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리온으로 향하는 길은 외로웠다
길 또한 단조롭고 조용했다
중간에서 가끔 마주친 친구들을 빼면 거의 혼자 걸었던 것 같다
출발한 지 3,4시간이나 되었을까
상태가 좋지 않았던 오른쪽 발목에 이어
왼쪽 무릎까지 찌릿한 느낌이 오기 시작했다
조그마한 벤치가 나타나자 기운이 빠져 있던 차에
때마침 점심도 가까오고 있어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배낭에서 3일째 굴러다니던 빵을 이제 끝낼때가 왔다
음식이기도 하고 어쩌면 더이상 음식이 아니기도 한 그 빵은
굶주린 개에게 주기에도 서운할법한 어떤 물건이 되어 있었다
다음 마을에서 다시 만난 비아노스는 한 커플과 일행이 되어 있었다
그 커플도 브라질에서 왔다고 했다
길에서는 다양한 국적을 가진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특히 독일과 브라질에서 온 순례자들이 많았는데
나는 브라질에서 온 친구들을 좋아했다
그들은 매우 활기차서 같이 걷고 있으면 즐거워지기 때문이다
비아노스가 내 신발을 보더니 웃으며 다가왔다
[ 미안하지만 신발 좀 찍어도 될까? ]
그때 즈음 내 스니커즈는 사람들에게 이야깃거리가 되어 있었다
뒤꿈치는 모두 찢어져 흙이며 모래가 다 들어오고 있었고
앞쪽에는 종종 내리는 비를 막으려 테잎을 덕지덕지 발라놓아
멀리서 보면 아마 걸레를 신고 있는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짧은 담소를 마치고 우리는 같이 출발했다
어디선가 나무막대기를 구한 비아노스는
지팡이보다는 거의 장난감으로 사용하고 있었는데
마을을 빠져나올 때쯤 재미가 없어졌는지
손으로 빙글빙글 돌리더니 공중으로 힘껏 던졌다
나는 떨어지기 무섭게 막대기를 냉큼 주웠다
[ 비아노스, 이거 필요 없으면 내가 좀 쓸게 ]
그 순간 나에게는 지팡이가 절실했다
이틀째부터 시작된 발목의 통증이 오늘 아침부터 더 심해졌기 때문이다
지팡이를 짚으며 걷자 걸음이 꽤 편해졌다
그전까지는 사람들이 왜 사용하는지 몰랐는데
직접 사용해보니 체중을 많이 분산시켜주는 것 같았다
하지만 걷는 속도는 그다지 빨라지지 않아서 아쉽게도 그들을 먼저 보내야 했다
아무런 생각 없이 끝도 안 보이는 평야를 걷고 있으니
시간이 흐르는 느낌도 방향감각도 없어진 듯했다
기계적인 걸음은 정신적인 무감각을 만들어내며
지금 내가 속해있는 공간과 시간에 대해 생각하도록 만들었다
우리가 일생에 걸쳐 배우는 것은 좌표에 관한 것이다
스스로 어떤 좌표를 만들지 않는다면 말이다
나는 1979년 봄에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태어난 동양인이다
민주주의 공화주의 자본주의라는 이념적 배경과
크리스트교의 종교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공자를 숭배하는 중국의 유교와
속도를 숭배하는 초고속 인터넷교의 문화적 배경
때만 되면 주변국에 털리던 약소국의 역사적 배경과
행복과 불행, 사랑과 상처가 혼재해있던 가정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그런 내가 이 세계에서는 어떤 존재일까?
관계들 안에서의 나와 그 밖에서의 나는 어떤 존재인가?
나에게 일어난 불행은 무슨 의미일까?
내가 가졌던 행운들에 대해서는 어떤 책임을 져야 할까?
그리고 나는 어떤 사람으로 살아야 하는가?
.....
생각들이 끝도 없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오랫동안 소홀히 해왔던 나 자신에 대한 고민이었다
정체성은 좌표성을 양분으로 삼아 성장한다
나의 좌표를 정리하는 동안
많은 생각들이 다가왔다가 한 번 눈길을 주고는 떠나갔다
어떤 아이디어는 가슴 깊이 남기도 했으며
때로는 경악하게 만들기도, 바보처럼 느껴지게도 만들었다
하지만 모든 아이디어들이 소중하게 느껴졌고
그로 인해 더 확신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되었다
때로 삶에서 길을 잃었다고 생각되어지는 순간들이 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스스로의 모습을 재인식 하기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좌표성은 자신을 재인식 하기위한 씨앗이 되어준다
오늘의 목적지인 까리온이 멀리에 보였다
조금만 더 걷자
오늘 내가 머무를 좌표도 저기 어딘가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