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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yu

다시 찾은 다마스쿠스는 평화로워 보였다

처음 왔을 때는 보수적인 느낌을 많이 받았었는데
다시 돌아와 보니 꽤 개방적인 면도 볼 수 있었다


항공사들이 모여있는 지역에서 찾아낸 터키항공에서

이스탄불행 표를 알아보니 이틀 후의 티켓이 비교적 저렴해 예약을 했다


돌아오면서 보니 도시의 북쪽은 높지 않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그 아랫부분에는 빈민가로 보이는 집들이 산 중턱까지 올라와 있었다

남쪽으로 떨어진 곳에는 전망이 그 산 쪽으로 향해 있는 건물들이 많았는데

왜 그렇게 지어진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결과적으로, 다마스쿠스에서 나흘을 머문 것인데

나를 향해 가끔 소리치던(칭챙총!) 사람들을 몇 빼면

낮 시간에는 대체로 한가롭게 거닐며 느긋하게 지낼 수 있었다
하지만 밤이 되자 분위기가 한층 달아오르며 여기저기서 싸움이 벌어졌다

관광객이 많이 있는 지역도 마찬가지였다


한 번은 밤이 되어 노천카페에 앉아서 쉬고 있던 중에

근처에서 두 시리아 남자가 말다툼을 하기 시작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서로 언성이 높아지며 주먹질이 시작되더니

이내 한 명이 이성을 잃고는 자신의 차를 타고 반대편의 남자를 향해 돌진했다


차는 곧 멈춰섰고 서 있던 남자는 다행히 다치지 않았지만

운전하던 남자는 뒷좌석에 타고있던 갓난 아기를 꺼내 누군가에게 건내고는 다시 차를 타고 남자에게 돌진했다

주위에 관광객들과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고개를 내저으며 그 자리를 피했다

호스텔로 돌아가던 중에 멀리에서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빛을 발견했다

무수히 많은 빛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벽이었다


그 빛의 벽은 도시의 북쪽으로 길게 이어져 장관을 이루고 있었는데

나는 곧 그것이 낮에 봤던 산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 빛은 산에 있던 빈민가의 집과 골목에서 나오고 있었다


그것은 이 도시에서 가장 근사한 풍경임이 틀림없었다

그제야 산 아래 건물들이 어째서 그곳을 보고 있는 것인지 알 것 같았다

만약 그 광경이 이 도시의 관광자원이라면 참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묵었던 방은 2층에 있었는데 아침에 씻으려고 보니 2층의 샤워실이 모두 사용 중이라

1층의 카운터로 가 직원에게 1층의 샤워실은 어디에 있는지 물어보았다


[ 1층에는 샤워실이 없습니다 ]

라는 직원의 말에 그런가 보다 하고 다시 올라가려고 했는데

다른 쪽 계단에서 영국인 친구가 샤워를 마치고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 어, 너 씻고 나오는 거니 ]

[ 응, 1층에 하나 있던데 ]

[ 카운터의 남자는 1층에 샤워실이 없다고 하던데 ]

[ 그럴 리가, 그 사람이 알려준 건데 ]


( 그렇군 )

나는 일단 씻은 뒤 돌아가는 길에 카운터를 찾아갔다


[ 당신은 나에게 1층에 다른 샤워실이 없다고 했죠 ]

그는 아무 말이 없었다


[ 방금 거기서 오는 길인데 왜 없다고 한 건가요 ]

그는 이제 실실거리며 웃고 있었다


지금 웃고 있는 거냐고 물어보기도 싫었다

말없이 그의 눈을 보고 있으니 이내 시선을 피하며 딴청을 피운다

이들에게는 뭔가 노골적인 면이 있다

그런 모습들은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기 어렵다



저녁이 되었을 무렵 어제 보았던 그 산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스텔에 있던 정보지에 그곳에 가려면 택시를 이용하라고 나와 있어서

한 택시와 300파운드의 가격에 왕복하기로 합의하고 그곳에 가 보았다


해 질 녘쯤 도착한 산 위에는 생각 외로 많은 사람들이 와 있었다

우리는 근처의 노점상에서 산 소다수를 들고 조금 한적한 곳에 자리를 잡아 앉았고

도시의 불빛이 켜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높은 곳에서 보니 도시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크다는 걸 알 수 있었는데

내가 돌아다닌 곳은 주로 올드마켓을 중심으로 한 북쪽 지역인 것 같았다


산에서 내려와 호스텔 근처에 도착해 택시비를 계산하려고 보니

내 지갑에는 500파운드짜리 한 장과 조금의 잔돈이 있었다


나는 운전사에게 지폐를 보여주며 얘기했다

[ 500파운드짜리밖에 없네요 ]


