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 준비로 분주한 아침
사람들과 아침인사를 하고 각자 짐을 챙겼다
이틀간 부슬비 속에 걸었더니 날씨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방한 대책도 없이 온 여행자가 방수대책이 있을 리 없었다
그때 창가 쪽에 자리를 잡았던 착한 할아버지 한 분이
창문을 열고 하늘을 가리키며 서툰 영어로
[ 오늘은 날씨가 좋을거예요 ] 라고한다
내가 날씨 걱정을 많이 한다는 걸 안 모양이다
숙소를 나와 열심히 걸었지만 시간은 더디게 흘렀다
한 키 큰 숙녀가 절뚝거리며 걷고 있는 나를 따라잡았다
어제 묵었던 알베르게에서 본 적 있는 여인이었다
자신을 독일에서 온 스테파니라고 소개했다
얘기를 나누다보니 어제 만난 숙희(가명) 누님과도 서로 아는 사이였다
꽤 오랫동안 순례길 친구라고 했다
산을 벗어나 평지로 나오며 스테파니와 헤어지고 다시 홀로 한참을 걸었다
그러는 사이 점심시간이 다되어 쉴만한 곳을 찾아 참치캔을 땄다
한 손에는 색이바랜 포크가 들려 있었다
이 포크는 여행하는 동안 유일하게 저질렀던 위법(?)행위의 증거로
스페인 남부를 여행하던 중 음식 먹을 도구를 구하기 어려워서
호스텔 카운터에 50센트를 놓아두고 몰래 가져온 포크였다
(이 정도면 충분한 가격이야) 라고 합리화했지만
포크를 허락 없이 가져온 일은 여행하는 내내 후회스러웠다
기회가 된다면 론다의 그 호스텔로 돌아가
망할 수저통에 포크를 다시 꼽아놓고 싶은 심정이었다
쭈그려 앉아 참치캔을 먹고 있으려니
길에서 몇 번 마주쳤던 순례자들이 지나간다
[ 올라 ]
힘을 내 웃으며 인사했다
[ 설마 그게 니 식사니? ]
...이제는 대답도 기계적이 되었다
[ 응ㅎ 걱정마 고양이 밥은 아니야 ]
지나가는 순례자들과 그만큼의 연민 어린 시선들이 지나가고
다시 길을 출발했다
얼마나 걸었을까, 뭔가 기분이 이상했다
뭔가 알 수 없는 불안한 느낌
뭐지.... 뭘까..
아.
생각해보니 화살표를 한참이나 못 보았다
잊어버릴 만 하면 나타나곤 했던 이정표들이 한 시간째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순례자들은 길을 걸으며 종종 볼 수 있는 노란 화살표나 가리비 모양의 신호를 보고 걷는다
갈림길이 나타날 때 마다 표시들이 방향을 알려주기 때문에
순례자들은 길을 찾기 위해 고민을 할 필요가 없다
걷는 동안 종종 인생에서도 이런 신호가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고뇌 없이 계시에 이끌리는 삶은 너무 낭만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곧 이 길을 처음 갔던 사람들이 떠올랐다
그들이 갔던 길에는 친절하게 방향을 알려주는 화살표도
노란 가리비 모양이나 준비된 알베르게도 없었을 것이다
길을 가는 동안 그들은 죽음의 고비를 수차례 넘겨야 했다
적대적인 환경 속에서 추적자들에 쫓기며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는 채 그저 소명을 가지고 나아갔었다
그들에게 길은 선택이고 도전이었다
그렇게 그들은 고뇌 속에서 신의 인도하심을 느끼며
자신의 삶을 신화적으로 만들었다
우리는 감정적인 선택에 이성적인 이유를 붙이기 좋아한다
감정에 휘둘려 결정을 내리면서도 남들에게는
숙고한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보여지기 원한다
마찬가지로 이성적인 선택에는 종종 감상적인 이유를 붙인다
왜냐면 그게 더 멋져 보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우리는 현실에서 신호들을 찾는다
운명적인 삶에 대한 매력은 너무 커서
어떤 계시가 자신을 이끌었다고 믿고 싶게 만든다
하지만 사실 계시나 신호들은 어디에나 있다
오랫만에 걸려온 반가운 전화나 나도 모르게 지워져있는 옛 연인의 전화번호
아니면 아침에 만난 길고양이나 후식으로 나오는 포춘쿠키 속에도 계시는 있다
그렇지만 삶을 제대로 만들기 원한다면
그것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하기 위해
우리는 단지 매일 아침 눈을 뜨며
오늘이 자신에게 어떤 하루가 될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절망에 빠져 있을 즈음
멀리서 색이 바랜 노란색 화살표를 발견했다
순간 그 신호가 얼마나 반갑게 느껴졌는지 기억난다
덕분에 너무 늦지 않게 목적지인 엘 부르고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오늘은 하늘이 유난히 아름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