스러웠다. 계속해서 낮아지는 체온에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어서 최대한 빨리 영실 등산코스 입구로 이동한 뒤 자리를 깔고 쉬기로 했다.



숲 속에서 일어난 무서운 이야기

땀을 미친 듯이 흘리고, 차가운 비바람을 맞고, 감기에 걸린 듯이 몸을 떨면서 영실입구를 향해 올라가다가 가로등을 발견해서 이게 얼마만의 불빛이냐며 기분이 좋아서 영상을 찍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오른쪽 숲에서 "끼이아아아악!!!" 하는 여성의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순간 놀라서 시밤쾀! 하고 자전거를 끌어안고 자빠졌다. 온몸에 소름이 돋은 채로 소리 난 부근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거긴 등산로도, 가로등도 하나 없는 컴컴한 숲이었다. 정말이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이 내린 곳이었고, 아무도 있을 수가 없는 시간대였다.


'???'


자전거에 짓눌린 채로 공포감에 휩싸여 입을 다물지 못하고 아스팔트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소리의 근원지였던 숲을 응시했다. 3초도 안 되는 찰나의 순간에 최악의 생각들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온몸의 털들이 쭈뼛쭈뼛 섰다. 지금껏 수십 차례 야간 단독산행의 경험과 묘지 잔디밭에서도 잔 경험이 있던 나였다. 산에 대한 어떠한 공포감도 극복한 나였다. 그러나 이 날의 공포는 마치 그간의 경험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척수를 타고 긴장감이 흘렀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귀신이라도 튀어나와서 나를 죽일까 봐 심장이 터질 듯이 뛰고 동공이 떨렸으며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극복한 줄로만 알았던 공포감, 이렇게 또다시 느낄 줄은 상상조차 못 했기에 그 비명은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이 상태에서 나 몰라라 도망가버릴 순 없었다. 트라우마는 둘째치고 평생 죄책감에 시달리며 살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온몸에 닭살이 돋고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으며 관절이 삐그덕거렸지만 용기 있게 나서서 도와주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자전거에 짓눌린 채로 "저기요!! 괜찮으세요?"하고 소리를 질렀다. 컴컴한 숲에선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필시 괴한한테 당하다가 마지막으로 소리를 지른 게 분명하다는 판단을 하고는 몸을 짓누르던 자전거를 내던지고 헤드라이트 광량을 최대치로 맞추고 빛을 넓게 퍼지는 모드로 전환하여 숲으로 뛰어 들어갔다. 미친 듯이 뛰어가는 도중에 가슴팍에 차고 있던 레더맨 멀티 툴 칼도 뽑아서 새끼손가락부터 엄지손가락까지 힘을 주어서 꽈악 말아쥐었다.


제기랄. 아까 소리가 났던 곳으로 가려고 하니 가는 길에 굉장히 험한 길과 맞닥뜨렸다. 산길이라기보단 사람이 다닐 수 없을 정도로 바위가 엄청 섞인 비탈길이었다. 숲은 정글처럼 울창하게 뻗어있었고, 풀과 나무가 무성히 자라서 숲을 이루고 있었기에 5m 전방을 보기가 힘들었다. 한 걸음 한 걸음이 정말 얼마나 멀게만 느껴졌는지, 뒤를 돌아보니 어느덧 나무들에 둘러싸여서 점점 가로등 불빛이 희미해졌다. 잠시 후, 컴컴한 어둠이 점점 짙어지더니 가로등 불빛이 사라졌고 어느 순간 뒤를 돌아보니 출발점이 보이지 않는, 완전한 어둠 속으로 들어왔음을 알 수 있었다. 서둘러 이 사건을 해결하고 가로등 불빛 아래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렇게 한참을 뛰어가면서 아드레날린이 폭증한 상태로 왼손 손톱을 물어뜯으며 "저기요! 아줌마! 대답해봐요! 괜찮으세요?" 하며 소리의 근원지로 달려갔다. 그리고 혹시 괴한이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나서 칼로 나를 찌르려고 달려들까 봐 중간중간 확! 하고 멈춰 서서 혹시나 낙엽 밟는 소리가 주변에 들리는지까지 확인해가면서 뛰었다. 땀으로 샤워를 했고, 공포심이 뼛속까지 들어왔다. 오늘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깊숙한 숲 속으로 한참을 들어왔다고 생각했을 때, 전방 50m 어딘가에서 "끼이아아아악!!!" 하며 소름 끼치는 비명소리가 또다시 숲에 울려 퍼졌다.


