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훔스

by Sunyu

다마스쿠스로 돌아가는 길은 멀었다

훔스를 거쳐 도시 중간의 긴 사막들을 지나가야 했고 도로의 상태도 좋지 않았다


우리 세 사람은 택시기사와 다마스쿠스의 호스텔까지 2,700파운드에 가기로 합의했었다

한 사람당 900파운드씩 계산한 것인데 밴 운전사가 요구한 1,500파운드보다는 나은 금액이었다

영국인 중 한 명이 괜찮은 호스텔을 알고 있다고 해 그곳에 가기로 했다



훔스를 통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차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출발한 지 몇 시간쯤 되었을 때 시작된 그 소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심해져 차를 멈추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시간은 저녁을 향하고 있었다


택시기사는 차를 손볼 생각으로 도로 옆에 택시를 세우고는 우리에게 내리라고 했다

그가 차를 손보는 동안 우리도 구겨졌던 몸을 펴고 쉴 수 있었지만

시간이 너무 늦어 걱정이 되었다



다행히 사막에서 많은 시간이 지체되지는 않았다

해가지고 몇 시간 뒤에 다마스쿠스 근처의 앨탈이라는 곳에 도착할 수 있었는데..


[ 여기서 내리셔야겠습니다 ]

택시기사가 한 공터에 차를 멈추더니 이제 내리라고 한다

이곳은 한눈에 보기에도 도시보다 외진 지역이었는데

우리가 가려는 호스텔은 다마스쿠스의 중심부에 있었다

[ 도착한 건가요? 이곳은 다마스쿠스처럼 보이지 않는데요 ]

[ 미안하지만 도시 외부의 택시는 안으로 들어갈 수 없어요 ]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 우리가 도시로 들어가는 건 불법이에요 경찰에게 발견되면 잡혀갈 수도 있어요 ]

[ 하지만 우리는 호스텔까지 가기로 얘기했는데요 ]

[ 그러면 저보고 감옥에 가라는 소린가요 ]

이들에게는 이상한 논리가 있다


[ 어쨌든 우리는 오늘 밤에 호스텔에 가야 해요 ]

[ 죄송합니다 내가 갈 수 있는 건 이곳까지예요 여기서 도시까지는 못해도 1,600파운드는 나올 거예요 ]

이제 본론을 얘기하려는 모양이다

[ 여기서 다마스쿠스까지 1,600파운드나 든다는 말인가요? ]

[ 그렇소 ]

[ 죄송하지만 못 믿겠군요 ]

[ 그러면 내가 거짓말하는 것 같소? ]

그러더니 택시기사는 근처에 있던 다른 택시기사를 한 명 데려와서 자기 말이 거짓인지 물어보았다

다른 택시기사는 그의 말이 맞다고 하며 다마스쿠스에는 허가받은 택시만 일할 수 있고

여기서 가려면 1,600파운드 정도가 들 거라고 했다

그렇게 얘기하는 택시기사의 차는 군청색 세단이었는데 우리가 타고 있는 것보다 훨씬 좋아 보였다


[ 그럼 당신 택시를 타도 1,600파운드가 든다는 얘기군요 ]

[ 그렇죠 ]

[ 당신 차는 다마스쿠스로 들어갈 수 있나요? ]

[ 그럼요 ]


그때 영국인 중 하나가 처음의 택시기사에게 얘기한다

[ 그럼 우리는 저 사람 택시로 옮겨 타겠어요 ]


처음의 택시기사가 얼빠진 표정으로 그를 쳐다본다

[ 우리가 합의한 금액은 2,700파운드이니 1,600파운드를 빼고 당신에게 1,100파운드를 주면 되겠죠? ]

그리고는 우리의 돈을 모아 택시기사에게 1,100파운드를 주고

그가 데려온 다른 택시기사의 차에 짐을 옮겨 실으려고 했다


( 천잰데? )

나는 이때다 싶어 그를 도와 짐을 다른 택시에 옮겨 싣기 시작했다

다른 영국인 한 명도 분위기를 파악한 듯 자기 짐을 빼고 있었다


택시기사는 그제야 상황을 알아차리고 우리를 필사적으로 말렸다

[ 형제여 내가 잘 못 생각했소 내가 다마스쿠스까지 가겠어요 ]

[ 아니요 우리 좋자고 당신을 감옥에 가게 할 수는 없죠. 비켜요 ]


당황한 그의 모습에 나는 더 신이 나서 그의 손을 뿌리치며 짐을 빼서 다른 택시로 가져갔다

다른 택시기사는 우리가 짐을 옮기는 걸 은근히 돕고 있었는데

이 상황이 재밌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처음의 택시기사는 이제 거의 빌다시피 하며 제발 다시 타라고 애원했다

거의 울듯한 표정으로 연거푸 우리에게 [ 형제여 ]라고 부르며 뺨에 키스까지 했다

우리는 그의 비굴한 모습을 보고 나서야 마음을 진정하고

그가 자신의 차에 다시 짐을 옮겨 싣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처음의 택시로 돌아온 우리는 기세 등등해져 다마스쿠스로 가는 내내

기사가 들으라는 듯 떠들어대며 우리의 승리를 자축했다


나는 그 택시기사가 비굴함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

그래도 마땅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비겁한 술수를 쓰려던 도적을 응징한 여행객들의 수호자였고

적대적인 환경에서 정의를 지켜낸 영웅이었다


그날 밤늦게 우리는 호스텔에 도착할 수 있었다

우리는 미리 예약했던 침대 세 개짜리 방에 짐을 풀고 잠을 청했다



나는 당시에 그것을 큰 승리로 여겼었다

내가 한 일은 별것도 아니었지만 그 상황에서는 최선이었다고 생각했다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망설임 없이 그렇게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중에 그 일을 떠올릴 때면 깊은 수치심이 느껴졌었다


나는 한동안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거기서 수치심을 느껴야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편한 마음을 뒤로한 채 한동안 그 일을 잊었었고

시간이 한참 지난 뒤에야 되돌아볼 용기를 낼 수 있었다


나중이 되어 한 가지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는데

내가 부끄러웠던 것은 그의 비굴한 모습을 보면서 어떤 쾌감을 느꼈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그것을 승리의 도취감이라고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무엇에 대해 승리한 것인가

비겁한 사람을 굴복시킨 것? 나의 권리를 지킨 것?


진실은, 우리가 악인의 고통을 보면서 쾌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악인과 나를 분리시켜 생각한다

나는 그들과 같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악인은 고통당해도 괜찮다는 느낌 뒤에는 내가 그들과 다르다는 것이 전제되어 있다


하지만 만약

사소한 양심의 희생으로 내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상황이 온다면

그리고 그 일을 다른 이들 몰래 할 수 있다면

그때 나는 얼마나 정직한 사람인가


어쩌면 나는 어쩔 수 없기 때문에 정직한 것은 아닐까

나는 단지 그렇지 못한 이들을 비난하며 절박한 심정으로

내 안에 희미하게 남아있는 선한 모습을 재확인하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사실 모든 악인들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본다

악인의 모습은 그들의 상황에서 곧 나의 모습이며

어쩌면 내가 그들보다 더 악인 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그래서 내가 누구도 비난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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