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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초시현 Jul 04. 2019

탐라국 여행

육지 것의 제주도 탐방기


두 번째 여름

어느 순간부터 '아직도 여행 다니냐'는 주변 사람들의 말을 지겹도록 듣기 시작했다. 연락을 하면 모두 다 그 이야기는 빼먹지 않았다. 아직도 다니냐고. 그런 전화를 받을 때마다 언제 시간이 이렇게 많이 흘렀는지, 정신없이 다니다 보니 정말 시간이 어떻게 지나간 줄도 몰랐다. 그렇게 벌써 두 번째 여름이 시작됐다. 보수동 책방골목의 한 고시원에서 거제도 조선소로, 거제도 생활을 마친 후엔 또다시 부산으로 돌아왔다. 거제 생활을 마치고 나서 부산을 거치지 않고 제주도로 곧바로 넘어갈 수 있었지만 부산에서 경비를 더 벌고 친구와 함께 제주로 넘어갈 계획을 잡게 되어서 친구가 강원도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경비를 준비할 동안 나도 토성역 근처에 월세방을 잡아놓고 생활하며 경비를 더 모았다. 이 친구와 함께 여행을 떠나기로 한 이유는 이러했다. 우선 마음이 잘 맞았고, 듬직하니 옆에 있으면 든든했고, 가장 중요한 이유로는 이 친구는 절대로 본인이 힘들다고 하여 주변 사람을 짜증 나게 하거나 힘들게 하는 친구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함께 떠나기로 했다. 약속한 날짜가 다가옴에 따라 친구와 나는 묵묵히 탐라국(耽羅國)으로 떠날 채비를 마쳐갔다.



탐라국 도착

당시엔 선사 측 사정으로 인해 선박 운행이 중단된 상태였기에 김해공항에서 자전거를 수화물로 붙이고 비행기를 타고 이동했다. 많이 피곤했지만 눈을 붙일 새도 없이 도착한 제주도는 아름다웠다. 인류가 판도라의 원주민 나비족과 처음 접촉했을 때처럼, 매우 이국적인 모습이 돋보였다.


예쁘게 까진 감귤과 함께 갓 착즙한 감귤주스를 올려놓고 식사기도를 드리는 가정의 모습.. 

택시가 없는 지역 특성상 조랑말을 타고 이동하는 사람들.. 

돌하르방, 야자수, 구멍이 숭숭 뚫린 화강암까지.. 

태어나 처음 보는 멋진 광경들이었다. 

들뜬 마음으로 쏜살같이 애월항 방향으로 달렸다. 

그러자 머리를 관통할듯한 시원한 바닷바람이 불었다. 

바람 한 오라기, 한 오라기가 맑고 상쾌했다.

심심할 때마다 길가에 자란 감귤을 따서 먹으니 갈증과 허기도 잊어버린 채 달리게 됐다.

곧이어 감귤즙이 헬멧 틈으로 떨어지더니, 하늘에서 감귤 비가 우수수 떨어졌고 

친구 진호와 나는 함께 와! 하는 탄성과 함께 우비를 사각형으로 펼쳐서 감귤즙을 모았다. 

그리고 모은 감귤즙을 기울여서 입가에 흘려가며 풍족히 마셨다. 

두 명 모두 현지에서 먹는 특산품의 맛은 단연 최고였음을 인정하며 고개를 끄덕였고, 

그렇게 행복한 시간을 보내다가 한림항에 도착했다. 



비양도 왔어예

한림항에서 간 섬은 비양도다. 우리나라엔 캠퍼들의 국내 3대 성지라고 불리는 곳들이 있다. 바로 간월재와 비양도, 굴업도가 그 삼대장들인데, 비양도는 그중 한 곳으로, 빼어난 자연경관과 푸른 초원의 캠핑사이트로 유명하다. 비양도까지의 뱃삯은 편도 3000원이었고, 이동시간은 15분이었다. 자전거(국보 제454985호)를 꼭 가지고 가려했으나 승선불가 품목이었기에 항구에 있던 파출소 담벼락에 묶어두고 짐만 챙겨서 배에 탑승했다. 저 멀리 보이는 아름다운 섬 비양도가 보이냐고 진호에게 물어보니 자신은 키가 작아서 볼 수 없다고 답했다. 친구의 행복한 여행을 위해 겨드랑이를 집어 번쩍 들어 올려주니 그제야 바지에 오줌을 지리며 환호성을 내뱉었다. 그 모습은 아마도 타이타닉호 갑판 끝자락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행복해하는 잭 도슨과 로즈의 모습이었을 것이 분명했다.