소리가 꽤 가까워진 것을 보니 이제 조금만 더 서두르면 따라잡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분 정도면 도착할 수 있을 거리였으니, 1분 정도 안에 한 번만 비명소리를 더 내준다면 정확한 위치를 찾아갈 수 있었다. 제발 소리를 한 번만 더 질러줬으면 하는 심정이었다. 그래서 비명소리 부근으로 헤드라이트를 일점사로 돌려놓고 미친 듯이 흔들면서 "아줌마! 아줌마!! 제 말 들려요? 대답해봐요!!"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그때, 내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소름 돋는  비명소리가 또 "끼이아아아악!!!" 하고 났다. 순간 비명소리에 소름이 돋아서 더 이상 달릴 수가 없었다. 마치 가위에 눌린 듯이 두려워서 그 자리에 멈춰 서야 했다. 이제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게 되었지만, 극한의 공포감에 휩싸여 상동염색체마냥 뇌 분열을 하며 혼란 속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제자리에서 10초쯤이 지났을까, 다시 정신이 들었다. 그리고 다시 결의를 다졌다. 아무리 두려워도 난 이 사건을 해결하기 전까진 절대로 숲 밖으로 나가지 않겠다고 말이다. 소리의 근원지가 분명해졌으니 확신을 가지고 그 방향으로 정말 미친 듯이 뛰었다. 50m 달리기 줫밥이다. 하지만 칼하나 들고 비탈진 숲에서 바위를 넘고 가시덤불에 살이 찢기고 나무뿌리에 걸려 넘어지면서 구르듯이 달리려니 얼마나 속이 터지고 힘이 빠지던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도 손에 쥔 칼을 혹여 놓쳐서 칼을 찾느라 시간이 지체될까 봐 안간힘을 써가며 꽉 말아쥐었고 칼로 괴한을 어떻게 찔러서 내 몸을 보호할지까지 생각하며 나아갔다.


'드디어 잡았다 이x끼야...'


온몸에 힘이 빠졌고 금방이라도 주저앉아서 울고 싶었지만 심장이 터질 듯한 긴장감을 유지한 상태로 미친 듯이 달려가서 소리의 근원지에 도착했다. 그리고 소리가 울려 퍼진 정확한 위치에 서서 숨을 죽이고 주변을 둘러보는데, 무엇인가가 뒤쪽 수풀 속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내며 도망가기 시작했다. 그래서 잡고 있던 칼을 꽉 잡은 채로 뒤따라서 뛰어가는데 뭐라 해야 할지 말이 생각 안 나서 "야!! 야!!" 소리를 지르며 쫓아갔다.


"야! 이런 x새끼야! 야!!! 아 x발 멈춰보라고! 야!! 야!! 잠깐만 야!!"



근데 웬 고라니 한 마리가 저만치 떨어져서 왜 저러나 싶은 눈으로 빤히 쳐다보는데..

  ()   ()       

(ㅇㅅㅇ) ? 