그러자 운전사는 잽싸게 내 손에서 지폐를 빼앗아 자기 품에 집어넣고는

[ 택시비는 500파운드입니다 ]라고 말했다


( 이런 마더퐈더.. )

이미 이 나라에 충분히 화나있는 상태에서 그런 일을 당하니 기분이 매우 불쾌했다

내 손에 총이나 뾰족한 당근 같은 게 있다면 당장 그를 공격하고 싶을 정도였다


[ 지금 뭐 하자는 건가요 당장 그 돈 내놓으시죠 ]

[ 하지만 300파운드는 너무 싼 가격이에요 기름값도 안 나온다구요 ]

[ 내 알바 아니오 그 가격에 가겠다고 한 건 당신이잖소 ]

[ 그렇지만 우리가 갔다 온 거리를 생각해봐요 시간은 또 어떻구 ]

[ 그딴거는 내가 상관할 바 아니라니까 ]


나는 짜증이 극에 달해 소리를 질렀다

너무 화가 나서 그를 테니스공 넣은 양말로 마구 때려주고 싶었다

나는 그의 재킷을 잡아당겨 그의 품에서 다시 돈을 꺼내려고 했지만

그럴수록 그는 더 필사적으로 내 손을 막았다


[ 좋소 450파운드 ]

[ 웃기고 있네 ]


나는 더 강하게 그의 옷을 잡아당겨 돈을 꺼내려고 했고

그는 몸을 돌리며 내 손을 뿌리치고 있었는데

거의 문을 열고 달아날 것 같은 기세였다


.. 뭔가 그림이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누군가 밖에서 봤다면 택시기사가 여행객에게 털리고 있는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 400파운드! ]

[ 꺼지시지 ]


안 되겠는지 그가 주머니에서 100파운드를 꺼내 내 쪽으로 내민다

[ 제발 그렇게 합시다 좀 ]


우리는 둘 다 지쳐있었다

그에게는 1파운드도 더 주고 싶지 않았으나 그보다 지금 상황이 더 지긋지긋했다

그를 잠시 바라보고 손에서 지폐를 낚아채 택시를 빠져나왔다


그날 밤에는 불쾌한 기분으로 잠이 들 수밖에 없었다

200파운드는(5천 원 정도) 그리 큰 금액이 아니었지만 나는 이들의 노골적인 방식이 싫었다

호스텔의 정보지에 택시기사들을 조심하라는 말이라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했지만

이미 지난 일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그 상황에서 택시기사와 싸운 것은 적절한 행동이 아니었다

후에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를 했을 때 누군가 시리아에는 한국 대사관이 없다고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북한 대사관은 있다고 했지만 문제가 생겼을 때 북한 대사관을 찾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곳에서 문제가 생긴다면 매우 곤란한 상황에 처할 수도 있었다


생각해보니 나는 여행을 떠난 후로 아무래도 좋다는 듯이 나를 대하고 있었고

이곳의 적대적인 분위기는 그것을 더욱 부추기고 있었다

그때까지 내 안에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있었는데

그것을 해결할 수 없다면 죽어도 상관없다는 듯이 행동했던 것이다


오래전부터, 세상의 많은 일들이 나에겐 모순과 불합리로 느껴졌었다

자신들의 본성 때문에 스스로 고통받는 인간들의 모습이 이해되지 않았었다

그런 상념들은 언제나 나를 괴롭히고 세상으로부터 고립시켰지만

그것의 정체는 결코 알 수 없었다


언젠가부터 나는 더 이상 생각을 할 수 없다는 두려움을 느꼈었다
아무리 집중해도 생각을 할 수가 없었고
희망을 주었던 많은 아이디어들이 이제는 내게서 떠나간 것 같았다
만약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장기를 도둑맞았다면 누군가 뇌를 훔쳐간것이 분명했다


또 나는 늘 너무 큰 야망 때문에 괴로워했었다

그 야망은 확실한 삶의 목표였고 행복의 조건이었으며 살아갈 이유였지만

불행하게도 나에게는 내가 기대했던 것만큼 충분한 재능이 없었다


그로 인해 나는 깊은 절망감을 느꼈고 한동안을 고통 속에서 지내야 했다

내가 실제로는 얼마나 가치 없는 사람인지 인정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 후로 나는 그저 세상에서 자리를 차지한 채 살아갔다
도태된 심해어의 눈처럼, 유용함이라고는 그저 거기 있어주는 것뿐인 삶
고민 끝에 선택한 삶이라는 것이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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