이상한 기운이 탐지되었습니다. 서둘러 위치를 확인하세요.

비양도에 도착해서 주변을 둘러봤는데 사전에 인스타그램으로 검색해본 비양도와는 조금 다른 모습이어서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인스타로 봤던 비양도는 텐트도 많고 사람들이 바글바글한 곳이었는데, 어째 여기는 사람이 없었고, 제주도 중앙에 한라산이 우뚝 솓아있듯이 섬 중앙에 정체모를 산이 하나 떡하니 지키고 있었다. 분명 우리가 가고자 했던 비양도는 산이 없는 곳이었는데 말이다. 상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이 섬의 모습에 굉장히 당황했고, 의아해했다. 그래도 뭐 비양도라는 섬에 정확히 왔으니 여기 어딘가에 내가 바라던 풍경이 숨겨져 있을 것이라며 해안길을 따라서 섬 중앙에 있는 산 뒤편으로 넘어가 보기로 했다. 산 뒤로 가면 우리가 찾는 풍경이 분명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백팩 하나씩과 자전거 가방 2개씩을 낑낑거리며 들고는 항구를 지나 해안길을 걸어 나갔다.



"진호야 여기 진짜 비양도 맞는 걸까?"

"맞겠지~"

"그래 설마 잘못 왔겠냐~ 어? ㅋㅋㅋ"


아지랑이가 가스불처럼 올라오는 도로 위.. 한여름의 불볕더위를 체감했다. 정말 불 위를 걷는 것만 같았고, 온몸에서 후끈후끈한 김이 세어 나왔다. 달걀도 부화할 이 날씨는 열사병 걸려 죽기 딱 좋았고, 물을 오전에만 한 5L 마셨는데 땀샘으로 체내의 수분을 모두 배출했기 때문에 요도는 시골의 텅 빈 터널처럼 잠잠했다.  



"좀 이상하지 않아? 비양도가 얼마나 유명한데 개미새끼 한 마리도 안 보이네.."

"그러게.. 설마 우리가 잘못 온 건 아니겠지?"

"에이ㅋㅋㅋ 설마. 비양도 가는 배 타고 분명히 맞게 왔는데 여기가 비양도가 아니면 어디겠냐?"

"하긴 ㅋㅋ 그렇겠지."


한참을 또 걸었다. 상상했던 비양도가 보이지 않는 이유를 알 수 없어서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가방이 너무 무거워서 중간에 짐을 내려놓고 쉬었는데, 태양 아래서 가만히 쉬는 것이 굉장히 고통스러웠다. 진호와 나는 아스팔트의 온도에 서서히 타들어가는 지렁이처럼 몸을 베베꼬며 뜨거운 열기에 구워지고 있었다. 열기에 수분기가 쪽 빠졌을 때쯤부터 안간힘을 다해 다시 걷기 시작했는데 치안방범센터 쪽을 지날 때 한 할머니를 발견했다. 


"이러다가 둘 다 타 죽겠다. 저기 유모차 끌고 가시는 할머니께 여쭤보자."

"그래. 여기 사시니까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아시겠지."

"할머니~ 혹시 텐트 치고 노는 사람들이 보통 어디로 가는지 아실까요?"

"여긴 텐트 가지고 오는 사람이 없는데~ 무신 말인지 모르겠네.."

"예? 아..... 그런가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상하단 느낌에 비양도를 다시 검색했다땀이 얼굴을 타고 휴대폰에 떨어지는 와중에 엄청난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우리가 온 곳은 비양도지만, 우리가 찾던 비양도는 아니었단 것을 말이다.



깨달음의 시간, 현자 타임.

