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목적지인 테라딜로스로 향하는 길은 그나마 조금 수월했다
1km 간격으로 의자가 놓여 있어 잠깐씩 쉬어갈 수가 있었다
하지만 지대가 높아졌는지 숨은 점점 빠르게 가빠졌다
갈 길이 멀었기에 힘을 내 걸어보려고 했지만
길들이 교차하는 곳에 쉼터가 보이자
결국 쓰러지듯 앉아버렸다
몇 분 지나지 않아 저기 멀리서 걸어오는 남자가 보였다
가까이 다가온 남자는 40대 정도 되어 보였다
그도 내가 앉은 의자에 다가와 짐을 내려놓더니
능숙하게 담배를 말며 자신의 이름을 에디라고 소개했다
[ 저는 성욱입니다. 선유라고 불러도 괜찮아요 ]
[ 당신을 본 적 있어요 파란 우의를 입고 있었죠 ]
( .. 핑크색을 안 쓰길 잘했군 )
[ 근데 그 신발은 걷기 편한가요?ㅋㅋ ]
( 음.. )
[ 뭐.. 이 곳에 오기 전까지는.. ]
등의 잡담을 하며 간단히 점심을 먹었다
에디와 담소를 나누고 헤어진지 2시간쯤 지났을까
앞에 가고 있던 작은 몸집의 여인과 거리가 좁혀졌다
[ 올라- ]
내가 인사하자 그녀가 뒤를 돌아보더니 대답했다
[ 안녕하세요(한국어)- ]
(헉)
[ 예.. 안녕하세요 ]
길을 걸으며 놀란 것 중 하나는
이곳에서 만난 동양인 대부분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이다
30대 후반이나 40대 초반쯤 되어 보이는 그녀는 얼마 전 회사를 그만두고
무작정 이곳으로 왔다고 했다
작은 키의 그녀는 걸음걸이가 빠르지 않아
걸음이 느려져 있던 나와 속도가 비슷했다
간만에 언어가 통하는 사람과 만나니 반가웠다
그녀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굽이진 자갈길과 한 무리의 양떼를 지나
오늘의 목적지인 테라딜로스에 도착했다
[ 그런데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
알베르게에 도착할 때 즈음 이름을 물어보았다
[ 이름은 알아서 뭐해요? 어차피 또 볼 사이도 아닌데 ]
예상 밖의 퉁명스런 대답이 돌아왔지만 이름을 아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녀는 나보다 앞서 숙박부를 적었다
주인에게 안내받아 올라간 방은 4인실로 천정이 낮고 아늑했다
오후에 잠깐 마주쳤던 에디도 같은 방에서 다시 만났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서로 자리를 정한 뒤
다 떨어진 식량을 비축하기위해 근처 식료품점에 갔다
미각이 둔해 편리한 점은 음식 고르는 시간을 아낄 수 있다는 점이다
고민할 것도 없이 빵과 치즈 조금, 참치캔 몇개를 샀다
다시 숙소로 돌아와 길을 걸으며 읽기 시작했던 책을 꺼내 들었다
지친 몸을 누이고 느긋하게 읽어보려고 하는데
옆 침대에 자리를 잡은 에디가 말을 걸어왔다
길을 걷는 동안 순례자들과 얘기를 나누면서 느낀 점은
나름대로의 목적을 가지고 온다는 사실이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에디의 목적은 다른 이에게 말 걸기인 것 같았다
[ 선유, 당신은 순례자처럼 보이지 않네요. 어쩌다 이 길에 오게 되었나요? ]
음.. 돈도 떨어지고 딱히 갈 데도 없길래
라고 말 할 수는 없었다
사실대로 말하기에는 이야깃거리를 기대하는 에디의 표정이 너무 진지했다
[ .. 음.. 뭔가를.. 그러니까.. 찾아보려고.. ]
[ 오! 당신도 그랬군요. 나도 마찬가지예요... ]
라며 에디는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살면서 어느순간 신념을 잃어버렸다고 했다
인생의 기로에서 자신은 방황 속에 있었고
더 늦기 전에 무언가를 찾지 않는다면
영원히 해답없는 삶을 살아가리라 느꼈다고,
이 길이 언제 끝날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이 구하는 답을 찾게 되길 바라고 있다고 했다
[ .. 선유, 당신이 찾고 있는 건 뭔가요? ]
뜻밖의 고해를 듣게 된 나는 그의 질문에 허투르 대답할 수가 없었다
[ .. 나는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살았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사실은 사람들이 나에 대해 편견을 갖도록 만드는 것에 최선을 다했을 뿐이었지요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은 공허해져 갔어요
그러다 어느 순간, 스스로에게 정직해지지 않는 이상
그 상실감은 사라지지 않을 거란걸 알았어요
내가 뭔가를 찾기 위해 왔다면, 정말 추구해야 할 것을 찾기위해서일 거예요 ]
그렇게 에디와 얘기하는 동안 나도 모르게
내가 여행을 떠나야 했던 이유를 알 게되었다
인간은 허약하고 위태로운 자유 속에 살고 있다
누군가 정해놓은 삶의 방식을 따라 사느라 정작
자신의 진짜 일이 무엇인지는 모른 채 살아간다
그런데도 우리는 본질을 이해하기보다
세상에 넘쳐나는 값싼 위로들에 기대 살아가기 원한다
왜냐면 그게 쉽기 때문이다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다르게 살지 않는 것
불가해함에 저항하지 않는 것
도취된 채 살아가는 것
살아가기보다는 살아지는 것에 자신을 맡길 때
인간은 한시성 상품이 된다
[ 그런데 당신이 읽고 있는 책은 뭔가요? ]
[ 아, 이 책이요? ]
한글 제목 아래 써있던 영어 제목을 읽어주었다
[ The road less traveled 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