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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낮선이에게 인사를 건네는 이유

by Sunyu


심리적인 거리와 물리적인 거리는 종종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
서로의 경계 안에 들어갔을 때 우리는
상대에게 적의가 없다는 것을 알려주고 긴장감을 유지해야 하는 스트레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가까워진 물리적 거리만큼이나 심리적인 거리를 단축시키고 싶어한다
그래서 동물들이 서로 낮선 상대의 냄새를 맡는것처럼
우리는 낮선이에게 인사를 건넨다
(나는 너에게 안전한 사람이니 너도 나에게 안전한 사람이길 바란다. 그러니 우리 서로 문제없겠지?)
정도의 약속인 것이다

[ 올라 - ]

어느새 몇 걸음 앞까지 다가온 빨간점퍼에게 짧은 인사를 건네고 통성명을 했다
그녀의 이름은 마리아였다
벨기에에서 교육학을 전공한 그녀는 놀랍게도
프랑스에서 시작해 순례길을 왕복으로 이미 3개월째 걸어서 여행 중이라고 했다
[ 미안 알아듣기 힘들지? 불어 스페인어 독일어는 할 수 있는데 영어는 잘 못해.. 니가 이해해 ]
라며 나보다 유창한 영어로 양애를 구하는 벨기에 인간
만족스럽지 않으면 할 줄 아는 언어로 안치는 듯했다

고속도로 옆 외따로운 고가도로 아래서 처참한 재료로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고
다시 걷기를 두어 시간, 마리아가 물어온다

[ 오늘은 어디까지 갈 거야? ]
[ 글쎄 가능한 멀리 가보려고.. ]
[ 그래? 훗.. ]

미소가 왠지 석연치 않다

내가 다시 마리아에게 물었다

[ 근데 너 참 잘 걷는구나 ]

그녀는 정말 잘 걸었다

[ 얘기했잖아 3개월째 걷고 있다니까 ]
[ 아.. ]
[ 너도 잘 걷네.. 오늘이 처음이라며 ]
[ 예전에 군인이었을 때 이런 훈련은 많이 했어 ]

아차

[ 응? 니가 군인이었다고? ]

갑자기 호기심을 보이는 마리아 때문에 군대 얘기부터 시작해
한 동안을 분단과 이념 따위에 대해 얘기하며 걸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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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자꾸 시계를 봐? ]


내가 가끔 시간 확인하는걸 본 모양이다


[ 그냥.. 시계보는데 이유가 있나 ]

[ 원래 순례길에서는 시계와 지갑을 가지고 다니지 않는거래 ]

[ 왜? ]

[ 시간과 돈은 세상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들이지 여기서는 아니야 ]

[ 글쿤.... 난 순례자가 아니니까 상관없음ㅋ ]


등의 얘기를 하며 걷는 사이

어느덧 한 마을에 도착해 숙소를 찾았다
거기에는 이미 도착해 쉬고 있는 몇몇 사람들과
조금 전에 우리를 앞질러간 자전거 순례자들이 쉬고 있었다

그들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던 마리아가 물어온다


[ 우리 여기서 묵을 수도 있고 조금 더 가면 '산볼'이라는 숙소도 있는데 어떻게 할래? ]

나의 친절한 가이드여

[ 아직 밝으니까 조금 더 가보지 모.. ]
[ 그래 그러자ㅋ ]

아 제길
불길한 웃음에서 뭔가 감지해야 했지만
인생에 계시나 신호 같은 건 없다고 믿는 이 초심자는
저 순례길 선배를 너무 믿고 있었다

그렇게 다시 걷기를 1시간 반

조금만 가면 나온다던 산볼인가 하는 곳은
얕은 산을 두 개 넘는 동안에도 나타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마을은커녕 그럴듯한 집 한 채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날은 이미 어두워져 이제 10여 분이면 완전히 어둠에 잠길 터였다
그 와중에도 예수님 엄마랑 같은 이름을 가진 이 여자는
밤이 되면 야생 동물이 사람을 습격한다는 둥
섬짓한 농담이나 해대며 초보자 놀리기에 더 열중이었다

[ 우리 맞게 가고 있는 거야? 도대체 마을이 어디 있다는 거야? ]
[ 글쎄, 잘 못 왔나 보네.. 이 산이 아닌가.. ]

허허 그거 참.. 이성의 끈을 놓게 만드는 재주가 있는 여잘세

[ 야 이.. ]

나도 모르게 입에서 한국어 슬랭이 나올뻔한 순간
어둑해진 하늘 위로 한 줄기 연기가 올라가고 있는게 보였다
연기라면 죄다 경기를 일으키며 질색인 내가
저 한 줄기 연기에 받은 안도감이라니..

정신없이 걸어 연기가 나고 있는 곳에 다다르니
조그만 오두막집이 하나 보였다

오두막집으로 들어가는 길은 초라했다
그 보다 더 초라한 길 입구 팻말에는
'Sanbol' 이라고 쓰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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