"엌ㅋㅋㅋㅋㅋ진짜 우린 미친놈들이야ㅋㅋㅋ"

"그러니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어떡하냐~ㅋㅋㅋㅋㅋㅋㅋ"

"뭘 어떻게 해 여기서 재밌게 놀면 되지 뭐~ㅋㅋㅋ"

"그래그래~ 재밌게 놀다 가자."


축구하다가 공을 뻥 차면 바다에 빠질 것 같이 좁게만 생각했던 이 제주도 땅에 같은 지명이 두 개나 있을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그렇다. 머릿속으론 우도면 소재의 비양도를 꿈꿨지만 정보수집의 오류로 몸은 한림읍 소재의 비양도로 온 것이었다. 심지어 거리도 제일 멀게 제주 최동쪽에서 최서쪽으로, 끝에서 끝이었다. 우린 서둘러 상황을 인정했고,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서로 짜증 한 번, 화 한 번 내지 않고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시간을 즐겁게 보낼지를 고민하고, 재밌게 노는 것에 집중하기로 했다. 


이미 배가 끊겼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섬안에서 꼭 붙어서 하루를 생존해야 했고, 수영해서 이 섬을 곧바로 빠져나갈 용기가 없다면 다음 날 아침 첫 배로 섬을 빠져나가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짐을 들고 해안가 라인을 오면서 낑낑댄 만큼 다시 낑낑대며 항구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고, 항구 부근의 한 정자에 자리를 잡아서 잠을 청하기로 했다. 우리는 서로를 향해 "어머 배가 끊겼네. 어쩔 수 없이 이 섬에서 하룻밤 자고 가야겠다."같은 느끼한 대사를 너에게 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며 이건 아니라는 극혐의 의사를 강하게 표현했다. 물론 백프로 장난이었지만.



비양도 분교의 마지막 아이들

정자에서 짐을 풀고 잠시 쉬고 있었는데 갑자기 초등학생 두 명이 정자에 찾아왔다. 한 명은 비양도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였고, 다른 한 명은 그 아이의 사촌이었다. 자신을 비양도 초등학교를 다닌다고 소개한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비양도 분교엔 전교생이 3명밖에 안되어서 폐교하기 직전인데, 그 아이의 동생들이 그 3명 안에 다 포함되어서 자기 가족이 졸업을 하면 이제 곧 폐교를 하게 될 거라고 했다. 아이들은 섬 생활이 외로웠는지 낯선이들인 우리에게 대뜸 놀아달라고 요청했다. 내심 귀찮았지만 나도 초등학교 때 1학년부터 6학년까지 전교생이 10명도 채 되지 않는 분교를 다녀봤기에 친구 없는 서글픔과 인프라가 구축되어있지 않은 곳에서의 생활을 이해했기에 함께 경찰과 도둑 놀이를 하며 기로 했다. 아이들은 날 잡으려고 부지런히 뛰어다녔고, 꼭꼭 숨기 위해서 숨기 힘든 곳을 찾아서 들어가려다가 그만 마을 분들이 공들여 쌓아 놓으신 돌담을 무너뜨려서 아이들에게 혼이 나기도 했다. 무서운 표정을 지으면서 이야기하는 허름한 폐허에 얽힌 무~서운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동화 속 주인공들처럼 때 묻지 않고 순수했던 아이들과 함께하니 시간이 정말 빨리 갔다. 


*2019년 뉴스를 찾아보니 비양도 분교는 재학생이 없어서 2019년 기준으로 앞으로 1년간 휴교하고, 2020년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한다. 뉴스에 반가운 얼굴이 떠서 놀랐다. 오오미..