진짜 딱 이 표정이었다. 아니 이. 새. 끼가 진짜;; 이 새끼가 나를 빤히 쳐다보면서 한 번 더 울었는데 아까 그 여자 비명소리와 100% 똑같은 소리가 났다. 허탈했지만 다행히도 사람이 다친 건 아니라는 생각에 아휴 이게 뭔 일이람 하면서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긴 했는데 생각해보니까 이 힘든 순간에 고. 라. 니. 새. 끼한테 낚여서 어디로 돌아가야 할지 감도 안 오는 곳에 왔다는 게 열이 받았다. 옆에 있는 나무를 걷어차면서 고라니에게 소리를 지르며 저 요망한 짐승 따위에게 영장류의 두려움을 보여주겠다며 미친 듯이 추격하기 시작했다. 이 날 저녁은 고라니 고기라며 말이다. 그러나 복날에 된장 발린채로 도망가는 개새끼라도 되는 건지, 제트엔진을 장착한 듯이 미친듯한 속도로 도망가는 고라니는 개 짖는 소리 비슷한 소리를 내면서 삼십육계 줄행랑을 쳤고..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어쩔 수 없이 허탈한 마음만을 간직한 채로 그 자리에 주저앉아서 땀을 훔쳐 닦았다. 그 상황에서도 아까 두려움에 떨었던 탓에 온 몸에 닭살이 쫙 돋아있었다. 그렇게 앉아서 한 2분쯤을 'x발' 소리만 하다가, 숲에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게 무서워서 아까 가로등이 있었던 지점으로 나가보기로 했다. 그런데 방향도 잘 모르겠고, 길은 쉽사리 나오지 않았다.


헤맨 지 1분째 : 여기가 무슨 개마고원이냐? 길을 잃게 ㅋㅋㅋㅋㅋ

헤맨 지 5분째 : 아 tlqkf 길 잃었네


길까지 잃으면서 상황이 정말 가관이었다. 어찌어찌 GPS를 활용하여 도로로 나와보니 어떤 차 한 대가 가로등 옆에 세워져 있었다. 그리고 운전자가 차 밖으로 나와서 내 자전거를 사진으로 찍으면서 경찰에 이상한 자전거 쓰러져 있다고 신고하려고 하는 것 같았는데 아 진짜 시. 부. 럴 나한테 다들 왜 그러냐 진짜... 아주 그냥 살아있는 게 서러워서 차를 보내고 나서 입에 주먹을 넣고 엉엉 울었다.. 고라니 한 마리 때문에 내가 왜 이런 꼴을 당해야 하는지 정말.....

 


그 뒤론 세상 모든 고라니들이 하루빨리 뒤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인연

한 9시쯤이나 되었을까, 서귀포 자연휴양림에 도착할 수 있었다. 원래 영실입구까지 가기로 했으나 시간이 늦기도 했고 힘이 빠져서 더 이상 이동을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이 날은 휴양림에서 쉬기로 했다. 늦은 시각이라 매표소가 문을 닫지 않았을까 걱정을 했는데 문은 다행히 열려있었고, 한라산엔 썬콜 법사가 사는지 날씨가 괴랄해서 매표소에 들어서자마자 비가 사정없이 쏟아져 내렸다. 그렇게 매표를 하기도 전에 직원의 안내를 받아 방문자 휴게실로 비를 피하러 들어갔다.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했다며, 응원한다며 초콜릿이랑 과자를 건네준 직원들. 이렇게 늦은 시각에도 입장표와 비박 사이트를 구매할 수 있냐고 물어보니 매표소 직원 두 명이서 나를 빤히 쳐다봤다. 그리고는 물어본 표는 안 끊어주고 이 밤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 어떻게 온 거냐고 물었다. 그래서 "이러쿵저러쿵 한라산에 왔는데 맘에 들어서 한라산에서 하루나 이틀 정도 불법으로 비박하려고 한다."라고 하자 당당한 모습이 멋있다며 표값과 텐트 자리값은 자기가 처리할 테니 그냥 원하는 자리 아무 데나 들어가서 푹 쉬었다 가라고 했다. 그렇게 프리패스를 했고, 잠시 뒤 비가 마법처럼 그친 뒤에 자리를 찾아서 잠을 청했다. 잠을 자기 전에 밥을 엄청 많이 했던 게 기억에 남는다. 작은 티타늄 냄비에 세 번 네 번씩이나 밥을 해서 비닐봉지에 담고 또 담았는데, 그것들은 다음 날부터 한라산에 있으면서 며칠간 먹을 식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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