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딘에 짧게 머문 뒤 좀 더 남쪽에 위치한 우르파에 도착했다
오토갈에 앉으니 뭔가 해냈다는 기분이 들었다
이성과 합리성을 거슬러 마음이 이끄는 길을 선택했고
거기서 이토록 많은 베풂과 즐거움을 경험했다는 것이 좋았다
이제는 나에게 상을 좀 줘야 했다
여기까지 왔으니 이제 서쪽에 가보자고 생각했다
그렇다. 이제 다시 문명의 세계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푸른 바다와 지중해의 섬들을 떠올리니 벌써부터 마음이 설레기 시작했다
마침내 이 황량한 지역에서 벗어나 낭만과 여유가 넘치는,
기념품점과 인터넷 카페도 있고 길거리에서 아이스크림도 파는 그런 곳,
여행자들의 낙원인 그리스 섬들과 파묵칼레가 기다리는 곳으로 가게 된 것이다
지체할 것 없이 서쪽 해안가로 가기 위한 중간 관문인
안탈야에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티켓 창구로 향했다
한 가지 문제가 생겼다
앞으로 5일간 그쪽으로 가는 차가 없었다
라마단이 끝나는 기간에 맞물려 고향에 돌아가려는 사람들 때문에
티켓이 바닥나고 없다는 것이었다
( .. 젠장 )
5일이라니.. 이 썰렁한 도시에 더 머물러 있기는 싫었다
절박한 심정에 이곳저곳에 물어봐도 같은 대답만 돌아올 뿐이었다
넋을 잃고 터미널에 한참을 앉아 있다가
[ 아름답지? 저기가 수리에야 ]
마르딘에서 만난 젊은 친구의 얘기가 생각났다
( 시리아에 가볼까.. )
차편만 있다면 안될 것도 없었다
곧바로 일어나 사람들에게 물어 시리아에 가는 차를 찾아냈다
말이 통하지 않아 지도를 보여주며 설명해야 했다
시간은 저녁을 향해 가고 있었다
시리아에 간다고 하는 차는 작은 미니버스였는데 그나마 승객들도 많지 않았다
지금 출발하는 차가 오늘의 마지막 차라고 했다
우르파를 출발해 광야로 향한 미니버스는
몇몇 마을들을 지나며 꼬불거리는 길들을 통과해 종점에 이르렀는데
기사 양반이 나를 향해 이제 내리라고 한다
( .. 이보쇼 )
거기는 아무것도 안 보이는 황량한 벌판이었다
[ 여기가 시리아인가요? ]
라는 질문을 못 알아듣는 것 같기에 지도를 가리키며
[ 수리에? 쑤리에? 슈리에? ]
라고 물어보니 그제야 알겠다는 듯 나를 어디로 데려간다
조금 걸어가자 거의 쓰러질듯한 건물이 하나 나왔는데
운전사는 안에 있던 몇몇 사람들에게 나를 맡기고는 사라졌다
그 안에 있던 사람들은 택시 운전사들인 것 같았다
그들에게 다시 물어보니 시리아에 가려면 국경을 통과해야 한단다
( 아, 국경.. )
뭘 기대했던 건가
스무스하게 시리아에 도착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운전자들 중 하나가 자신들의 차는 넘어갈 수는 없지만 국경까지 데려다줄 수는 있다고 하며
지금 그쪽으로 가는 사람이 몇 있으니 같이 가자고 한다
그곳에서 국경까지는 멀지 않았다
택시를 타고 몇 분 정도 가니 철조망이 보이기 시작했고
조금 더 가자 출입국 사무소로 보이는 건물과 커다란 게이트가 나타났다
터키 쪽 사무실에 시리아에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어보자
여권을 한번 쓱 보고는 시리아 쪽 사무실로 가라고 알려준다
그의 말대로 시리아의 사무실에 가 입국하려 한다고 말을 했는데..
다시 문제가 생겼다
시리아에 들어가려면 비자가 필요했다
( 이런 알라 뎀 잇!! )
이쯤 되자 욕이 끓어올랐다
정신 나간 짓도 정보를 알고 해야 용서가 된다
나는 비자가 필요한 줄도 모르고 국경을 통과하려고 했던 것이다
흥분을 가라앉히며 직원에게 나는 비자가 없다고 얘기하자
흰 터번을 쓴 직원은 그렇지 않아도 험상궂은 얼굴을 더 찡그리며
그럼 이곳에서 비자를 발급받으라고 한다
시리아 비자는 그곳에서 160달러를 주고 발급받을 수도 있었지만 나에게는 달러가 없었다
그나마 가지고 있던 돈은 터키 화폐였는데 그마저도 버스에서 내린 뒤 시리아 돈으로 환전을 한 상태였다
어차피 그 돈을 다 합친다고 해도 160달러에는 한참 못 미치는 금액이었다
낭패가 아닐 수 없었다
날은 거의 저물어가고 있었고 터키로 돌아가는 마지막 버스도 떠난 뒤였다
이제 와서 돌아갈 수는 없었다
가장 가까운 마을도 걸어서 2,3시간은 족히 걸릴 터였다
뿐만 아니라 밤늦게 광야에 혼자 남게 된다면
외계인에게 납치당하거나 야생 이구아나에게 잡아먹힐 위험도 있었다
( .. 망했네 )
더 이상 어찌해야 할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아 터키 쪽 출입국 사무소 앞에 멍하니 앉아있었는데
얼마 뒤 한 경찰이 다가오더니 어쩌면 자기가 도와줄 수 있을 것 같다고 한다
마지막 남은 희망으로 그를 따라간 곳에는
밴에 탄 두 명의 터키 남자들이 시리아에 들어가기 위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 이들은 내 친구들이야, 내 생각에 아마 너를 도와줄 수 있을 거 같은데 ]
정말 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경찰이 소개해준 그 남자들은 나를 반기며 그들의 돈으로 비자를 만들어 주었고
국경에서 자신들과 동행이라고 나를 소개하며 시리아에 함께 들어갈 수 있도록 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