나른한 오후

오후가 되어서 낚시를 하려고 보니 미끼가 없었다. 그래서 섬을 쭉 둘러보며 미끼를 살만한 곳을 찾았다. 섬엔 가게라곤 구멍가게 하나밖에 없었다. 심지어 그 구멍가게엔 물건 종류가 30가지가 채 넘지 않았다. 가게 주인분의 말씀에 따르면 들어보니 옛날엔 2개의 가게가 있었는데, 육지에 나가서 수레에 물건을 담아 배에 싣고, 항구에 도착해서 가게까지 수레를 끌고 다니면서 물건을 진열해놓으며 물건을 파는 것이 육체적으로 굉장히 고단해서 본인도 올해까지만 하고 이제 접을 거라고 하셨다. 그 주인 분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혹시 여기 수돗물을 구할 곳이 없냐고 여쭤보니 한 군데도 없다고 하셨다. 아, 이 구멍가게가 사막의 유일한 오아시스구나, 물을 사 가야겠다 싶어서 물과 음료 한 병씩을 사고 미끼도 구했다. 가격이 일반 마트 3~4배더라 상당히 부담스러웠지만 의도치 않게 독점을 행사하고 있는 구멍가게인 터라 부르는 게 값인 게 당연했다. 친구와 신나게 떠들며 원래 자리로 돌아오자 아까 만났던 초등학생 친구들이 다시 우리를 찾아왔다. 그리고 물을 왜 멀리서 사 왔냐고 물었다. 그래서 "아 당연히 마시려고 가져왔지~" 하니깐 음수대 위치를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우리 둘을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순간 당황해서 음수대에 가서 물을 틀어보니 생수가 아주 콸콸 잘 나왔다. 사막의 오아시스는 개뿔.. 낚시를 하기 전에 가게 사장님께 낚시를 당한 것이었다. 우리는 광분한 나머지 낚싯대를 펴고 분노의 낚시질을 했다. 그리고 1시간 만에 우럭 한 마리를 잡아서 라면에 넣어먹으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우럭의 야들야들한 살이 정말 눈물겹게 맛있었기에, 모든 것이 용서가 됐다. 밤이 찾아온 비양도는 조용한 곳이었다. 물고기들이 가끔 수면 위로 튀어 올랐다가 다시 바닷속으로 첨벙 할 때와 바다 건너 협재해수욕장에서 안내방송을 할 때를 제외하면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고요하고, 평온했다.



꿀잠 잤서예

다음 날, 자고 일어나니 머리가 맑았고, 등살에 피곤함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개운함 그 자체였다. 비양도 분교의 마지막 남은 아이도 보고, 낚시도 하고, 고요한 밤바다 속에 평온히 잠들면서 묵은 스트레스를 모두 날려버린 것이었다. 진호와 나는 짐을 챙겨서 항구 쪽으로 걸어갔다. 배를 기다리다가 어떤 청년들이 말을 걸어왔는데 이야기를 나눠보니 우리처럼 잘못된 정보로 인해 우도 비양도로 안 가고 한림 비양도로 온 사람들이란 걸 알게 되고는, 다들 어떻게 낚였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끌끌끌 쓴웃음을 지었다. 우리 같은 바보가 또 있었다니! 잠시 후, 배가 도착하자 해양경찰이 짐 옮기는 것을 도와주었고, 우린 한림항으로 돌아가는 배에 몸을 실었다. 달리는 배 안에서 점점 멀어지는 비양도의 풍경은 아득하게만 느껴졌다. 다시 돌아가진 않겠지만, 멀리서라도 지나가면서 보게 된다면 무진장 그리움에 사무칠 게 분명해 보였다. 그렇게 이 날들의 추억들이 기억 속에서 사라지지 않길 바라며 비양도를 떠났고, 친구는 송악산에서 일정을 마치고 함께할 다음을 기약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리워드 사진

오프라인 후원은 거의 들어오지 않았다. 대부분 SNS를 보고 계좌이체를 해주셨다. 그래서 리워드 사진이라도 잘 찍어서 SNS에 올리고 다른 분들도 후원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자는 생각에 리워드 사진을 잘 찍으려고 노력했다. 물론 그렇게 했음에도 며칠 걸러서 만 원, 며칠 걸러서 2 만원 이런 식으로 가뭄에 콩 나듯 후원이 들어왔고, 모금액은 좀처럼 2천만 원에 가까워지질 않았다. 저조한 성적은 심리적인 압박으로 다가왔다. 이렇게 모금활동을 하는 나의 방식이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다는 건 진작에 깨달았지만 모금방법을 어떻게 바꿔야 사람들이 에티오피아 학교 건축에 힘을 보태줄지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결국 나의 능력의 한계를 인정했고, '여행이 종료돼도 모금이 안 되면 나머지는 내가 벌어서 메꾸자'라는 생각으로 심리적 부담감을 덜어서 다니기로 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만큼은 후련했다.



