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정신없이 걸어 연기가 나고있는 곳에 도착했지만
그곳에 마을이나 집은 없었다
대신 조그만 오두막집이 하나 있었다
문 앞에서 열심히 장작을 패고있는 한 남자와 인사를 하고
안으로 들어가자 저녁준비에 한창인 몇몇 사람들이 반겨주었다
간단히 인사를 한 후 남은 침대를 하나 잡아 짐을 풀고나니
서서히 마음이 차분해지며 주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촛불이 넓지 않은 거실을 희미하게 밝히고 있었고
초등학교 때나 봤던 땔감을 넣는 난로 위에는 저녁식사로 보이는 콩이 끓고 있었다
이전 알베르게에서 다음 숙소까지 가보자고 했을 때 마리아가 왜 웃었는지 이해가갔다
이곳에는 전기나 가스, 수도시설이 없었다
산볼은 문명과 격리된 채 자연속에서 순례자들을 맞이하는 조그만 오두막집 이었다
테이블에 둘러앉아 음식이 익기를 기다리며서로의 얘기를 주고받는 동안
같은 일행인 줄 알았던 사람들이 사실은
스페인, 프랑스, 아르헨티나, 미국 까지
국적도 대륙도 다양한 초면들이라는 사실도 알았다
그들은 가진것이 없는 나에게도 저녁식사를 같이 하자고 했다
누구라도 따로 식사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로 여기는 듯 했다
간단하게나마 빵과 치즈를 곁들이고 디저트용 비스켓에 와인까지
모양새마저 훌륭한 저녁식사였다
식사를 마칠 즈음 우렁찬 지프차 소리와 함께 순박한 차림의 아름다운 여인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자신을 이 산볼의 지킴이라고 소개했다
오래전 한 여인이 누구나 쉬어갈 수 있도록 이 오두막집을 만들었고
그녀의 뜻을 따라 이 곳이 지금까지 운영되어지고 있다고 했다
이 곳에서는 모두가 이방인이었고 주인이었으며 손님이었다
그녀는 여러분에게 선물이 있다며 가방에서
호롱불 모양의 라이트를 꺼내더니 우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 빛이 있으라 ]
딸깍 소리와 함께 거실이 환해졌다
건전지로 작동되는 라이트였다
지킴이 숙녀의 유머감각과 작은 조명으로
분위기는 더 화기애애해졌다
즐거운 저녁시간을 뒤로하고 이 길에서 보내는 첫번째 밤이 되었다
샤워시설이나 화장실이 없는 것은 그닥 문제가 아니라고 해도
실내의 추위는 내게 큰 문제였다
다른 순례자들과 달리 무지한 관광객인 나는
이런 곳에서 밤을 보낼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모두 침낭을 펴고 잘 준비를 하는 동안
나는 오두막 구석에서 구한 담요 두장으로
어떻게 하면 덜 춥게 잘 수 있을지 고민해야 했다
모자, 목도리부터 양말과 장갑까지
입을 수 있는 건 모두 걸쳐 입고서 담요 두장을 포개 덮은 다음
불안한 잠을 청해 보았다
이곳에서의 첫번째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