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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호수

by Suny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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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의 날씨는 좋지 않았다

아니, 그것보다는 다양했다고 하는 게 맞겠다

오토갈에 도착했을 때 서쪽으로는 노을이, 동쪽에는 무지개가 있었고

북쪽에서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거리에는 라마단 기간이어서 낮 동안 굶주린 사람들이 줄지어 식당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들이 먹는 많은 양의 저녁 식사를 보고 있으면 저렇게 먹어도 괜찮은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긴 한다

저녁에 많이 먹더라도 낮에는 굶어야 하는 어떤 이유가 있는 것 같았다


도시를 조금 돌아보다 여느 때처럼 음식을 조금 구해

만만해 보이는 숙소를 찾아 짐을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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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날씨가 맑아져 호숫가로 나와 걸어보았다

바다인가 싶을 정도로 큰 호수였다


어디를 가나 아이들은 해맑다

물이 꽤 차가운데도 수영을 하는 아이들이 있었다

이곳의 남자아이들은 여행객들을 보면 따라다니며 장난을 거느라 정신이 없었고

여자아이들은 장난기만큼이나 수줍음도 많아 보였다


두어 시간쯤 걷다 보니 어느덧 외곽지역까지 와 버려서

내가 어디에 있는 것인지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오래된 집들이 나타났고 길은 비포장도로로 바뀌다 이내 흙길이 되었다

막다른 곳까지 오자 멀리에 낮은 산이 하나 보였는데

그 근처에 가면 도시로 돌아갈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주민들에게 물어 그 산에 가는 길은 찾았지만

그곳에 닿기까지는 다시 한 시간쯤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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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해보니 그 산은 무슨 관광지인듯했다

어떤 위인의 생가인 것 같았는데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집 뒤쪽으로는 아까 보았던 야트막한 산이 있었는데

멀리에서부터 내내 그 산만 보고 왔던지라

왠지 모를 의무감이 생겨 정상에 올라가 보기로 했다


산은 과거에 요새나 뭐 그런 거였지 않나 싶다

곳곳에 성벽처럼 담이 쌓아져 있었고 이제는 형태만 남아버린 성문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나타났다

산 위에서 본 반 호수는 매우 넓었는데 높은 곳에서 보니 그 크기가 실감되었다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뒤쪽에서 다가와 호수를 바라본다

그들과 나는 한동안 거기에 말없이 앉아있었다


우리는 광활한 자연 앞에서 어떤 경외감을 느끼는 것 같다

그 앞에 서면 우리는 말을 잃게 된다

고작해야 탄성을 지를 수 있을 뿐이다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도 표현할 방법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신의 다른 모습인 자연(自然 : 스스로 있는 것)은 인간의 표현 안에 갇힐 수 없는 게 분명하다

우리가 어떤 경이로움을 맞닥뜨렸을 때 그것을 표현해 버린다면

순간 그 경이로움은 빛을 잃어버리고 만다


고대부터 예술가들은 끊임없이 자연을 글과 그림 속에, 언어와 음악 안에 가두려고 시도했지만

우리는 그들을 통해 단지 파편화된 자연을 가질 수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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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로 돌아가기 위해 마을로 나왔을 때 그 젊은이들을 다시 만났다

우리는 반갑게 인사했다

내가 한국에서 온 여행자라는 사실을 알고 매우 반가워했다


[ 이곳은 위험해서 여행자들이 많지 않아요, 어떻게 여기까지 올 생각을 했죠? ]

라는 한 청년의 질문에


[ 글세.. 딱히 계획을 했던 건 아니고.. ]

라고 말해야 했겠지만,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이어가고 싶었기에


[ 그야 뭐.. 형제의 나라지 않습니까! 핫핫핫! ]

어색하게 웃다 걸릴뻔한 사레를 참으며 대화를 이어갔다


그들은 이 지역에서 복무 중인 군인이었는데 대부분 학생이었다

분단되어 있는 한국의 상황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았다

터키도 한국처럼 군 복무가 의무제라고 했다

어딜 가나 남자들끼리 군대 얘기는 한참을 해도 끊이지 않는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던 중에 그들이 같이 택시를 타고 가자고 한다

[ 택시비는 저희가 낼 테니 불편하지만 않다면 같이 가요~ ]

물론 불편할 것 같았다


이곳의 택시는 한국보다 작다

그들과 함께 있는 것은 즐겁고 유쾌했지만

건장한 남자 다섯 명이 어떻게 한 택시에 타겠는가


근데 탈 수 있었다

그게 가능하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떠들썩한 이야기는 한동안 차 안에서도 이어졌다


산소부족과 호흡곤란으로 정신이 혼미해지며

핸들을 잡은 운전사의 멘탈이 걱정되어질 때쯤

도시에 도착했다


그들과 인사를 하고 헤어진 뒤 도시를 조금 더 돌아보고

에르치스로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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