소를 닮은 제주의 메카, 우도(牛島).

이제부턴 우도에 갔을 때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우도는 제주도 우측에 붙어있는 부속섬으로, 하루 1만 명의 여행자들이 왕래하고, 하루에 605대의 차량만 섬에 들어갈 수 있다. 성산항이나 종달리에서 도항선을 타고 갈 수 있고, 도항선은 9시부터 17시까지 30분 간격으로 우도의 하우목동항이나 천진항으로 간다.(30분이라고 쓰고 '다 타면 출발한다'라고 읽는다.) 성산항 매표소에 가보니 얼마나 많은 인파가 모였는지, 사람들 틈을 겨우 비집고 들어가서 겨우 매표를 할 수 있었다. 배에 탑승하고 하우목동항에 도착해서 자전거를 탄 채로 배에서 하선했는데 승선하는 사람들은 배에 탑승하기 위해 뙤약볕에서 줄을 길게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 사람들 옆으로 쌩쌩 달려서 항구 안쪽으로 들어서자 ATV나 삼륜차, 전동스쿠터 등의 퍼스널 모빌리티를 시간당 가격으로 빌릴 수 있는 가게들이 여럿 보였다. 난 자전거를 가지고 있었기에 곧바로 해안도로로 빠져서 라이딩을 즐기기로 하고는 우측 해안도로로 빠졌다.  



해안길을 달리며

해안길을 따라 달리다 보니 우도는 보는 눈에 따라 다이아가 되기도 하고 석탄이 되기도 하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우도는 굉장히 아름다운 해안이 참 많았다. 보통 섬이라 할지라도 4면이 모두 아름다운 경치를 가진 해안가로 이루어진 섬은 흔치 않은데, 우도는 어떤 해변을 가던 경치가 각기 다른 모습으로 아름다웠고, 대부분 도로와 인접해있기 때문에 차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바닷속에 풍덩 할 수 있을 정도로 해변의 접근성이 좋았다. 단점으로는 도로에 차량이 너무 많았다. 유명하고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는 건 참 감사한 일이지만, 도로는 혼돈의 카오스 그 자체였다. 버스와 트럭, 트랙터, 경운기, 렌터카, 오토바이, ATV, 댕댕이, 사람까지 대거 출몰해서 마치 동맥경화에 걸린 것만 같았던 도로는, 수많은 오토바이들이 위험하고 아슬아슬하게 서로를 비껴 다니는 방콕의 진풍경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바다와 함께 춤을

해안길을 따라서 검멀레를 보고 나서는 그토록 가고 싶었던 우도 비양도로 바로 들어갈까 싶었는데, 아직 저녁이 되기엔 일렀다. 그래서 하우목동항 항구 끄트머리 테트라포트에서 세월을 낚기로 했다. 우선 태양광 충전기로 20000mah짜리 예비 배터리를 충전시키면서 전력을 확보했고, 우도 중앙에 위치한 낚시점에서 구입한 미끼 새우와 낚싯바늘을 꺼내서 길바닥에 나뒹굴던 나뭇가지에 연결했다. 그렇다. 나뭇가지 낚싯대의 탄생인 것이었다. 나뭇가지 낚싯대를 들고 바닷물에 미끼 새우를 밑밥 삼아 집어던지자 그 부분으로 물고기가 쏜살같이 모여들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많고 다양한 잡물고기들이 나뭇가지 낚싯대 끝에 매달린 바늘을 서로 물려고 경쟁했다. 나뭇가지로 이렇게 물고기가 잡힌다니.. 한 마리씩 바닷물에서 건져 올릴 때마다 오오오! 탄성을 내지르며 깜짝깜짝 놀랐다.



