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에서 일을 마치고 훔스를 거쳐 다마스쿠스의 재래시장에 왔다
이곳에서도 그들은 수입할 만한 물건이 있는지 찾아보며 분주하게 움직였다
국경에서 이 남자들과 만난 후로 예기치 못한 모험이 이어졌다
그들과 함께 다니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일주일 전엔 시리아가 어디에 있는 줄도 몰랐는데
이제 나는 여기에 있고 어느덧 상인들과 흥정을 하는 일에도 익숙해지고 있었다
한 가지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
우리가 재래시장을 돌아다니고 있을 때 중년의 일본인 관광객 한 무리가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반대편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그때 우리 뒤쪽에서 한 남자가 따라오며 그 일본인 관광객들을 향해
[ 환영해요 일본! 사랑해요 일본! 일본 최고예요! 한국 나빠요! ]
등의 소리를 질렀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소리를 지르는 사람은 낡은 옷을 걸친 노인이었는데 제정신이 아니라는 걸 금방 알 수 있었다
원래는 하얀색이었을 옷이 누레지다 못해 잿빛을 띄고 있었고 한동안 씻지 않은 듯 머리와 얼굴이 엉망이었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오고 말았다
어딘가 나사가 빠져있는 듯한 모습이 조금 재밌기까지 했다
그런데 그를 보고 있던 이스마일이 나를 가리키며 얘기했다
[ 한국이 나쁘다고? 여기 있는 사람은 한국인인데 그 앞에서 다시 한번 말해보시오 ]
나를 보던 노인의 멍한 표정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러더니 그는 곧 나를 향해
[ 일본 나빠요! 한국 좋아요! 사랑해요 한국! ]
등의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나는 화가 났다
그에게는 일관성이 없었다
무슨 이유가 있어서 그런 소리를 지르는지는 몰랐지만
상황에 따라 말이 바뀌는 모습을 보는 건 유쾌하지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거기서 화낼 이유는 없었다
어쩌면 나는 자신에게 화를 냈던 것 인지도 모른다
그에게서 일관성 없이 살아온 내 모습을 발견했던 것이다
그랬다. 나에겐 관점만 있을 뿐 주관이란 게 없었다
거의 모든 후회되는 일들이 사실은 거기에서 시작되었다
진지하지 않았던 말들과 확신이 없던 행동들
그런 일들은 두고두고 자신을 괴롭히는 기억이 된다
사람은 누구나 어떤 의견을 가질 수 있고 그걸 표현할 수도 있지만
자신의 생각을 내보이는 일에 책임감을 느낄 수 없다면
우리는 기다리던가 절제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재래시장에서 일을 마치고 현대식 건물들이 있는 곳으로 왔다
은행에서 돈을 찾아 그들이 국경에서 대신 내주었던 돈을 돌려주고
아마도 마지막이 될 식사를 같이 했다
난에 몇 가지 야채를 곁들인 소박한 식사였다
식사를 끝내고 차이를 마시는 중에 이스마일이 묻는다
[ 이제 어디로 갈 거니? 우리는 터키로 돌아가는데 원한다면 같이 가도 좋고 ]
나는 이곳까지 온 김에 인디아나 존스 영화에 나왔던 그.. 협곡 사이의 유적에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정확히 어느 곳에 있는지는 몰랐지만 이 지역 어딘가에 있는 건 확실했다
그곳의 이름을 몰라 그림을 그려서 보여주자
[ 팔말야로군 ]이라는 대답에
거기에 가볼 생각이라고 얘기해주었다
이제는 각자의 길을 갈 때가 다가오고 있었다
며칠간 차에서 잤던 터라 따뜻한 샤워와 침대가 그립기도 했지만
언제까지 그들과 함께 다닐 수는 없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언젠가 헤어져야 한다면 지금이 좋은 시간인 것 같았다
우리가 헤어지는 데는 조금 시간이 걸렸다
밴을 주차한 곳 까지는 멀었지만 우리는 느긋하게 걸었고
차에 도착한 뒤 깊게 포옹을 하고 악수를 하며 한참이나 인사를 했다
알라가 허락한다면 사는 동안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고 얘기했다
누군가와 함께한 시간이 길다면 헤어지는데도 얼만큼의 시간이 걸린다
관계들은 칼로 자르듯 쉽게 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한 사람과 9년간 교제했던 지인의 말이 생각난다
[ 우리가 사랑한 시간은 9년이었어, 7년을 만났고 헤어지는 데는 2년이 걸렸지 ]
누군가와 만난 시간이 길다면 내일부터 남남이 되듯 헤어질 수는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