생 날 것

잡아 올린 여러 잡 물고기들은 뼈가 연했다. 그래서 껍데기만 벗겨서 홀랑홀랑 뼈채로 초장에 찍어먹어도 목에 걸리지 않고 부드럽게 넘어갔다. 잡아 올린 물고기 중에 쥐치라는 녀석이 있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물고기였다. 이 녀석은 기절시키기 전부터 달랐다. 목을 따기 전에 멀티 툴로 대가리를 한 대 쳤더니 꾸어어어어억 하면서 사람 우는 소리를 내던 녀석. 물고기도 이렇게 사람 소리를 낼 수 있나 싶어서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런 녀석을 저세상으로 보내자니 마음이 아팠지만, 배가 많이 고파서 눈 한 번 질끈 감고 대가리를 후려치고 목을 땄다. 피를 줄줄 흘리던 쥐치의 몸통을 짭조름한 바닷물에 한 번 헹구어내고 손바닥 사이즈 정도 되는 그 녀석의 비늘을 멀티 툴로 벗겨내니 살점이 어찌나 튼실하고 아름다운지, 비늘 속 자태가 옥구슬처럼 빛나고 아름다웠다. 이 어마어마한 자연의 선물.. 생 날 것 본연 그대로의 맛을 즐기고 싶었다. 그래서 추가 손질을 안 한 채로 초장에 찍어서 뜯어먹기 시작했다. 거의 야만인 급이었다. 한 입씩 베어 물 때마다 모든 미각세포로 느낄 수 있었던 쥐치의 맛은, 평생을 바닷가 옆에 살면서도 이렇게 맛있는 물고기는 처음이다 싶을 정도로 타 물고기의 추종을 불허하는, 환상적인 맛이었다. 휴게소에서 파는 쥐포의 맛과는 전혀 다르게 신선하고 달달한 맛이었다. 



우도 비양도

수영과 낚시를 마치고 나서는 장비들을 모두 챙겨서 우도 비양도로 향했다. 전편에서 방문했던 한림 비양도와는 이름만 똑같고, 사실상 정 반대에 위치한 이곳 우도 비양도는 국내 백패킹 성지 3위 안에 들어가 있는 곳이었다. 제주도> 우도> 비양도 이런 식으로 들어가야 하는, 정확히 말하자면 '제주도(섬)'의 '부속섬'의 '부속섬'이라서 '섬 속의 섬 속의 섬'이라고 불린다.쓰리썸.. 실제로 가보니 정말 동화 속 초원에서 캠핑을 하는 듯이 초지가 잘 발달되어 있었고 그 옆으로 바다가 보였다. 너무나도 빼어난 풍경에 나도 얼른 동화 속에 들어가고 싶어서 자리 세팅을 시작했다. 바위를 주워와서 타프 끈을 고정했고, 바위가 모자라서 자전거 바퀴에도 묶어서 고정했다. 가지고 다니던 김장비닐로 자리를 깔았고, 그 위로는 침낭을 폈다. 비가 오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세팅이었지만 다행히도 일기예보에 비 소식이 없어서 한시름 내려놓았다. 자리를 다 구축하고 나서는 타프 밑에서 오랜만에 영화도 시청하고, 가족들에게 전화도 돌리며 정말 편안히 휴식을 취했다.



황홀경

밤이 되어서 입이 심심할 무렵, 챙겨 온 군만두를 구워 먹기로 했다. 식용유를 조금 넣어서 치이익 소리와 함께 익힌 군만두의 냄새는 환상 그 자체였다. 군만두 한 팩을 모두 구워 먹은 뒤, 꺼어억 소리와 함께 잠에 들었다. 지형 특성상 바람이 엄청 심해서 바람에 타프가 흔들리는 소리가 간혹 들렸지만 다행히도 강하게 고정해놔서 타프가 무너져 내리진 않았다. 그렇게 평온한 밤이 지나가다가 한 밤 중에 오줌이 마려워 잠시 일어났는데, 바다를 향해 오줌을 지리는데 황홀경이 눈 앞에 펼쳐져서 깜짝 놀랐다. 성산항 쪽에서 반짝이며 빛나는 불빛들과 처럼 밝은 밤하늘의 구름들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시원한 바람 속에서 그 광경을 보고 있자니 신선놀음을 하는 것만 같았다. 세상 그 어떠한 화가의 붓으로도 이 아름다움을 표현하지 못할 법 싶었다. 우도에서의 밤은 그렇게 황홀하게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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